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은 웃었는가 - 3차 선거인단 참패의 의미

오늘, 이재명 경기지사가 민주당 대선후보로 확정. 그러나 3차 선거인단 투표에서는 28%만 얻어 참패. 이낙연 전 대표가 62%를 가져가며 압승.
   
민주당의 경선 구조는 이렇다. 대의원 권리당원은 권역별 순회경선에 투표한다. 이게 말하자면 '당심'에 가깝다.
   
일반당원과 시민은 선거인단을 모집한다. '민심'에 좀 더 가깝기는 하지만 사실 이렇게 말하면 안 된다. 이유는 뒤에 쓰자. 이 선거인단을 세 번 나눠 모집했고, 세 번 나눠 투표 - 개표했다. 
   
이재명(이하 호칭 생략)은 1차 선거인단에서 51%, 2차에서 58%로 이겼다. 그런데 오늘 3차를 까보니 28%로 대폭락. 2차 대비 절반 넘게 추락했다. 이것은 이번 민주당 경선 최대 이벤트다.
   
   
1.
   
2차 선거인단 투표 시작일은 9월 29일이었다. 투표율은 50%. 3차 선거인단 투표 시작일은 10월 6일이었다. 투표율은 75%. 불과 1주일만에, 투표성향과 투표율 모두 말도 안 되는 차이가 났다. ‘대장동 민심의 반영’ 말고는 다른 설명이 어려운데(이유는 아래 4번에), 그래도 좀 미묘하다. 주요 여론조사를 보면, 대장동 이슈가 이재명 지지율에 영향을 끼친 증거는 여전히 없다. 
   
데이터는 없지만 가설을 하나 세워 보면, 선거인단은 그냥 ‘민심’이 아니다. 대단히 적극적인 ‘고관여층 민심’이다. 이 층에서 1주일 사이에 대장동 이슈가 본선을 망칠 수 있다는 불안감이 급격히 확산됐을 수 있다.
   
곽상도 의원 아들의 퇴직금 50억원 보도가 처음 나온게 9월 26일이다. 2차 선거인단은 이슈의 속성이 ‘대장동 = 곽상도 아들’이던 시기에 투표했다. 그리고 대장동 이슈는 이재명의 측근인 유동규가 구속되면서 다시 뭐가 뭔지 모를 혼란스러운 국면으로 진입했다. ‘대장동 이슈가 ‘퇴직금 50억’으로 간단히 정리될 수 없다는게 분명해지는 그 시기에, 3차 선거인단이 투표권을 행사했다. 
   
‘민주당 정권 재창출을 바라는 정치 고관여층 시민’의 관점에서 상상해 보자. 이건 매우 불안한 상황이다. 대장동 그거 국민의힘 자폭인 줄 알았는데 시간이 가도 뇌관 제거가 안 된다. 본게임에 이재명을 올린 뒤에 폭탄이 터져버리면 어떡하지? 불안은 투표결정을 바꿀 강력한 동기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 대장동 이슈가 일반 여론조사에서 이재명 지지율을 깎아먹는 현상은 아직 없다. 그렇다면 위 해석이 과잉일까? 그런 것 같지는 않다. 그리고 그게 바로 이 상황이 이재명에게 생각보다 더 나쁜 이유다.
  
 
2. 
   
지금 중도층과 무당파는 여야 경선 둘 다 관심이 없다. 

중도층과 무당파는 본선에서 보고 싶은 후보가 있을 때만 예선전에 관심을 가진다. 2002년의 노무현, 2012년의 안철수가 그랬다. 2022년엔 이런 후보가 없다. 이낙연을 살리자고 민주당 경선에 뛰어들 중도층과 무당파는 없다. 야당의 대세가 윤석열이든 홍준표든간에, 나머지 하나를 살리자고 국민의힘 경선에 뛰어들 중도층과 무당파도 없다. 

그래서 지금 나오는 여론조사에서 정치 저관여 유권자의 태도는 ‘시큰둥’이다.
   
