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시그널 뮤직은 무엇입니까?

젠남
젠남 인증된 계정 · 일하고 음악 듣고 글을 씁니다.
2023/03/20
라디오는 내게 큰 위로를 주는 친구였다.
어린 시절부터 아빠는 아침에 눈을 끄면 클래식 FM 93.1을 배경음악처럼 틀어주셨다. 라디오를 들으면서 가끔 맘에 들어오는 곡이 있으면 아빠의 LP를 찾아 듣기도 하면서 그렇게 라디오와의 여정이 시작되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듣자마자 빠져든 <이문세의 별이 빛나는 밤에>. 라디오를 켜고 그 시그널 뮤직이 흐르면 심장이 두근두근했다. 유행하는 가요를 듣고 또래의 사연도 듣고 가수들의 이야기도 들으며 참 행복했다. 전화 연결도 무수히 시도해봤지만 전화 통화는 신의 영역이라는 것을 안 다음부터는 맘 편히 타인의 인생을 들으며, 음악을 들으며 그렇게 사춘기의 시작을 달랬다.
이미지 : pixabay
방학이 되면 낮에 하는 <김기덕의 두 시의 데이트'>, <배철수의 음악캠프>를 들으며 공테이프에 마음에 드는 노래를 무작정 녹음해서 하염없이 들었다. 음반도 귀하고 중학생 용돈으로 구하기도 힘든 시절이었다. 동네 레코드 가게에 가서  메모지에 좋아하는 곡을 쓰고 신청하면 주인아저씨가 한 곡당 500원을 받고 LP에서 카세트 테이프 음악을 녹음해서 돌려주던 시절이었다. 저작권이 보호 받지 못 하던 암흑 시대였다. 공테이프 하나 녹음하면 5천 원 가까이해서 오리지널 카세트테이프 한 개 값과 맞먹었지만 좋아하는 곡을 주르륵 연필로 써서 완성품을 받으면 너무 설레었다. 45분짜리 테이프를 채울까, 60분짜리를 채울까, 가요로만 채울까, 팝으로 해볼까, 클래식은 너무 기니까 앞면에 다 담겨야 할텐데 잘리면 안 되니까 60분짜리로 할까, 음질은 45분짜리가 나으려나...  이런 행복한 고민을 하던 내게 라디오는 이런 음반에 대한 갈증을 채워주는 매체였다...
젠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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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치는 선생이자 음악 애호가입니다. 에세이 <곤란할 땐 옆집 언니>의 저자이며 국악, 클래식, 팝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공연을 다니며 일상을 특별하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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