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태어나면서부터 근처에 살던 처가와 합가를 했고, 아들이 다섯 살이 될 무렵부터 둘이서 칠여 년을 한 방에서 생활했다. 어릴 때부터 유독 잘 따랐던 아이와 모든 것을 함께 하고 싶었다.
네 살 때 처음 목욕탕을 데려갔고, 여섯 살 때 첫 영화를 선사했다. 몸 놀이를 좋아하는 아이와 시간 날 때마다 이불을 깔고 레슬링을 했고, 날이 좋은 날에는 밖에 나가 공을 차며 뛰어놀았다. 열 살 때는 둘이서만 군산 여행도 다녀왔다. 예전부터 꿈꾸었던 세상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었다. 친구 같은 아빠였고, 영원히 이 순간이 지속하리라 믿었다.
이년 전 지금 집으로 이사를 하면서 자연스레 분가하게 되었다. 아들에게는 방이 생겼다. 처음에는 낯설었는지 "같이 자자"고 안방으로 오기도 하더니 어느샌가 그 말이 사라졌다.
그 시점에 중학교에 입학하고 아들의 사춘기가 시작되면서부터 방문이 굳게 닫혔다. 하지만 나를 힘들게 만든 것은 닫힌 문이 아니라 닫힌 마음이었다. 어릴 때부터 액션 영화를 보여주었고, 감성적인 발라드를 듣고 틈만 나면 밖에서 놀았는데... 이제 아들은 공포 영화를 좋아하고, 힙합과 게임에 빠져서 나가는 것조차 싫어했다.
심지어 얼마 전에는 새로 개봉한 영화를 보러 가자고 했다가 거절당했다. 본인이 좋아하는 부류의 영화가 아니라 가기 싫다고 했다. 큰 충격이었다. 여태까지 영화를 보러 가자고 했을 때 싫다고 한 적이 없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사소한 일에도 감정 부딪치는 일이 많아졌다.
나를 점점 밀어내는 것 같아 서운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리고 아무리 코로나가 심각한 상황이라고 해도 밖에 나가서 친구들도 만나면 좋으련만 내내 방에 틀어박혀 이어폰을 끼고 흥얼거리며 게임만 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속에서 천불이 났다. 지금까지 우리는 생각도 비슷하고 취향도 같다고 믿어왔는데 그것은 나만의 착각이었을까. 아들이 무슨 생각하는지 도통 알 수 없었다.
방문이 닫히고 마음의 문도 닫혔다
점점 멀어져가는 아들을 바라보며 애간장이 탔다. 이렇게 가만히 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