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할 나라는 망한다

김형민
김형민 인증된 계정 · 역사 이야기 좋아하는 50대 직장인
2023/02/08
망할 나라는 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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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무사들은 죽음으로 갚아야 할 죄를 범했을 때 대개 할복으로 그 최후를 맞았다. 배를 가르고 죽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은 아니고,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그 동료나 부하가 칼을 휘둘러 목을 쳐 주는 가이샤쿠가 병행됐지만 어쨌든 할복은 무사 최후의 명예를 지켜주는 장치였다. 임진왜란 때 조선 침공의 선봉장이었던 고니시 유키나가는 세끼카하라 전투 후 할복하지 않고 체포돼 참수형을 자청한다. 가톨릭 교도로서 교리에 위배되는 자살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개항 이전의 에도 막부 시절 유일하게 할복 의식을 치를 권리조차 박탈당한 다이묘가 있다. 마츠쿠라 카즈이에(松倉勝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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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일본 큐슈 북부 시마바라 지역의 다이묘였다. 원래 그 지역은 가톨릭 교도였던 아리마 가문이 다스리던 곳이었는데 카즈이에의 아버지 마츠쿠라 시게마사가 영지를 인계받아 다스리게 됐다. 이 아버지도 농민들 쥐어짜는 데 소질이 풍부한 사람이었지만 아들 카즈이에는 가히 부전자전을 넘어 청출어람 격의 악당이었다. 세금을 내지 못한 농민에게 도롱이를 입히고 산채로 불태워 버린다던가 임산부를 얼음물에 집어넣고 고문하다가 임산부와 태아 모두를 죽여 버리는 만행을 서슴지 않았다. 여기에 가톨릭 다이묘 밑에서 신앙을 지니게 된 ‘기리시탄’들과 주군을 잃은 기리시탄 무사들의 불만이 더해져 시마바라의 난이라는 미증유의 사건이 터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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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가볍게 바라보던 막부는 1차 토벌대가 참패를 당하자 12만 대군을 동원해 시마바라 성을 포위한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던 반란군은 마지막 한 사람까지 저항하다가 전멸당한다. 곤욕을 치른 막부는 마츠쿠라 카즈이에 부자의 폭정이 반란의 단초를 제공했다는 사실을 파악한 뒤 마츠쿠라 카즈이에를 에도로 압송. 참수해 버린다. 시마바라의 난이라는 일본 역사 초유의 민란 유발 책임을 물은 것이다. 너 같은 놈은 할복할 자격도 없다는 뜻이었으리라.

시마바라의 난을 묘사한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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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당연한 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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