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종학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전 국회의원
경제학 교수 출신으로 경실련에서 활동했고, MBC 손에 잡히는 경제 진행을 맡았다. 민주당 비례대표로 19대 국회에 진출했고, 문재인 대선 캠프 정책본부장으로 공약 작성을 주관했으며, 초대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을 역임했다
민주당의 미래를 위한 징비록(16) 2부. 성역에 눈 뜨다 10. 꺽여 버린 희망의 날개
민주당의 미래를 위한 징비록(16) 2부. 성역에 눈 뜨다 10. 꺽여 버린 희망의 날개
민주당의 미래를 위한 징비록(16)2부. 성역에 눈 뜨다 10. 꺽여 버린 희망의 날개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의 함성과 함께 뜨겁게 불타올랐던 희망의 외침은 멈췄다. 돌이켜보면 한국 경제는 1986년 아시안 게임과 1988년 올림픽을 기점으로 새로운 도약의 길로 들어섰다. 그 도약의 기반을 다진 것은 1987년 성취한 직선제 개헌을 통한 정치개혁이었고, 민주화를 위한 결정적 장치를 도입하는데 성공했다. 하나회 척결을 통한 군부 개혁, 금융실명제로 이어지는 개혁의 성과를 통해 직선제의 효과를 실감하기도 했다. 그러나 재벌로 인한 경제 전반의 왜곡 현상을 바꿀만한 개혁의 동력은 부족했고, 재벌의 기득권을 건드리는 것은 어려웠다. 오히려 선진국의 흐름을 따라 규제완화를 추진하면서 재벌에 대한 과도한 대출이 이어졌고, 결국 IMF 외환위기의 원인이 되었다. DJ는 개혁의 상징이었지만 외환위기를 수습하는 게 우선이었기에 평화로운 정권 교체를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
민주당의 미래를 위한 징비록(15) 2부. 성역에 눈 뜨다 09. 부동산 정책은 왜 실패했나
민주당의 미래를 위한 징비록(15) 2부. 성역에 눈 뜨다 09. 부동산 정책은 왜 실패했나
09. 부동산 정책은 왜 실패했나 정부 신뢰의 문제 정부 정책의 성공 여부는 정부에 대한 신뢰가 큰 영향을 미친다. 집값을 안정시키겠다는 정책 목표를 실현시킬 것이라는 국민의 신뢰가 있을 때 굳이 정부가 종합 대책을 발표하지 않아도 시장은 받아들이게 된다. 주택에 투자했을 때의 수익은 단기에 실현되지 않는다. 주택은 거래비용이 상당히 크기 때문에 거래를 자주할 수 없다. 미래의 수익을 예상하고 투자하는데 집값을 잡겠다는 정부의 발언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면 투자하기는 어렵다. 대통령의 말 한 마디로 잡혔어야 할 집값이었다. 그런데 그렇지 않았다는 것은 참여 정부가 국민의 신뢰를 잃었다는 의미이다. 8.31대책 이후 나는 많은 토론에 나갔다. 8.31대책은 부족하지만 정부가 추가 대책을 발표해서라도 집값을 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책이 효과를 가지기 위해서는 일관성이 있어야 하고, 8.31대책이 부족했음을 인식하는 순간 다시 추가 대책을 발표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민주당의 미래를 위한 징비록(14) 2부. 성역에 눈 뜨다 08. 결국 실패한 8.31 대책
민주당의 미래를 위한 징비록(14) 2부. 성역에 눈 뜨다 08. 결국 실패한 8.31 대책
08. 결국 실패한 8.31 대책 8.31대책이 발표되었다. H 경제부총리는 호기롭게 부동산 투기는 이제 끝났다고 선언했다. 경제 관료중 해결사로 알려진 K 차관보는 각종 설명회에서 부동산 투기는 불가능하다고 반복적으로 홍보했다. 세제를 강화했고 중단되었던 판교에 더해 송파 신도시를 개발하는 등 수요 억제와 공급 확대를 통해 집값을 안정시키겠다는 의지를 확고히 했다. 8.31대책을 만들기 위해 정부는 총력을 기울였다. 대통령 주재 부동산 정책 간담회에 이어 부동산 정책 당정협의가 8차례에 걸쳐 열렸다. 당정청의 고위 관계자가 매주 회의 끝에 만들어낸 대책이니 정부가 발표한 대책 중에서는 가장 준비를 많이 한 정책에 속할 것이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청와대 경제보좌관 주재로 정부의 관련 부처가 망라된 대규모 실무기획단도 꾸려졌다. 그렇게 만들어진 대책이니 시장을 안정시키기에 충분하다고 판단한 듯 보였다. 경제부총리가 대책을 발표하는 순간 경실련은 8.31대책으로는 ...
