『피프티 피플』 - 작품 추천은 신중하게

김다움
김다움 · 게을러요
2024/04/29
제목만 보고 군상극이라 생각했다. 옴니버스지만 중심에 거대한 이야기가 있고, 전형적이며 동시에 개성 있는 사람들이 치열하게 부딪치며 편을 가르는, 착한 사람은 휩쓸리거나 살해당하는, 전개가 화끈한 이야기. 나는 만화를 너무 많이 봤다.

이상한 소설이다. 제목 그대로 인간 50명을 다루는 옴니버스다. 거대한 중심은 없고, 각각의 이야기도 사소하다. 폭력이나 정치가 섞일 때도 있는데, 과격하지 않다. 특별히 영웅적이거나 가련한 인물도 없다. 문체도 담담하며 은유도 적다. 논픽션이라 해도 믿을 것 같다. 다만 논픽션이라기엔 분량이 짧다. 480페이지로 50명이면 할 말이 부족할 것 같다. 가만 보니 많은 것 같기도 하다.

수박 겉핥기. 그런데 수박 껍질이 실하다. 처음 짜릿함을 느낀 순간은 이야기에 접점이 생길 때였다. '걔가 얘구나?' '중심이 되는 배경은 병원이구나?' 그렇게 읽는 책이 아니지만, 그땐 몰랐다. 애당초 50명의 이야기를 촘촘히 연결하기엔 인간의 뇌가 무능하다. 처음엔 관계도라도 그려 볼까 싶었는데, 곧 접었다. 잘 몰라도 상관이 없었다. 『피프티 피플』은 느슨하게 이어진다. 잊을 만하면 누군가 등장한다. 그러면 익숙한 이름을 앞에서 찾아보게 된다. 종종 목차에 안 보여서 난감하지만, 길에서 조우한 동창과 비슷하다. 기억하지 못해도 괜찮다. 돌이켜 보는 태도 자체가 중요하다. 어차피 기억은 불안정해서 잊어버리기 마련이다. 이름에 애틋함을 느끼고, 다가가려고 노력하면 된다.

언제부턴가 나 또한 이야기에 참여하고 있었다. 따뜻한 포섭이었다. 작품 속 세계는 아름다웠고, 어느새 현실 세계도 예뻐졌다. 분명 나도 주인공이자 엑스트라이며, 누구나 하는 흔한 생각을 하겠지. 그런데 그 뻔한 생각이 생각보다 특이해서 흠칫하겠지. 평범한 개성과 사랑에 빠지겠지. 그동안 사람들에게 너무 못되게 굴었나 싶다가도, 내일을 상상하며 살고 싶어졌다.
창비
좋은 작품엔 과몰입 한다. 세계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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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과 언론을 전공하는데, 그다지 전문적이진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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