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단연코 거부한다

재재나무
재재나무 ·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
2023/05/26

 시인에게 새로운 사랑이 찾아왔나보다. 시인의 사랑은 새로 사 온 나막신에서부터 시작된다. 새로운 님을 만난 시인은 좋아서, 무작정 좋아서 그에게는 조금 작은 신을 위해 발톱을 깎고 발뒤꿈치와 복숭아뼈를 깎아 새 신에 발을 꼬옥 맞추었다. 대충 맞춘 것이 아니라 꼬옥. 무용지물인 발톱을 깎아내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생살을 도려내야 하는 발뒤꿈치를 깎는 일은 이 사랑이 그에게는 어쩜 처음 사랑인지도 모를 일이다. 아니, 그보다 더 생뼈를 깎아야 하는 복숭아뼈를 깎아 내는 일을 서슴없이 하는 것으로 보아 오히려 생애 마지막 사랑인지도 모를 일이다. 어찌되었건 그에게 사랑은 살과 뼈를 깎아서라도 이루어야 할 무엇, 또는 지켜야 할 무엇인지도 모르겠다.

분홍 나막신
송찬호
   
님께서 새 나막신을 사 오셨다
나는 아이 좋아라
발톱을 깎고
발뒤꿈치와 복숭아뼈를 깎고
새 신에 발을 꼬옥 맞추었다
   
그리고 나는 짓찧어진
맨드라미 즙을
나막신 코에 문질렀다
발이 부르트고 피가 배어 나와도
이 춤을 멈출 수 없음을 예감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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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분야에 관심이 많아요. 그냥 저냥 생활글을 잘 쓰고 싶은 사람입니다. 나의 이야기가 우리의 이야기가 되는 글을 쓰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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