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16. 학창시절, 시내에 갈 때마다 중고서점에 들렀어요.
중고책방 가판에서 보물찾기 하듯 사모으던 책은 영화잡지 <키노>입니다. 1995년 창간된 이 잡지는 당시 제가 이해하기 어려운 난해한 평론으로 가득했지만, <키노>가 소개하는 영화를 찾아보고, 그 영화에 대한 글을 읽고, 부록으로 받은 영화포스터와 잡지에서 오려낸 이미지들을 부적처럼 사방에 붙이고, 여백마다 두르고 다녔어요. 그래서 사야만 했어요.
어쩌면 이것은 책에 대한 이야기라기보다 영화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제가 ‘책을 사는’ 것에 관해서는 꼭 맞는 이야기에요. 저는 매달 극장에 가는 대신 영화잡지를 사 모았으니까요.
가벼운 주머니 사정으로 매달 최신호를 살 수는 없어서, 재고 처리를 위해 수시로 풀리던 근간을 싸게 사려고 시내에 갈 때마다 중고책방에 들렀어요. 언젠가 함께 갔던 친구는 배우들의 근사한 화보가 많은 <스크린>이나 <프리미어>가 아니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