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진스님은 불교 쇠퇴를 막아줄까?
2024/05/16
'종교 소재 코미디'가 최근에 처음 시작된 건 아니라서 근래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게 신기하긴 하더군요. 종교인들이 많이 줄어서, 개그 소재로 보는 데에 부담이 적어져서 그런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됩니다.
요즘 '뉴진스님'으로 주목도가 높아지고 있는 코미디언 윤성호 씨의 경우도 스님 캐릭터를 연기한 지 꽤 되었습니다. 찾아보니 2015년 코미디 빅리그부터더군요. '아이러브뺀드'에서 '일진스님' 캐릭터를 맡았었죠. 사실 저도 당시에는 해당 코너를 보지 못하고, 나중에 유튜브를 통해서 접했습니다. 해당 콘텐츠를 찾아보니 유튜브에 업로드 된 시기가 2019년이더군요.
종교(문화)에 대한 과학적 연구를 모색하는 공부인입니다. 종교보다 종교적 인간, 종교문화, 미신 등 인간의 종교적 특성을 볼 수 있는 현상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고 있습니다. 비종교 현상에서 종교적 특성을 읽어내기를 좋아합니다.
@steinsein 좋은 답변 감사합니다.
@서리 이 글을 한 번 보시면 분위기를 짐작해 보실 수 있을 겁니다. https://www.e-jbs.org/archive/view_article?pid=jbs-14-2-1 '불교 쇠퇴'에 대한 절박한 위기의식이 '불교 현대화'를 통한 혁신에 전향적으로 나서게 만든 동인인 것 같습니다. 불교 지도층의 '변화'도 큰 영향을 끼쳤을 것 같습니다만(혁신을 어떤 식으로 할 것이냐를 '결정'하는 사람의 역량도 무시할 수 없죠), 내부 사정은 정확하게 아는 것이 아니라 추정적으로 말씀드릴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후자의 요소를 고려할 때, 조계종이라는 종파가 불교에서 지배적 위치(사찰의 80% 이상)를 가지고 있다는 점도 함께 고려해야 할 것 같습니다. 조계종 지도부의 혁신 결정이 '한국 불교의 변화'를 결정할 수 있는 구조이니 말입니다.
'나는 절로'라는 프로그램은 불교에서 시행하는 만남 프로그램인데, 불교가 특별히 파격적 시도를 할 수 있는 구조적 원인들이 있을까요?
@유영진 말씀하신 대로 CCM도 현대 문화에 적응적 시도를 한 사례로 볼 수 있을 겁니다. 다만 작금의 상황과는 몇 가지 차이점이 있긴 한 것 같습니다. '뉴진스님' 사례는 CCM처럼 '종교 음악'으로 정확히 규정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패러디 코드, 오락성을 빼고 이야기할 수 없는 경우인 것 같습니다. '불교 EDM'으로 장르를 규정하고 있지만, '종교 음악'이기보다는 '불교적 개그 코드', '승려 모습을 꾸민' 개그맨이 부르는 패러디 송으로 규정되기에 더 적합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문화적 유행은 '불교'에 대한 대중 인식, 특히 젊은 세대의 무관심 상태를 개선할 것이라는 점에서, 꾸준히 유지만 된다면, 쇠퇴의 흐름을 어느 정도 완화시킬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유행이 빠르게 변하는 요즘 트렌드를 고려하면 쉽지 않아 보입니다.
어쨌든 지금의 유행에서 착안하여 불교라는 전통적인 제도 종교의 형태를 완전히 바꿔서 놀이와 접목된 콘텐츠와 서비스를 지속적으로 개발한다면, '불교 신자'로서의 자의식을 갖지 않고, 불교 문화를 향유하게 되는 상황이 전개될 수도 있으며, 그 경우 '불교'는 근대적 불교와 구분되는 새로운 형태로 변모하게 되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겁니다. (조선시대까지 배타적 '불교인'이 존재하지 않았지만, 불교의 역사는 유지되었었죠.) 이런 종교 문화 트렌드가 형성된다면, 그걸 불교의 부흥이라고 이야기하게 될지, '발전적 해체'라고 이야기하게 될지 지금으로서는 단정할 수 없지만, 저는 후자로의 발전이 더 높은 문화적 적합성을 갖게 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금으로서는 말씀하신 대로 '흥망성쇠의 변화'를 판단하긴 이를 것이고, 흥이든 쇠든 모두 '가능성을 그려볼 수 있는' 상태에 불과합니다. 이 유행 이전에는 그런 '가능성'조차 그려볼 수 없었다는 점에서 고무적으로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사족입니다만, CCM의 전성기가 개신교 성장이 정점을 향해가던 시기였다는 점을 고려할 때, '쇠퇴를 막지 못했다'는 판단을 하기에는 조금 애매한 구석도 있는 것 같습니다. 개신교 성장세가 꺾이기 전에 이미 CCM의 인기가 시들해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드는데요.
