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많이 걷는 날들이기를

박순우(박현안)
박순우(박현안) · 쓰는 사람
2023/12/04
걷기를 사랑한다. 언제부터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걷기가 일상이 된 시절을 떠올리면 고등학생 때가 생각난다. 집에서 학교까지의 거리는 걸어서 이삼십분 정도였다. 버스를 기다리고 타고 내리고 또 걷는 시간을 감안하면, 아예 걸어서 등하교 하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건강을 위해서도 아니었고 돈을 아끼기 위해서도 아니었다. 부모님은 자식이 아무리 늦잠을 잤다 해도 절대 태워다 주는 분이 아니었다. 그러니 무슨 일이 있어도 나는 내 두 발로 학교까지 가는 수밖에 없었다. 

집이 가까웠던 친구 하나와 매일 아침 함께 걸었다. 특별히 친한 친구는 아니었다. 비밀 이야기를 나누지도 않았다. 거의 2년쯤 아침마다 함께 걸었으니 제법 친해질 만도 한데, 우리는 그저 등교를 함께 하는 것에 그쳤다. 그 외에는 따로 연락을 주고 받거나 애써 어울리지 않았다. 무슨 이야기를 주로 나눴는지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걷는 내내 수다를 떨었는지, 아니면 조용히 걷기만 했는지, 간혹 이야기를 나눴는지도 가물 거린다.

내게 유일하게 남은 느낌 하나는 그 친구가 꽤 편했다는 것. 너무 친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아예 친분이 없는 것도 아닌 그 적당한 거리가 편안함을 주었던 걸까. 그러고 보면 다른 친구들과는 늘 팔짱을 끼고 다녔는데 그 친구와는 그런 시도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생각을 하면 할수록 독특한 관계였다. 고등학생에게는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그저 함께 걷기만 하는 사이.

매일 날씨가 쾌청했던 건 분명 아니었을 텐데, 비도 오고 바람도 불고 눈도 내렸을 텐데. 이상하게 내 기억 속의 풍경에는 늘 맑은 날만 있다. 아침 공기를 가르며 터벅터벅 걸음을 옮기던 나와 그 친구만이 존재한다. 그 시절 걷기가 좋다고 자각해 본 적은 없었다. 그저 걸어야 하기에 걸었을 뿐이다. 그 길 중간에는 고등학생에게는 참새방앗간 같은 번화가도 있었고, 계절의 변화를 그대로 담아내는 탄천도 있었다. 봄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던 풍경과 꽁꽁 얼어붙은 탄천을 살금살금 건너던 일은 여전히 기억에 또렷이 남아 있다.

낯선 ...
얼룩패스
지금 가입하고
얼룩소의 모든 글을 만나보세요.
이미 회원이신가요? 로그인
이것저것 씁니다. 『아직도 글쓰기를 망설이는 당신에게』를 펴냈습니다.
1.1K
팔로워 1.4K
팔로잉 6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