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이라는 이름의 단행본

적적(笛跡)
적적(笛跡) · 피리흔적
2024/03/11
모란에게 모두 함락 당한 집안은 더 이상 새로울 것이 없습니다. 기껏해야 그다지 변하는 것이 없는 창밖을 바라다보는 것이, 가끔 새들이 지나가는 모습을 바라다보거나 눈이 오면 창가에 달라붙다시피 하며 눈을 잡으려고 뛰어다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쌓여있는 책들도 책상의 향수나 빗 핸드폰은 갈 길을 방해하는 장애물이므로 조심스럽게 피해 다니며 걷습니다. 고작해야 침대에서 푹신한 이불 위에 편안한 자세를 잡고 있는 것이 하루 일 중 절반을 차지할 것입니다. 
 
그래서 택배가 오는 날이면 단조로운 점령지에 새로운 것이 왔다는 걸. 직감하고 그것이 무엇이건 박스를 들여다보고 박스에 자기 냄새를 묻히고 그 안에 든 것에 환호를 지르며 달려듭니다.
그리곤 이토록 쓸모없는 물건의 용도는 무엇이란 말인가를 생각하다가 다시 창가로 가서 창밖을 바라다봅니다.
 
집안에서 유일하게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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