개신교인으로서, 이미 CCM(contemporary christian music)이라는 유사한 시도가 있음에도 개신교의 쇠퇴를 막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떠오릅니다. 음악이나 공연 같은 분야에서 혁신이 이루어진다고 해서 그 종교 자체의 흥망성쇠가 바뀔지는 선뜻 확신하기가 어렵습니다.
개신교인으로서, 이미 CCM(contemporary christian music)이라는 유사한 시도가 있음에도 개신교의 쇠퇴를 막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떠오릅니다. 음악이나 공연 같은 분야에서 혁신이 이루어진다고 해서 그 종교 자체의 흥망성쇠가 바뀔지는 선뜻 확신하기가 어렵습니다.
@유영진 말씀하신 대로 CCM도 현대 문화에 적응적 시도를 한 사례로 볼 수 있을 겁니다. 다만 작금의 상황과는 몇 가지 차이점이 있긴 한 것 같습니다. '뉴진스님' 사례는 CCM처럼 '종교 음악'으로 정확히 규정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패러디 코드, 오락성을 빼고 이야기할 수 없는 경우인 것 같습니다. '불교 EDM'으로 장르를 규정하고 있지만, '종교 음악'이기보다는 '불교적 개그 코드', '승려 모습을 꾸민' 개그맨이 부르는 패러디 송으로 규정되기에 더 적합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문화적 유행은 '불교'에 대한 대중 인식, 특히 젊은 세대의 무관심 상태를 개선할 것이라는 점에서, 꾸준히 유지만 된다면, 쇠퇴의 흐름을 어느 정도 완화시킬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유행이 빠르게 변하는 요즘 트렌드를 고려하면 쉽지 않아 보입니다.
어쨌든 지금의 유행에서 착안하여 불교라는 전통적인 제도 종교의 형태를 완전히 바꿔서 놀이와 접목된 콘텐츠와 서비스를 지속적으로 개발한다면, '불교 신자'로서의 자의식을 갖지 않고, 불교 문화를 향유하게 되는 상황이 전개될 수도 있으며, 그 경우 '불교'는 근대적 불교와 구분되는 새로운 형태로 변모하게 되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겁니다. (조선시대까지 배타적 '불교인'이 존재하지 않았지만, 불교의 역사는 유지되었었죠.) 이런 종교 문화 트렌드가 형성된다면, 그걸 불교의 부흥이라고 이야기하게 될지, '발전적 해체'라고 이야기하게 될지 지금으로서는 단정할 수 없지만, 저는 후자로의 발전이 더 높은 문화적 적합성을 갖게 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금으로서는 말씀하신 대로 '흥망성쇠의 변화'를 판단하긴 이를 것이고, 흥이든 쇠든 모두 '가능성을 그려볼 수 있는' 상태에 불과합니다. 이 유행 이전에는 그런 '가능성'조차 그려볼 수 없었다는 점에서 고무적으로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사족입니다만, CCM의 전성기가 개신교 성장이 정점을 향해가던 시기였다는 점을 고려할 때, '쇠퇴를 막지 못했다'는 판단을 하기에는 조금 애매한 구석도 있는 것 같습니다. 개신교 성장세가 꺾이기 전에 이미 CCM의 인기가 시들해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드는데요.
@steinsein 좋은 답변 감사합니다.
@서리 이 글을 한 번 보시면 분위기를 짐작해 보실 수 있을 겁니다. https://www.e-jbs.org/archive/view_article?pid=jbs-14-2-1 '불교 쇠퇴'에 대한 절박한 위기의식이 '불교 현대화'를 통한 혁신에 전향적으로 나서게 만든 동인인 것 같습니다. 불교 지도층의 '변화'도 큰 영향을 끼쳤을 것 같습니다만(혁신을 어떤 식으로 할 것이냐를 '결정'하는 사람의 역량도 무시할 수 없죠), 내부 사정은 정확하게 아는 것이 아니라 추정적으로 말씀드릴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후자의 요소를 고려할 때, 조계종이라는 종파가 불교에서 지배적 위치(사찰의 80% 이상)를 가지고 있다는 점도 함께 고려해야 할 것 같습니다. 조계종 지도부의 혁신 결정이 '한국 불교의 변화'를 결정할 수 있는 구조이니 말입니다.
'나는 절로'라는 프로그램은 불교에서 시행하는 만남 프로그램인데, 불교가 특별히 파격적 시도를 할 수 있는 구조적 원인들이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