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아침 詩

적적(笛跡)
적적(笛跡) · 피리흔적
2022/12/25


코러스

                                이기리

너는 점심시간만 되면 식당에 가는 대신
빈 교실에 남아 도시락을 먹었고 나처럼
매일같이 도서관에 조용히 앉아 있다가 갔다

그리고 너는 내가 걸어 둔 외투에
항상 자신의 외투를 겹쳐 걸어 두었다

책을 읽다가 문득 고개를 들면
너는 엽서만 한 수첩에 무엇인가를 적고 있었다

창밖에서 들려오는 웃음소리들이
책장을 넘기는 사이사이에 눈송이처럼 떨어져
녹아내리기도 했다

옷을 챙기고 나가 운동장 주변을 좀 걷다 들어올까 싶다가도

나의 외투를 뒤에서 끌어안고 있는 너의 외투를 바라보고 나면

그 자리에서 책을 단숨에 다 읽었다

전화를 받으려고 황급히 나가는 네 뒷모습을 하염없이 쳐다보고
두고 간 수첩을 집어 들었다가
가만히 내려놓았다

수선스러웠던 복도에 찾아온 고요 속에서 ...
얼룩패스
지금 가입하고
얼룩소의 모든 글을 만나보세요.
이미 회원이신가요? 로그인
언제나 겨울이었다
2.5K
팔로워 792
팔로잉 8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