[민주당의 미래를 위한 징비록(13) 2부. 성역에 눈 뜨다] 07. 실패가 예고된 8.31 대책
[민주당의 미래를 위한 징비록(13) 2부. 성역에 눈 뜨다] 07. 실패가 예고된 8.31 대책
07. 실패가 예고된 8.31 대책 누군가 역사는 우연에 의해, 그리고 아주 작은 사건에 의해 경로가 바뀐다고 했던가. 대통령이 공언한 경실련과의 만남은 성사되지 않았다. 아주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인해서.
가지 않은 길이기에, 그리고 건설족이라는 성역의 방어벽이 두터웠기 때문에 다른 길은 성공했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8.31 대책을 둘러싼 참여정부의 대응은 석연치 않았다. 대통령의 발표가 있은 후 부동산 시장은 급냉했다. 대통령의 의지가 담긴 대책이 얼마나 강력할지 알 수 없었다. 정권의 명운을 건 대책이기에 메가톤급 대책이 나올 것이라는 평이 잇달았기에 시장은 정부의 의지를 신뢰할 수 밖에 없었다. 정부 정책의 성패는 시장이 얼마나 신뢰하는가에 달려있다. 분위기는 바뀌었고 시장은 대책을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주택을 구매하는 것은 무모한 일이었다. 조급한 사람들이 매물을 내놓고 시장이 얼어붙자, 관료들과 언론은 슬슬 경제가 위축될 것을 걱...
[민주당의 미래를 위한 징비록(12) 2부. 성역에 눈 뜨다] 06. 참여정부 대 경실련 드림팀
[민주당의 미래를 위한 징비록(12) 2부. 성역에 눈 뜨다] 06. 참여정부 대 경실련 드림팀
06. 참여정부 대 경실련 드림팀 참여정부가 출범하고부터 집값이 들썩이기 시작했다.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참여정부의 개혁정책에 대해 기대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참여정부가 집값을 안정시킬 것으로 믿었다. 정부의 행정력을 동원하면 집값을 잡을 것이고, 참여정부가 집값을 잡을 정책을 펼 것이기 때문에 집값은 곧 안정될 것이었다. MH는 몇 번이나 서민들을 위해 집값을 안정시키겠다고 했고, 기득권 타파를 내세우는 그가 투기꾼이나 건설족을 위해 정책을 펴지 않을 가능성도 생각하기 어려웠다. 나중에 MH를 지지하는 남편들의 반대로 집을 사지 못해 낙심하던 아내들이 많았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곧 집값이 잡힐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정부가 대책을 내놓았는데도 집값은 잡히지 않았다. 대책을 내놓으면 잠시 주춤하던 집값이 다시 뛰어 오르기를 반복하더니 점차 내성이 생긴 탓인지 뛰는 속도가 빨라졌다. 서민들의 불안이 커졌지만 무엇보다도 참여 정부에 대한 ...
[민주당의 미래를 위한 징비록(11) 2부. 성역에 눈 뜨다] 05. 허울뿐인 위원회 공화국
[민주당의 미래를 위한 징비록(11) 2부. 성역에 눈 뜨다] 05. 허울뿐인 위원회 공화국
05. 허울뿐인 위원회 공화국 국정운영에 있어 목표를 설정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참여 정부는 개혁을 전면에 내세웠지만, 목표와 실천 방향은 명확하지 않았다. 그래도 대통령이 파격적인 모습을 계속 보이고 시민사회 출신들이 대통령실에 많이 참여하면서 사회 전반은 큰 기대에 들 뜬 모습이었다. 정부의 운영은 관료들에게 맡겼지만 관료들도 정권 핵심부의 의도를 알기는 어려웠던 모양이다. 2004년 경 뜬금없이 당시 L 경제부총리가 만나자고 연락이 왔다. L 장관은 외환위기 당시 금융감독위원장을 맡아 기업 구조조정을 주도했으며 이후 재정경제부 장관을 역임했다가 참여정부에서 다시 임명된 그야말로 백전노장의 관료였다. 약속 장소에 가니 나 뿐 아니라 당시 경제분야에서 개혁적이라고 알려진 시민사회 인물들이 함께 있었다. 특별한 의제도 없이 와인을 마시면서 서로 얼굴을 익히는 정도의 만남이었다. 정부 고위 관료와 만나 경제 문제에 대해 논의할 것으로 예상했던 나는 다소 당황했다...