대장동 이슈가 복잡하고 어려워서, 마치 이명박 후보 시절의 BBK처럼 여론이 반응하지 않는다는 해석이 있었다. 확실히, 대장동은 복잡하다. 하지만 그 문제를 다루는 ‘이재명의 태도’, 이건 복잡하지 않다. 지금 이재명의 이슈 대응은 대통령 후보의 태도가 아니라 100분토론 나온 부대변인의 태도다. 모든 결과에 무한책임을 지겠다는 태도가 아니라 책잡히지 않겠다는 방어형 공세다. 여기서부터 고관여층의 불안이 태어나고 있다. 어 이거 진짜 뭔가 있나? 어 이러다가 본선 가서 터지나??
   
고관여 지지층이 먼저 불안해한다. 이것은 여론조사에 반영되기 이전 단계의 선행지표다. 그리고 지금은 중도층과 무당파가 대선에 관심이 없는 시기다. 그렇다는 것은, 중도 무당파 저관여층이 대선에 본격 관심을 보일 시기가 되면, 그리고 그때까지도 '이재명의 태도'가 지금과 같다면, 대장동 문제의 폭발력이 지금 예상보다 클 수 있다는 얘기다. 

이 ‘선행지표 가설’은 3차 선거인단 투표 결과를 이재명에게 가장 나쁜 방식으로 해석하는 방법이다. 그리고 지금 이재명팀은 가장 나쁜 방식의 해석을 채택해야 할 시기다. 
   
   
3.
   
사이드이펙트(이지만 곧 본편을 잡아 삼킬지도 모를)로, 이재명은 이 참패 때문에 '사퇴 후보 득표 해석 논란’에 다시 발목이 잡혔다. 지금은 사퇴한 후보의 득표를 무효표로 해석하여, 이재명의 득표율은 50.29%다. 하지만 이걸 유효표로 계산해 분모에 넣으면 분모가 커져서 득표율이 낮아진다. 얼마나? 49.33%, 그러니까 결선투표 가야 할 만큼 낮아진다.
   
이낙연은 오늘 승복선언을 하지 않았다. 캠프는 선관위 해석에 이의제기를 했다. 이로써 민주당 대선 체제는 짙은 안개 속으로 들어간다. 이게 다 3차 선거인단의 대이변에서 나온 결과다. 

이재명 캠프가 앞으로 며칠간 이 3차 선거인단 결과를 어떻게 해석하는가, 그리고 어떻게 행동하는가가 무지무지하게 중요하다. 이게 본선 결과를 결정한다는 건 좀 오바고, 적어도 본선에서 이재명의 출발지점을 결정할 것이다. 시선이 집중될 며칠 내로 예상을 뛰어넘는 과감한 선택을 해야 할 수도 있다. 여러 의미로, 오랜만에 보는 대형사건이다. 
   
   
4. 
   
선행지표 가설 외에 다른 설명이 별로 그럴듯하지 않은 이유는 이렇다. 
   
국민의힘 지지자들의 역선택? 3차 선거인단은 30만명이다. 30만명짜리 투표를 이렇게 아무 소문 없이 역선택으로 흔들 실력은 레닌이 살아 돌아와도 없다. 그런 실력이 있는 당은 그냥 내일 집권해도 된다. 
   
이번뿐만 아니라 일반적으로, 국민참여경선에서 역선택같은 복잡한 전략적 판단을 할 만큼 정치에 과몰입하는 국민은 많지 않다. 소수가 작전을 짜고 다수를 움직인다? 그런 역량 있는 정당 없다. 전국단위 경선이라면, 초박빙이 아닌 한, 역선택은 무시해도 된다. 
   
온라인 '문파'의 대결집? 그분들이 이재명을 어제오늘 싫어했나? 할 수 있었다면 1차 때부터 했다. 그러나 보시다시피, 1차와 2차는 대의원 권리당원 표심과 다를 게 없었다. 이것도 말이 안 된다. 
   
한편, 선행지표 가설의 약점은 이렇다.
   
오늘 3차 선거인단과 동시에 서울지역 권리당원과 대의원 투표 결과도 같이 나왔다. 그런데 권리당원 투표 결과는 기존 흐름과 완전히 같았다. 이것은 선행지표 가설의 반례다. 온라인 당원가입운동으로 등장한 권리당원 투표성향은 대체로 ‘민주당 지지 정치 고관여층’의 좀 더 진한 버전으로 간주되어 왔다. 
   
