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가게> 4. 버릴 게 없다

나철여
나철여 · (나)를 (철) 들게 한 (여)러분
2024/04/02
철여는 옷 이야기만 나오면 신이 난다.
이야기 보따리를 풀다가 화가 치밀어 올라치면 얼른 묶는다. 한 끼 건너기가 강물 건너는것 보다 힘들었다는 5,60년대 보릿고개에 태어났으니, 빈털털이가 되어도 찢어지게 힘들어도 적응이 빠르다.

빈털털이로 바닥을 칠 때 시작한 옷쟁이, 그 이야기는 지겨울만도 한데 미운정 고운 정으로 툭하면 나온다.
그러니 27년을 했지.
폐암이 걸려도 옷 먼지 속에서 살아온 철여가 먼저일텐데, 남편이 대신 걸려준 것 같아 억지로 미안할 때가 있다. 담배가 원인이라지만 그래도 남편의 보호자로 6년차다.

신은 가끔 장난꾸러기 같다. 집집마다 걱정거리 하나씩 뿌리고 '어떻게 하나' 지켜보는 것 같다. 보상도 꼭 있을거라는 믿음도 있다. 성질 급하면 못 받고 죽던가, 욕심부리면 빼앗길 뿐.

'이러다 슬픈 소설의 주인공 같은 철여, 소설 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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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컥벌컥 냉수 마시고 정신차리자.

정신 못 차리고 껄떡대는 고객의 손, 슬그머니 밀치고 다리 아래로 기장체크를 한다. 직원 '별이'는 능수능란 하다. 고객이란 걸 잊은 남정네들, 별의 별 수작들을 다 부린다. 매출의 약점을 이용한 바람기를 모조리 적었다면 책 한 권을 넘기고도 남는다.

"가브라단(밖으로 접는)할까요?"
"신사단(안으로 접는)할까요?"

"조금만 더 올려"
"아니 조금 더 내려"

단을 접는 게 아니라 성질을 접어야 한다.
신사복은 밑단처리도 유행을 탔다. 밑단 뿐 아니라 바지통도 원 주름 투 주름 노턱등 트렌드가 판매를 부추기고 있다.
거울 앞에 선 고객의 까다로움은 극치를 이른다. 자기 팔길이가 양쪽 다른 줄 모르고 자기 어깨가 처져있는 줄도 모르고 옷이 잘못 되었다고 실랑이를 한다. 재어보면 옷은 잘못 없다. 컴퓨터 재단이라 틀릴 리 없다며 설명하면 더 난리다. 내가 병신이냐고.
실밥하나까지 찾아낸다. 벨트로도 충분히 조절 가능 한 허리사이즈이건만 반인치 더 줄이라, 반의  반인치 늘려라 한다. 철여도 몰랐다. 얼굴도 양쪽대칭이 다른것 처럼, 사람마다 조금씩 양쪽 다리 길이가 다르다는 사실도, 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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