[민주당의 미래를 위한 징비록(10) 2부. 성역에 눈 뜨다] 04. 참여정부는 관료정부였다
[민주당의 미래를 위한 징비록(10) 2부. 성역에 눈 뜨다] 04. 참여정부는 관료정부였다
참여정부는 관료정부였다 참여정부는 토론공화국을 지향했다. 국정 운영에 시민들의 참여를 활성화하기 위해 다양한 위원회를 구성했고 민간 위원들이 활발하게 활동하면서 자연스럽게 토론이 이루어졌다. 대통령의 의지가 강했기에 각 방송마다 토론 프로그램이 만들어졌고 라디오 방송에서는 매일 토론이 이루어졌다. 정부가 운영하는 방송에서는 정책을 담당하는 공무원이 직접 나와 정책을 설명하고 비판의 목소리를 듣는 프로그램이 만들어졌다. 많은 국민에게는 민주주의가 한 단계 더 높아지는 것을 실감하는 계기가 되었다. 나는 많은 토론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재벌 개혁이나 당시 사회문제로 대두된 신용카드 문제, 그리고 새로운 정부의 국정 운영과 관련한 다양한 토론에 참여했다. 나는 주로 정부에 더 강한 개혁정책을 요구하는 역할을 했다. 그런데 정부의 정책을 홍보하려는 원래 취지와는 달리 대부부분의 경우 정부를 비판하는 토론으로 흘러가는 경우가 많았다. 정책을 담당하는 공무원은 아무래도 조심...
[민주당의 미래를 위한 징비록(09) 2부. 성역에 눈 뜨다] 03. 참여정부, 너마저...
[민주당의 미래를 위한 징비록(09) 2부. 성역에 눈 뜨다] 03. 참여정부, 너마저...
참여정부, 너마저... MH는 거침이 없었다. 재벌 개혁과 관련된 모든 정책을 다 하겠다고 했다. 출자액 규제, 집단소송제, 심지어는 당시로서는 생소했던 계열분리명령제까지 다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고 했다. 경실련에서 주최한 대선 후보 초청 토론에서 나는 질문자로 그의 옆에 앉아 그의 열정적인 모습을 지켜보았다. 지지율 열세인 상황에서 상대 후보와의 차별성을 드러내는 중요한 의제로 생각한 듯 했다. 득표를 위한 정치적 발언으로 보이기도 했지만 워낙 예측이 어려운 파격적인 후보였기에 기대를 갖기에 충분했다. MH를 처음 가까이서 본 것은 방송 토론에서였다. 2002년 대선에는 많은 후보 토론이 있었다. 공식적으로 선관위 주최 토론 외에도 각 방송사마다 후보를 불러 토론을 이어갔다. 다양한 형식의 토론이 진행되었는데, 나는 한 라디오 방송의 패널로 참여했다. 후보를 한 명씩 불러 패널들이 돌아가면 질문하는 형식이었다. 카드 사태 이후로 나는 자주 방송 토론에 출현한 편이어...
[민주당의 미래를 위한 징비록(08) 2부. 성역에 눈 뜨다] 02. 카드 사태와 잘못된 신화와의 싸움
[민주당의 미래를 위한 징비록(08) 2부. 성역에 눈 뜨다] 02. 카드 사태와 잘못된 신화와의 싸움
02. 카드사태와 잘못된 신화와의 싸움 시민단체 경실련 활동은 유익했다. 선배 교수들과 함께 활동하면서 그동안 한국 사회에서 논란이 되었던 다양한 의제에 대해 공부할 수 있었다. 자원봉사자들인 시민들과 함께 경제를 바라보는 경험도 새로웠다. 당시 서서히 한국경제는 IMF 외환위기의 충격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그러나 많은 기업의 부도 여파로 실업자가 늘었고, 피폐해진 서민 경제는 좀처럼 살아나기 힘들었다. 그러면서 새로운 사회문제가 대두되기 시작되었다.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었다. 빚 독촉에 시달리다 못해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람들의 수가 하루가 다르게 늘어났다. 언론에 거론되기 시작한다는 것은 이미 많은 사례가 누적되었음을 의미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빚 독촉을 당하고 있는지 가늠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 언론에서 카드 문제가 거론되기 시작하면서, 경제학자로서의 촉이 발동되었다. 이건 뭔가 크게 잘못되었고 경제적 충격이 만만치 않을 것이란 느낌이 왔다. 경제학을 ...
[민주당의 미래를 위한 징비록(07) 2부 성역에 눈 뜨다] 01. IMF 경제위기와 성역이 된 재벌
[민주당의 미래를 위한 징비록(07) 2부 성역에 눈 뜨다] 01. IMF 경제위기와 성역이 된 재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