다만 이 경우에는, 권리당원 중에 지역조직에서 등록한 권리당원과 온라인 당원가입운동으로 합류한 권리당원의 비율을 따져봐야 한다. 지역조직 권리당원은 대체로 ‘당심’에 가까운 투표성향을 보인다. 
   
아무튼 권리당원 문제 때문에 선행지표 가설도 완전히 만족스럽지 않다. 이래저래 매우 이야깃거리가 풍부한 결과다.


5.

답글의 의견을 끌올

왜 3차 선거인단 결과만 튀는가? 흥미로운 주제네요. 대의원과 지역별 권리당원들의 표심도 크게 바뀌지 않았는데, 유독 정치 고관여층 국민들만 후보에 대한 불안감을 느껴서 표를 몰아주었다는 가설도 딱히 납득이 잘...ㅎㅎ대선 후보가 불안하다는 문제에 가장 관심이 많은 층은 권리당원과 대의원들일 텐데, 어째서 그들도 하지 않는 걱정을 일반 국민들이 더 하게 된 것일까요?

3차 선거인단은 가장 늦게 선발한 선거인단입니다. 경선에 관심이 있었던 정치 고관여층은 상당한 숫자가 7월에 이미 선거인단 신청을 했습니다. 3차 선거인단은 9월 1일부터 14일까지 모집을 했지요. 대전/충남 결과(9/4)를 확인한 후에 신청이 가능했을 뿐 아니라 1차 선거인단 결과(9/12)를 보고 신청하는 것도 가능했지요. 최근의 이슈 때문에 권리당원이 아닌 일반국민들만 표심이 흔들렸다고 판단하기 보다는 대전/충남 결과 및 1차 선거인단 결과를 보고 불안함을 느낀 이낙연 지지 성향의 사람들이 대거 결집해서 3차 선거인단을 신청한 결과라고 이해하는 편이 더 자연스러워 보이네요.



Neolith
님이 답글로 달아준 의견. 3차 선거인단만 '경선중 모집'이고, 경선 결과에 놀란 이낙연 지지층이 뒤늦게 밀집할 경로가 3차 선거인단이었다는 포인트. 이것도 유력하다.

이거 쓰느라 취재하는 과정에서 한 취재원과 '모집 기간 문제'를 따져 봤다.

첫째, '대장동 이슈 시기'와 겹치는가? 아주 살짝. 9월11일~14일께 이슈의 초기 단초가 나오는데, 시기상으로 보면 '대장동 때문에'  응징투표자가 몰려려왔다기에는 좀 무리라는 결론. 모집 시기보다는 그래서 투표 시기가 핵심이라고 봤다.

둘째, 3차 선거인단이 유일하게 '경선중 모집'이라서 차이가 났는가? 이건 가능성이 있다. 다만 내가 이 가설을 1번으로 놓기가 주저된 대목은, 너무 여러가지 가정을 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경선에 참여할 의지가 있는 이낙연 지지층이 1) 이재명 대세론에 관심이 없다가(이건 믿기 어렵다) 2) 대전충남 결과를 보고 놀라서 몰려왔는데(이건 그럴수 있다) 3) 그 기세가 이재명 지지층을 절반으로 떨굴만큼 이낙연 지지층의 열정이 크다 - 보통은 한번에 생각하기 어려운 조합. 뭐랄까 좀 서로 충돌하는 느낌이다.

그러나 답글을 보고 다시 생각해보니 이 효과를 글에서 완전히 빼버린 것은 성급했다. 나는 이재명의 득표율  58% -> 28% 이 사건을 설명하기에 '경선중 모집 효과'가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충분하지 않기로 따지면 '선행지표 가설'도 마찬가지다(권리당원 문제). 그렇다면 '선행지표 가설'과 '경선중 모집 가설'을 나란히 제시하는 편이 더 낫겠다 싶다. 이렇게 해서 이 글은 Neolith 님과의 공동작성으로 업데이트된다.


이 글의 후속을 보시려면 여기로. https://alook.so/posts/q1tnL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