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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9/12
왜 변월룡인가

변월룡(Пен Варлен, 1916-1990)은 그동안 ‘잊힌 화가’였습니다. 그가 작품성에 비해 덜 알려진 이유는 남북 분단이라는 상황 때문이었죠. 국내에서는 월북 작가들에 대한 해금(解禁) 조치 전까지 언급되지 못했고, 북한사회에서는 ‘민족의 배신자’로 낙인찍혀 흔적이 모두 지워진 금기 인물이었습니다. 
변월룡, <자화상>, 1963. (출처: 나무위키)
변월룡은 뛰어난 데생 솜씨로 한국의 대표적인 구상화가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으나, 냉전이라는 시대적 배경 속에서 잊히고 맙니다. 변월룡은 넉넉한 집안 출신은 아니었으나 그림 솜씨가 워낙 뛰어나 레핀미술대학으로 유학을 가고, 그곳에서 교수 자리까지 역임한 인물입니다. 

연해주에서 태어나 소련 국적을 가지고 살았던 그는 ‘변월룡’이라는 한국 이름을 고수하고, “내 묘비에 한글 이름을 새겨 달라”라는 유언을 남겼을 만큼 고국에 대한 향수를 간직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변월룡을 처음 국내에 소개한 인물은 미술비평가 문영대입니다. 그는 1994년 겨울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러시아미술관에서 그의 그림을 처음 발견했다고 회고합니다. 한복 입은 여인이 아이의 손을 잡고 걷는 그림이었는데, 한국인의 정서가 짙게 베인 작품이라 전율을 느꼈다고 합니다.
《변월룡(П ен Варлен) 1916~1990》 전시 포스터 (출처: 국립현대미술관)
문영대는 여러 차례 한국에서의 변월룡 전시를 추진했으나 번번이 무산되었고, 2016년에 와서야 국립현대미술관의 《변월룡(П ен Варлен) 1916~1990》 전이 개최되었습니다. 이 전시가 이루어지기 전까지 변월룡의 이름이 언급되지 못했던 이유는 그가 1953년 북한 평양미술대학의 고문 겸 학장으로 파견됐을 당시 북한의 ‘영구 귀화’를 거부했기 때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북한 사회에서는 숙청당해 그가 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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