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 1인칭 대명사 '나'의 출현 시기
현대 국어 ‘나’는 15세기 문헌에서부터 ‘나’로 나타나 현재까지 그대로 이어진다. 다만, 15세기에 주격 조사가 결합하면 ‘내’, 관형격 조사가 결합한 형태도 ‘내’로 나타나 형태는 동일하였으나 성조에서 차이가 있었다. 특히 현대 국어와 차이를 보이는 부분은 ‘로’나 ‘와’가 결합했을 때이다. 15세기에는 ‘나’에 구격 조사 ‘로’가 결합하면 ‘날로’, 공동격 조사 ‘와’가 결합하면 ‘날와’로 나타나다가 근대 국어 시기에 ‘나로, 나와’로 실현되면서 현대 국어에 이르렀다.
https://opendict.korean.go.kr/dictionary/view?sense_no=490411&viewType=confirm
국어의 1인칭 대명사는 '나'로 대표된다. 중세어에 있어서 1인칭은 '나' 하나뿐이었다.[중략]
겸칭의 '저'가 언제 어떻게 사용되기 시작했는지는 밝혀져 있지 않다.
이기문, 《국어어휘사연구》, 1991: 45~46.
국어의 1인칭 대명사 '나'가 언제부터 사용되었을까.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은 15세기 문헌이 상한선이 된다.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지명을 한자어로 바꾸면서 1인칭 대명사 '부'와 통용되는 단어를 '나'(정확하게는 '내')로 고쳤다.
신라의 제18대 왕(재위 402~417) 실성이사금 실주왕實主王 또는 보금寶金에서 5세기 때는 1인칭 대명사 보 bu가 사용되었다.
실성마립간(實聖麻立干) 실주왕(實主王) 또는 보금(寶金)이라고도 한다.
《삼국유사》 권1.
1인칭 대명사 보 bu는 주主, 장長 뜻으로도 사용되었다.
자래현子來縣은 본래 부수지夫首只이다.
《삼국사기》 권37.
신라 경덕왕 16년(757)은 동어 중복 부수(夫[長]-首[長])를 한자어로 바꾸면서 한자어 아我로 개칭한다. '아我'(nga)는 가까운 발음의 '나'에 어말 -i가 결합되어 '내來'로 표기되었다. 성城을 뜻하는 '지只'는 지[子]로 바꾸었다. 전후 어순이 뒤집어져 해독을 어렵게 해왔다.
국어의 1인칭 대명사 '나'는 8세기 때부터 '내' 표기로 사용되었다. 그 흔적이 주격 조사 '-가'와 결합한 '내가'에 보인다.
국어의 1인칭 대명사 '나'는 8세기 때부터 '내' 표기로 사용되었다. 그 흔적이 주격 조사 '-가'와 결합한 '내가'에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