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story : 제 7화 서울을 떠날 결심을 하다.

클레이 곽 ·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소망하는 사람
2023/06/26
공주를 모시고 사는 부마로서의 삶은 쉽지 않았습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가장 필요한것이 경제력이었는데 ...
너무 젊기도 했고, 사랑하나면 충분히 평생을 살 것 같다는  순진한 생각으로 시작한 결혼생활은 당장 서울에 전세를 얻기도 벅찬 실정이었습니다.
1987년에 신입사원으로 입사하여 종로구 효자동 산비탈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청와대가 바라다 보이는곳에서 살다보니 집 주변에는 항상 검문초소에 경찰기동대가 호위를하고 있었고, 가끔은 술이 취해서 윗도리 자켓을 잃어버리거나 파카를 잃어버리면, 경찰들이 주워주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집주인 아저씨는 국가안전기획부로 이름이 바뀐 무시무시한 기관에 근무하고 있었으나 1년남짓 사는동안 얼굴을 한번도 제대로 본적이 없었습니다.

서울특별시의 종로구민이 되었습니다.
서울특별시민이 되었다는것은 두가지 의미가 있더군요.
하나는 특별이라는 의미가 가지는 것처럼 대한민국에서 그래도 사람이라는 대우를 받는 사람이되었다는 자부심이 있었습니다. 두번째는 본격적인 빈부의 격차를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부동산이 본격적으로 폭등하기 전인 1987년에도 저의 급여인 월33만원을 하나도 쓰지 않고 10년을 저축해야만, 겨우 변두리에 집한칸을 잠만할 수 있더군요. 그러나 급여를 어찌 하나도 쓰지 않고 저축을 할 수 있겠습니까??

아내와 저는 양가집에서 전부 원치 않는 결혼을 한 상태로 결혼식은 올렸지만, 시쳇말로 땡전한푼 벌어놓은것도 없었고, 양가집에서 도움을 받을 수가 없었습니다. 공주와 부마또한 "곧 죽어도 우리힘으로 산다"는  고고한 철학이 있었습니다.
사실 당시의 대부분의 세대들, 즉 1960년대에 출생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부모에게 물려받은 재산이 거의 없어서 스스로 독립을 해야했고, 한국의 고도성장기를 이루었고 스스로 노후준비를 해야했으며, 지금은 노년이 되었지만 자녀들에게 신세를 지지 않은 "마처 세대"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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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소망하며 살지만 현실에서 항상 부끄럽게 살아가는 소시민입니다. 살다보니 벌써 나이를 먹어서 거울을 보고 자주 놀랍니다.남은 인생을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동하며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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