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운 답'은 없다 - 유럽 코로나19 재확산의 교훈

이 글은 코로나19와 백신에 관한 정보를 담고 있습니다. 코로나19와 백신에 관한 정확한 정보는 질병관리청 홈페이지에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질병관리청-코로나19예방접종 공식 홈페이지


1. 유럽의 코로나19 재확산


어제 한 정부 회의에서 해외 주요국의 '위드 코로나'에 대한 발표를 했습니다. 코로나19 관련 발표는 어려운 점이 하나 있습니다. 보통 일주일 전쯤 발표자료를 보내는데, 상황이 너무 빠르게 바뀌어 정작 발표 당일이 되면 안 맞는 얘기를 하게 되는 경우가 생깁니다. 

어제도 그랬습니다. 덴마크가 방역 체계를 전환하면서 코로나19의 '치명적인 위협' 지위를 해제하고 코로나 패스(백신 패스)도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다고 적어놨었습니다. 그런데 불과 며칠 전부터 덴마크에 확진자가 속출하며 코로나 패스 재도입을 결정했습니다. '치명적인 위협' 지위도 여야 합의로 복구되면서 각종 방역 조치를 다시 시행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했습니다. 저는 아침에 급하게 발표자료를 수정해야 했습니다. 

확진자 급증은 덴마크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이 아닙니다. 백신 접종이 높은 나라와 낮은 나라가 공히 큰 감염 규모를 보입니다(아래 그림). 미리 파동을 겪고 감소세인 국가(영국, 불가리아, 루마니아)도 있고 현재 무섭게 확산세를 경험하는 국가(체코, 헝가리, 덴마크, 독일, 노르웨이)도 있습니다. 프랑스, 포르투갈, 이탈리아, 스페인 등은 아직 감염 규모가 크지 않지만 최근 다시 확진자가 증가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연일 2000명 이상 확진자가 발생하는 우리나라보다 모두 큰 규모의 유행을 보이고 있습니다. 
코로나19 확진자 수(6개월)

물론 백신이 없던 올 초까지와는 사뭇 다른 양상을 보입니다. 아래 두번째 그림에 보듯 상당수 나라에서 인구 65% 이상이 2차까지 접종을 마쳤습니다. 포르투갈, 스페인이 전국민 80% 이상 접종 완료율을 보이고 있으며 덴마크와 이탈리아도 70%를 넘겼습니다(우리나라도 상당히 높습니다). 반면 헝가리, 체코, 루마니아, 불가 리아 등 동유럽 국가는 상대적으로 낮은 백신 접종률을 보입니다. 우리나라에 백신을 공여하기도 했던 루마니아는 접종 완료율이 35%에 불과하고, 불가리아는 23%에 불과합니다. 백신이 모자라서 안 맞은 것은 아닙니다. 백신과 정부에 대한 불신이 뿌리 깊습니다.
백신 접종 완료율( 11월 9~11일)
백신 접종률의 차이는 유행 상황의 차이를 만들어냅니다. 아직도 '백신 맞아도 소용없다'라고 여기시는 분들은 아래 두 개의 그림을 확인해보시기 바랍니다. 영국과 비슷한 규모의 큰 유행을 겪은 불가리아, 루마니아의 사망률은 영국의 열 배에 달합니다. 접종률이 상대적으로 낮은 헝가리와 체코는 최근 사망자가 급증하는 중입니다. 반면 접종률이 70%를 넘은 이탈리아, 덴마크, 노르웨이, 포르투갈 등은 사망자 수가 크게 늘지 않습니다.  의료체계 부담도 접종률이 높은 나라와 낮은 나라 사이 차이가 납니다. 아래 두번째 그래프의 중환자 입원환자 현황을 보면 역시 불가리아와 루마니아가 눈에 띄게 높은 수준을 보입니다. 지난 1년 사이 중환자 입원수와 비교해보면, 접종률이 높은 나라들은 비슷한 유행 수준에도 더 적은 수의 중환자 발생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 사망자 수(6개월)
위중증환자 입원 현황(1년)

 여기서 중요한 건 고령층 백신 접종률입니다. 중증 및 사망자는 주로 고령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전체 접종률이 낮아도 60세 이상 접종률이 높으면 의료체계 부담을 줄일 수 있습니다. 유럽질병예방통제센터(ECDC)에 따르면 포르투갈(99.4%), 덴마크(98.9%), 노르웨이(97.5%), 스페인(97.4%) 등은 60세 이상 접종률이 높은 반면 이탈리아(89.3%), 독일(85.6%), 프랑스(84.8%), 체코(81.8%) 등은 낮은 편입니다. 루마니아(39.1%)와 불가리아(31.5%)는 60세 이상 접종률 역시 굉장히 낮습니다. 

