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역사책을 찾아서 (5)
2023/07/20
<환단고기>는 4편의 글로 구성되어 있다. <삼성기>, <단군세기>, <북부여기>, <태백일사>인데 이 각각의 편이 원래 <환단고기> 한 권을 구성했던 것은 아니다. 이유립은 본래는 각각을 따로 만들었는데 나중에 이 모두를 한 권으로 묶는 것이 좋다고 판단했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지난 번에 소개한 <삼신기> 같은 위서도 만들었다가 나중에 <삼성기>로 바꾸었던 것인데 이런 것이 또 있다. (사실 여러가지 있다.)
그것은 <태백일사(太白逸史)>의 전신이 되는 <태백유사(太白遺史)>이다. 이 책은 아마도 그 이름을 <삼국유사>에서 가져왔을 것이다. 그런데 흔히 <삼국유사>의 ‘사’를 역사 사(史)로 아는 경우가 많다. <삼국유사>의 ‘사’는 일 사(事)자를 쓴다. 후일 실수한 것을 깨달은 이유립이 <태백유사>의 이름을 <태백일사>로 바꾼 것이다.
<태백유사>는 커발한 8호(1967.1.1)에 처음 그 이름을 드러냈다. 커발한 12호(1968.1.1)와 커발한 13호(1968.5.1), 커발한 14호(1968.9.1)에도 나온다.
그리고 1969년에 나온 <해동인물지>(성창호 편)에도 <태백유사>가 나온다. 즉 이때까지는 이유립이 <태백유사>를 밀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해동인물지>에는 무술년인 1898년에 계연수가 <단군세기>와 <태백유사>를 간행했다고 나온다. <환단고기>는 계연수가 1911년에 간행했다고 주장했으니, <환단고기>보다 앞서서 <단군세기> 등이 간행되었다고 주장한 셈이다. 1969년까지는 아직 <환단고기>를 날조하지 않았다는 뜻이 된다.
1971년에 이유립은 <환단휘기(桓檀彙記)>라는 책을 발간했다. 그런데 여기에는 계연수가 1898년에 <태백일사>를 편찬했다고 썼다. 심지어 그 발문은 계연수가 직접 쓴 것으로 해놓았다. 1973년에 낸 <광개토성릉비문역주>라는 책에서 역시 계연수가 1898년에 <태백일사>와 <단군세기>를 간행했다고 적었다.
@이문영 역시 그정도 집념이 있어야 역사학 연구를 할 수 있는것이군요 ㄷㄷ 이유립은 샬아생전 본격적으로 환단고기를 내기 전에 여기저기 뿌리고 다닌 게 자신의 발목을 잡을줄은 상상도 못했을 것 같습니다.
@화봉요원 커발한은 오래 구하고자 했지만, 도무지 구할 수가 없다가 이글루스의 한 유저 분이 제게 복사본을 보내주셔서 살펴볼 수 있게 되었죠. 하지만 복사본이 진본인지 알 수가 없어서 고민 중이었는데, 이때 장신 선생님도 한 부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서 빌려볼 수 있었습니다. 이 두 복사본은 각기 다른 사람이 복사한 것이어서 서로 대조해볼 수 있었고, 이를 통해서 진짜 커발한의 복사본이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화봉요원 제가 처음 연구를 할 때는 국회도서관에 온라인으로 오픈된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지인이 연세대에 있는 <환단휘기>를 복사해서 주신 덕분에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환단휘기를 국회도서관에서 무료로 열람할 수 있다는 게 놀랍네요. 뭔가 김진명이나 댄브라운류 음모론 소설이 인기있는 특성상 실제로도 험난한 모험을 거쳐야만 발견할 수 있을줄 알았는데... 《유사역사학 비판》에 중요하게 다뤄진 커발한도 생각보다는 쉬운 방법으로 구해서 읽어보신 건가요?
@노영식 유사역사학은 일제의 극우 사상과 관련이 있습니다만, 연재에서 다루는 위서 문제는 문화정책과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이유립은 명월관 사장으로 유명한 안순환이 세운 '명교학원' 1회 수석 졸업생인데, 명교학원이 있던 녹동서원에는 친일 유림 단체인 조선유교회와 역시 친일단체였던 단군교가 함께 있었습니다. 따라서 이들의 영향을 이유립이 받았던 것은 분명해보입니다.
재밌습니다. 속편을 기다립니다. 1919년 기미독립운동 이후 일제의 문화정책이 관련이 있을까요?
@이문영 역시 그정도 집념이 있어야 역사학 연구를 할 수 있는것이군요 ㄷㄷ 이유립은 샬아생전 본격적으로 환단고기를 내기 전에 여기저기 뿌리고 다닌 게 자신의 발목을 잡을줄은 상상도 못했을 것 같습니다.
@화봉요원 커발한은 오래 구하고자 했지만, 도무지 구할 수가 없다가 이글루스의 한 유저 분이 제게 복사본을 보내주셔서 살펴볼 수 있게 되었죠. 하지만 복사본이 진본인지 알 수가 없어서 고민 중이었는데, 이때 장신 선생님도 한 부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서 빌려볼 수 있었습니다. 이 두 복사본은 각기 다른 사람이 복사한 것이어서 서로 대조해볼 수 있었고, 이를 통해서 진짜 커발한의 복사본이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환단휘기를 국회도서관에서 무료로 열람할 수 있다는 게 놀랍네요. 뭔가 김진명이나 댄브라운류 음모론 소설이 인기있는 특성상 실제로도 험난한 모험을 거쳐야만 발견할 수 있을줄 알았는데... 《유사역사학 비판》에 중요하게 다뤄진 커발한도 생각보다는 쉬운 방법으로 구해서 읽어보신 건가요?
@노영식 유사역사학은 일제의 극우 사상과 관련이 있습니다만, 연재에서 다루는 위서 문제는 문화정책과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이유립은 명월관 사장으로 유명한 안순환이 세운 '명교학원' 1회 수석 졸업생인데, 명교학원이 있던 녹동서원에는 친일 유림 단체인 조선유교회와 역시 친일단체였던 단군교가 함께 있었습니다. 따라서 이들의 영향을 이유립이 받았던 것은 분명해보입니다.
재밌습니다. 속편을 기다립니다. 1919년 기미독립운동 이후 일제의 문화정책이 관련이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