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룩커 픽

나는 퇴역 군인이다.

퇴역 군인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어떤 의미가 먼저 떠오르시나요?
저는 이전에는 참전 용사나 군에서 오랜 기간 수행하고 물러난 군인, 즉 노병의 이미지가 먼저 떠올랐는데요. 퇴역 군인은 군인이 병역 의무 기간을 마치고 현역 또는 예비역에서 물러나는 것을 뜻합니다.

그럼 제목을 다시 한번 읽어주세요.(궁금해 해주세요.)
28살 여성인 저는 퇴역 군인입니다.


대학교 시절 저는 우연한 계기로 ROTC에 대하여 알게 된 후 군인이 되고자 마음먹었습니다. 사실 단복을 입고 캠퍼스를 누비는 선배들의 모습을 보고 멋있다는 생각이 들어 나도 저 틈에 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멋있는 선배들이 많이 있었거든요.(흐뭇)
학군사관후보생에 지원하기까지 처음에는 호기심으로 시작했다고 하는 게 맞을 것 같아요. 하지만 대학교 3학년 때부터 2년 간의 교내 교육과 체력 단련, 4번의 입영 훈련을 거쳐가며 군인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커졌어요. 정확히는 직업 군인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요.

훈련을 받으면서 육체적으로 힘에 부치는 때도 많았어요. 행군 때는 일명 "껄떡고개"라고 불리는 언덕을 넘으며 숨을 헥헥 대다가 주저 앉기도 했고, 각개전투 때는 K-3 사수 임무를 받아 양 어깨에 K-2 소총과 K-3 기관총을 교차해서 매고 훈련장에 나서 도착하기도 전에 땀으로 샤워를 하기도 했고요. 누구보다 열심히 해내고 싶지만 체력이 마음처럼 따라주지 않아 제 자신에게 실망하는 일도 많았어요.

근데 웃기지만 군인이 되고자 마음먹은 후부터 애국심이라는 게 생겨서 포기할 수가 없었어요.
TMI지만 희한하게 훈련 가면 애국심이 가슴속에서 들끓는 게 느껴져요.(토픽을 국뽕으로 했어야했나..)
훈련소에서 아침 점호 때 애국가를 부르는 데 그게 그렇게 울컥해요. 나라를 위해, 가족을 위해 내가 이렇게 땀 흘리며 노력하고 있다는 생각에 뿌듯하기도 하고 뭉클하기도 하고..마치 내가 대단한 일을 해내고 있다는 착각에 빠졌던 것 같아요. 그리고 우리나라, 우리 가족에 대한 소중함과 고마움을 새삼 많이 깨닫게 된 시간들이었어요.

힘들었지만 재밌었고 두 번 다시 겪지 못 할 소중한 순간들이었어요. 학군단 동기들, 선후배들, 훈련소 동기들, 병과 초군반 동기들, 부대 동료 간부들 모두 저에게 인생에서 얻기 힘든 소중하고 값진 인연이 되었죠.
2015년, 훈련소 입소 날 아침

아. 그런데 군대 얘기에 젖어 논점을 흐렸어요. (군대 이야기는 해도 해도 끝이 없거든요...)
제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제가 어떤 이유로 전역을 결심하고 예비역이 아닌 퇴역을 선택하게 되었는지 에요.

제가 전역을 결심한 가장 큰 이유는 다른 것보다 짧으면 1년, 길면 3년을 주기로 부대 이동을 하는 장교로서의 생활이 저에게는 견디기 힘들었던 것 같아요. 그전까지는 "나는 여행을 좋아하니까 전국 방방곡곡으로 다니는 삶이 잘 맞을 거야" 라고 생각했었는데 경험해보니 알게 되었던  것 같아요. 
난생 처음 지방에서 혼자 사는 경험을 하면서 몸과 마음이 많이 지쳤던 것 같아요. 안정적인 가정을 꿈꾸는 저에게 매번 새로운 환경에서 혼자 해야 하는 생활은 기대와 설렘보다는 걱정과 불안으로 느껴졌거든요.
이게 가장 큰 이유이자 개인적인 이유였고, 군대라는 외부적인 이유도 있어요. 제가 직접 겪진 않았지만 주변에 힘든 상황에 놓인 여군들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우리나라 군대에서는 아직 제도적·환경적으로 여군을 소외되게 만드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작년은 대한민국 여군 창설 70주년이었고, 2019년 기준 우리나라 여군 수는 1만 2,600여 명으로 군 간부의 6.8%를 차지 한다고 해요. 국방부는 "국방 개혁 2.0"으로 줄어드는 병사 대신 간부를 늘리는 형태로 군 구조를 점차 바꾸는 방향을 추진하고 있고, 그 일환으로 여군의 비중도 확대해 나가겠다고 했어요. 이렇게 점점 여군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에도 힘든 현실은 과연 무엇일까요.