앞으로 같은 유행 규모에서 얼마나 큰 의료체계 부담(중환자 및 사망자)이 발생할지는 고령 접종률에 달려 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참고로 우리나라 60세 이상 접종률은 91.3%로 낮은 편이 아니지만, 80세 이상 접종률이 82%로 다소 떨어져 안심할 상황은 아닙니다.



2. 어디까지 받아들일 수 있나?

사실 더 중요한 질문은 이것입니다: 우리가 감염, 중환, 사망을 어디까지 받아들일 수 있나?

백신 접종과 위생수칙 준수, 역학조사 등 방역 대응으로 질병의 위험을 최소화하더라도, 그 위험이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위험수용능력)을 넘어가면 문제가 생깁니다. 덴마크의 경우 아직 다른 유럽에 비해 중환자 수나 사망자 수가 적은 편이지만, 델타 변이의 전파력이 워낙 높기 때문에 그냥 내버려 두면 확진자 절대 규모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중증, 사망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나 겨울엔 다른 질환 환자 발생도 증가하기 때문에 코로나19만을 위해 병상을 남겨두기에 부담이 큽니다. 방역 조치 재도입을 검토하는 배경이 됩니다. 

이는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의료체계에 과부하가 걸리는 겨울에 코로나19 재유행을 그냥 내버려 둘 수 없습니다. 올여름 이전에 백신 접종을 마친 사람은 현재 면역 효과가 다소 떨어진 상황입니다. 특히 접종을 일찍 마친 고령층은 추가 접종(부스터샷)을 받지 않은 이상 현재의 위험이 더 커졌습니다. 심지어 감염 후 완치된 사람들 사이에서도 재감염이 속출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는 결코 만만한 병이 아닙니다. 

그렇다 해도 지난해와 같은 고강도 거리두기는 다시 시행하기 어렵습니다. 활동을 전면 중단하는 락다운(이동 제한 및 집합금지)은 효과에 비해 비용이 너무 큽니다. 비용과 효과를 평가하여 적절한 수준에서 개입의 강도를 결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반복해서 한 얘기지만 실내 마스크 착용, 손씻기, 소그룹 모임, 대화시 거리두기, 주기적 환기 등 비용이 적은 위생수칙은 계속 지켜가야 합니다. 백신 접종이 가장 낮은 비용으로 가장 큰 효과를 보는 수단이라는 점 역시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감당 가능한 유행의 크기에 대한 이야기가 계속되어야 합니다. 의료체계와 방역체계 정비는 이미 많은 분들이 필요한 말씀을 해주고 계시지만 코로나19로 발생할 수 있는 생명 피해와 코로나19 대응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사회경제적 피해 사이의 비교는 여전히 과소하게 논의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예컨대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이 어제 방역 조치가 강화될 수도 있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런데 제가 과문해서인지, 만약에 방역 조치를 강화하지 않았을 때 발생하는 피해는 얼마나 되며 그중 얼마만큼이 우리가 감내할 수 있는 부분인지 논의된 내용은 아는 바가 없습니다.

유행 규모가 컸던 나라에선 코로나19 사망자가 훨씬 더 많이 발생했습니다. 아래 영국의 사망자 통계 중 독감 및 폐렴 사망자와 코로나19 사망자를 비교해봤습니다. 백신 접종률이 낮으면서 유행 규모가 컸던 올 1, 2월, 코로나19 사망자는 독감 및 폐렴 사망자보다 더 많았습니다. 짙은 색으로 표시된 부분은 해당 질병이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 경우인데, 코로나19 확진 후 사망한 사람의 경우 대부분 다른 기저질환보다는 코로나19가 사망에 더 결정적인 기여를 한 것으로 나타납니다. 백신 접종률이 올라온 8, 9, 10월에는 작지 않은 유행 규모에도 불구하고 코로나19 사망자가 적어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독감이나 폐렴이 사망의 주요 원인인 사람보다는 코로나19가 사망의 주요 원인인 사람이 여전히 더 많습니다. 
각 월별 주간 사망자 통계 평균치. 사망 원인은 중복될 수 있음(즉, 코로나19 사망자에게 폐렴이 발생했을 경우 사망원인에 코로나19와 폐렴 둘다 기재됨)
우리나라에선 현재 일일 15~20명 사이의 코로나19 사망자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지금 고령층 확진자가 늘고 있어서 하루 사망자 수가 30명 내외까지 증가할 수 있습니다. 지금 수준이 1년 동안 지속되면 약 1만 명의 코로나19 사망자가 발생합니다. 우리나라에서 1년 동안 독감으로 사망하는 사람(합병증 포함)은 약 2천 명 정도로 알려져 있습니다. 폐렴으로 사망하는 사람은 2만 명 정도입니다. 우리가 지금 수준의 접종률과 방역 태세를 유지해도 독감보다는 더 많은 사람이 사망할 수 있습니다. 

