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사전이 왜곡한 역사9] 소손녕이 서희에게 굴복한 게 맞을까?

박일환
박일환 · 시인, 저술가, 국어사전 탐방자.
2024/05/24
고려가 건국했을 무렵 거란은 여러 부족을 통일해서 강대국으로 우뚝 서 있었다. 고려는 이런 거란에 대해 적대적인 태도를 취했다. 942(태조 25)년에 요나라가 친선을 위해 보내온 낙타 50마리를 개성의 만부교 아래 묶어 놓아 굶겨 죽였으며, 사신들은 섬으로 유배를 보내버렸다. 거란이 발해를 멸망시킨 무도한 나라라고 해서 취한 조치였다. 거란이 고려를 괘씸하게 여길 것은 당연했다. 그 후 거란은 수시로 고려를 침공했으며, 1차에서 3차에 이르는 커다란 전쟁을 치르게 된다.
거란의 1차 침략은 993년에 일어났고, 이때 선봉에 선 거란의 장군이 소손녕이다. 

¶소손녕(蕭遜寧): 거란의 장군(?~?). 고려 성종 12년(993)에 80만 대군을 이끌고 고려에 침입하였으나, 서희와의 담판에서 굴복하여 강동 육주를 고려에 넘겨주고 물러났다.(표준국어대사전)
   
80만이면 엄청난 대군인데, 이게 사실일까? 수나라가 고구려를 침공했을 때 113만 명을 거느렸다고 하니 거란이라고 80만을 동원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사가(史家)들의 판단은 다르다. 침략 당시 소손녕이 80만 대군을 이끌고 왔다며 큰소리쳤고, 그런 허풍을 그대로 기록한 게 마치 사실처럼 이야기되고 있을 뿐이라는 거다. 당시 소손녕의 직책은 동경유수(東京留守)였으며, 그 직책으로 거느릴 수 있는 병사의 수는 6만 정도였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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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으로 등단하여 <귀를 접다> 등 몇 권의 시집을 냈으며, 에세이와 르포를 비롯해 다양한 영역의 글을 쓰고 있다. 글을 쓰면서 국어사전을 볼 때마다 너무 많은 오류를 발견해서 그런 문제점을 비판한 책을 여러 권 썼다. 영화와 문학의 관계에 대한 관심도 많은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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