사실 제가 느낀 군대는 차별보다 배려가 많았던 것 같아요. 사회와 마찬가지로 군에도 다양한 사람들이 있고 그 중 저와 함께 한 모든 분들은 동료로서 배울 점이 많고, 늘 저에게도 응원과 도움을 주시는 좋은 분들 이었어요. (이 시간을 빌어 저의 지난 군 생활을 함께 한 많은 동기, 선후배 간부님들, 병사 친구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

그런데 그 감사한 배려가 나중에는 역으로 힘들게 다가오는 것들이 있었어요. 배려에 되려 미안하고 죄송스러운 마음이 커지고 그 때문에 작은 불편과 불만들을 소리 내서 말하기 어려워지는 것들이요.
내가 잘해낼 수 있는 일임에도 남군들만 하는 것으로 구분하고, 그 일을 함께 못한 저는 계속 미안한 마음이 들어요. 그리고 내가 같이 함으로써 누군가 불편함을 느끼게 된다면 참고 양보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의 오지랖일 수 도 있고요.)
군대는 특히 성 군기에 특히 민감해서 2차 회식에서 여군의 참여는 금지였거든요. 동료들과 더 자리하고 싶어도 제가 그 자리에 끼면 누군가에게는 불편이 될 것 같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빠져줬으면 하는 눈빛을 받기도 했고, 불편해지기 싫어 괜찮은 척 먼저 자리를 뜨기도 했죠.
반대로 제가 먼저 피하는 경우도 있었어요. 어디든 마찬가지이지만 군대도 별거 아닌 것에 대한 온갖 추측과 소문이  무성하거든요. 그래서 저는 초급 장교 때는 퇴근한 뒤 부대 상황실과 지휘통제실에서 오는 전화 이외에 다른 연락은 받지 않으려고 했어요.(업무 연락은 받았습니다.) 그렇지 않은 때도 있었지만 그냥 사소한 일들에 얽히지 않으려고 그랬던 것 같아요. 


퇴역을 결심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에요.
여군 간부는 전역 시 퇴역과 예비역을 선택할 수 있도록 되어 있고 퇴역을 선택한 경우 예비군으로서의 의무가 주어지지 않게 돼요. 저는 퇴역을 선택했어요. 위에 말씀드렸던 것처럼 저는 아직도 애국심에 불타올라요. 군인으로서의 제가 자랑스럽고 멋있었거든요! 그런데 제가 왜 예비역이 아닌 퇴역을 선택했을까요?
원저작물의 출처링크: https://news.naver.com/main/read.naver?mode=LSD&mid=sec&sid1=004&oid=358&aid=0000007700

관련 뉴스를 찾아보니 여군 전역자 중 86%가 퇴역을 선택했다고 하더라고요. 이걸 보고 몇몇 사람들은 스팩 쌓으러 군대에 왔다 간다. 형평성에 문제다 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결론적으로 예비역의 의무를 지지 않으니 그 말이 완전히 아닌 것도 아니고요.
예비역 여군은 적은 여군 수 만큼 굉장히 적은 숫자에요. 그래서 인지 예비군 시설에서 여군을 위한 것은 준비되어있지 않아요. 생활관, 화장실 등 여군이 사용할 수 있는 시설이 없는 곳이 대부분이라서 여군이 오면 오히려 부대에 귀찮은 일만 많아지거든요.  제가 있던 부대에서도 농담 삼아 얘기했어요. 제가 예비군 훈련에 오면 이것저것 할 일이 많아지니까 오지 마시라고 하면 서요. 저도 하하 웃으며 농담처럼 이야기했지만 씁쓸함은 남았어요.
국방부에서는 열심히 훈련 시켜 놓은 여군들이 퇴역을 선택해서 국가에 손실이라고 하는데요. 여군이 예비역을 선택할 수 있도록 군대가 먼저 준비가 되어야 하는 것 아닐까요. 제가 없던 것을 만들어나가는 개척자가 될 수도 있겠지만 저는 불평 불만만 가득한 사람이 되기는 싫었거든요.


그 정도의 불편도 견디지 못하면서 무슨 군대를 갔냐 그러면 사회생활도 못하는 거 아니냐 라고 하실 분이 있을 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돌이켜보면 재밌고 좋은 경험이었던 만큼 남몰래 서운함을 느끼고 소외되었던 일들도 많았던 것 같아요. 그런데 제가 반대의 입장으로 생각해보면 저 역시 배려와 차별의 경계에서 자유롭지 못했을 것 같아요.  맞아요. 이건 누가 잘못했다 안 했다 의 문제보다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이니까요.

군대를 포함한 모든 곳에 분명히 존재하는 차별적인 문제들. 우리는 어떻게 풀어나갈 수 있을까요.
하나의 울타리 안에서 모두 이런 고민 없이 살 수 있을 까요?
내 가족을 보는 시선으로 나와 다른 모든 사람을 바라볼 순 없는 걸까요?


오랜만에 군대 시절을 떠올리며 오늘 저녁엔 장삐쭈의 신병 시리즈를 다시 봐야겠어요. 
마지막으로 군 생활을 하신 모든 선후배 여러분 모두 존경합니다. 고생 많으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