아마도 시간이 지나면서 코로나19도 독감이나 폐렴처럼 우리 사회의 일부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부스터샷 포함) 백신 접종을 얼마나 더 할 것인지, 방역 조치의 강도를 어떻게 조정할 것인지는 이러한 일련의 조치가 막을 수 있는 사망자 수와 이 조치에서 발생할 수 있는 사회경제적 비용을 비교해서 결정해야 합니다. 사회경제적 비용이 너무 커서 방역을 완화하기로 결정하기 원한다면, 우리가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자 수를 어디까지 받아들일 수 있는지에 대한 윤리적 고민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우리 사회가 1년에 1만 명가량의 코로나19 사망자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을까요? 만약 이 준비가 안 되었다면 다음 선택지는 정은경 청장의 얘기대로 방역 강화밖에 없습니다. 



3. 두려움도 없이 방심도 없이

유럽에 비해 우리나라 상황은 나쁘지 않지만 몇 가지 주의할 점은 있습니다. 우선 최근 고령층 확진자가 증가하는 것입니다. 연령대별 코로나19 발생률(10만 명당 확진자 수)을 그린 아래 그래프를 보시면 60세 이상 확진자 수가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사실 4차 유행 초기 저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대부분 유행이 젊은 층에서 발생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릅니다. 백신의 보호 효과가 저하되는 시기에 방역 완화가 겹치면서 고령층에 대한 위험이 더 커졌습니다. 오늘(11월 12일) 0시 기준 중환자 수가 475명으로 3차 유행 피크 때보다 많습니다.
자료: 질병관리청

한가지 더 걱정은 우리 의료체계가 충분히 준비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특히 수도권에서 집중적으로 확진자가 발생하면서 감염병 전담병원과 중환자 치료병상 가동률이 70%가 넘었습니다(아래 그림). 인력과 시설까지 고려하면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이미 지칠 대로 지친 의료진들도 걱정입니다. 
자료: 질병관리청

여기까지 우리가 여전히 방심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유행은 끝나지 않았고 겨울은 이제 시작입니다. 여기서 더 유행 규모가 커지면 코로나19 뿐 아니라 다른 질환에 대한 치료의 질도 떨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언제나처럼 피해는 의료에 대한 접근성이 떨어지는 취약계층이 더 많이 보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여전히 어느 정도 경각심은 유지할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고위험군에 속하는 분들, 또는 그분들과 접촉이 잦으신 분들의 주의가 요구됩니다. 

하지만 지난해와 올해는 분명히 다릅니다. 백신이라는 무기가 있을 뿐 아니라 유행에 대해 더 효율적으로 대비하는 법도 익혔습니다. 어떤 사람에겐 더 이상 감염이 두려워할 일이 아니라는 점도 더 잘 알려졌습니다. 점점 감당할 수 있는 위험의 크기도 커지고 있습니다. 사회경제적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라는 점, 더 많은 분들이 공감하고 계십니다. 

유행이 2년 가까이 진행되면서 이제 다들 알게 됐으리라 생각합니다. '쉬운 답'은 없다는 것을. 고강도 봉쇄도, 백신 접종도, 의료체계 확충도, 이제 곧 보급될 치료제도, 어떤 것도 홀로 "게임 체인저"가 될 수는 없습니다. 두려움도 없이 방심도 없이, 경각심을 유지하되 위축되지 않는 완벽한 균형 대응이 가장 이상적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게 쉽지는 않겠죠. 

그래도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진자운동을 하는 시계추처럼, 한쪽으로 쏠리지 않고 흔들리나마 계속 균형을 지향할 수밖에 없습니다.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풀어지지 않도록 경각심을 강조하는 사람도, 공황에 빠지지 않도록 안심시키는 사람도 모두 필요합니다. 더 많은 사람이 참여할수록 더 적은 상처로 팬데믹 터널을 빠져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눈치 없이 또 긴 글을 적습니다. 의견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