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 콩나물국

재재나무
재재나무 ·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
2024/02/19
맑은 콩나물국
/심재휘
   
여행에서 돌아오니 냉장고의 콩나물이 물러 있다
무른 콩나물은 버리고 먹을 만한 콩나물은 골라 그릇에 담는다
버려야 할 것들까지 버리지 않으려고 애를 쓰다가
새벽의 노동 속에서도 계절이 흐르고 나는 가족을 이루었구나
   
좁고 기다란 식탁에는 김이 나는 콩나물국
고춧가루도 치지않아 얼굴이 비치는 어느 아침
한 식구는 건더기를 모두 남기고
한 식구는 국의 절반을 버리고
국이 식도록 방에서 나오지 않는 식구도 있는데
맑은 국물 위의 떠도는 얼굴들은 모두
매운 점심을 지나 어느 무른 저녁으로 갈 터이니
   
버리려던 콩나물의 절반을 얻은 것이 기쁘고 
오늘은 가족이 모두 콩나물국을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며 서 있던 그 새벽의 고요가 기뻤으므로
손에 가득한 콩 비린내로 얼굴을 쓸며
해가 어디쯤 가고 있는지 창밖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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