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에모] 하버드 vs. 일신여상
2023/03/28
"하바드 나온 년보다 일신여상 나온 년이 더 빨리 집산다."
이 얘기를 꽤 자주 들으면서 자랐다. 홀어머니에 외아들로, 아무 것도 없이 서울에 상경하셔서 자수성가하신 아버지는 아마도 먹물묻은 엘리트 주의에 빠진 청년들에게는 '잘난척 하지마라,' 무수저 청년들에게는 '포기하지 마라’ 라는 조언을 하고 싶으셨던것 같다. [성가의 기준은 개인에게 맡긴다. 지난 ‘돈’글을 읽으셨다면, 내가 아무것도 안하고 살아도 되는 재벌은 아닌 것을 아시겠지만.] 놈이 아니라 년인이유는 여성비하가 아니라 여상이라는 학교가 여자들이 다니는 곳이여서다. 놈이나 년이나, 메세지 전달에는 큰 차이가 없다. 타격은 거기서 오는게 아니다.
그의 말들은 꽤나 unorthodox [언오소독스] 했고, 마냥 독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경험을 통한 혜안이 있다. [어록을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었는데, 언젠가 모아봐야겠다. 욕설이 많아서 펴내지는 못할수 있겠지만.] 그래서 더 아팠다. 어떻게 봐도, 나는 후자보다 전자에 가까웠기에.
그렇게 되지 말아야지, 할 수록 자꾸만 전자에 가까워지는 것 같았다. 나는 왜 이럴까를 고민하던 시기를 지나, 그럼 왜 이렇게 키웠나. 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엘리트를 선호하는 가풍이라면 오히려 이해가 됐을텐데...이름있는 대학보다는, 직업학교를 나와 빨리 세상에 자리를 잡는 것이 부모를 자랑스럽게 했을까. 그것도 아닌것 같은데. 원망이 아니라, 정말 이해해보고자 하는 궁금증이 들었다. 그리고, 스노우볼 효과를 생각하면 근면, 성실도도 나쁘지 않고, 머리도 나쁘지 않고, 부양해야할 가족도 없는 나는 내 부모보다 훨씬 더 눈덩이를 크게 불릴 수 있었어야 하는데, 어디선가 브레이크가 걸려버렸다. 별다른 사춘기도 없이 큰 말썽도 없이, 대학까지 결혼까지, 잘 굴러가던 나라는 눈덩이는 어른이 되어서 이리 저리 돌았다. 아이도 낳고, 일도 계속하고, 눈덩이는 계속 굴러가는데, 눈이 자꾸 붙지를 않고 여우눈 같은 눈가루만 붙는 건지 떨어지는 ...
엄마와 아이의 마음 모두 알아주는 교육자
변화하는 미래를 위해 스스로 발전하고, 아이들이 스스로의 재능을 찾아 pursue하는 것을 도와주는
조력자,인도자, 교육자 를 향해
[합평]
민다님만의 필체가 선명하게 드러나는 글 잘 읽었습니다. 글 가운데 ‘원망이 아니라 정말 이해해보고자 궁금한 것’에서 지금 저의 30대 딸과 있었던 어느 날이 떠올랐어요. 아이가 그 ‘궁금함’들을 물어온다면 나는 어떤 말을 들려줄 수 있을까 잠시 멈춰봤어요.
살면서 수시로 거처를 옮기며 실제 곤궁하게 살았지만 딸애는 별 문제없이 무난하게 지내왔다고 생각했어요. 워낙 낙천적인 성격에 느긋하고 순했으니까. 단지 그 이유 때문이 아니라 그동안 우리(부모)와 부딪침이 있어도 잘 풀고 지내왔다고 여겼기에. 지난 추석명절에 가족들이 모인 화기애애한 자리에서 딸애는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이전의 우리(부모)가 어떠했는지 누군가에게 고자질 하는 것처럼 낱낱이 까발렸어요. 분위기는 급 애매모호[나는 니들이 내게 한 ‘짓’들을 모두 알고 있다?ㅋ]해졌습니다. 이번 생에 부모가 처음, 자식이 처음이라 두루뭉술 넘어가는 차원이 아니라 ‘양육방식’을 대하는 a부터z까지의 태도와 자세를 묻는 질문부터 자기가 원했었던 답까지 좍 펼쳐놓은 미니 웍숍같은. 전혀 예기치 못했던 돌발 상황이었고 그런 돌발내용을 웃으면서 차근하게 짚어주던 말이라 더 아프게 다가왔습니다. 처음엔 충격이었는데 시간이 지나자 그렇게 터뜨려준 게 오히려 고마웠어요. 우리는 아이와 지극히 ‘정상의 가족’이라 생각했는데 많이 착각하고 어떤 부분은 의도적으로 외면하고 있었던 겁니다.
하바드와 일신여상의 경계에는 ‘집’과 ‘공부’가 중심으로 자리 잡으며, 부모님의 가장 큰 가치에는 집이 있고 민다님은 공부에 가 있는 것으로 읽혀집니다. 집은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어떤 정신영역의 바깥으로 물적으로 꾸밀수록 화려해지는 데, 공부는 자기 전공이나 학위처럼 보이지 않지만 스노우볼의 눈덩이가 단단하게 쌓여가는 과정일 것 같습니다. 원하는 공부를 하면서 일도 하고 운이 좋아 평탄하게 살아온 ‘나’는 누군가에게는 로망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 민다님의 글 끝에는 ‘행복’이 있네요. 신데렐라의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고 그려보는 막연함이 아닌 지금 이 순간 나의 행복! 발달, 전개, 위기, 절정, 결말의 어느 쪽에 행복을 둘지는 민다님의 선택에 따라 결정될 것 같습니다. 위기의 순간에도 행복은 있으니까요.
민다님의 글을 끝으로 합평을 끝내게 되었습니다. 합평이라 쓰고 하고 싶은 이바구를 한 것 같군요. 얼에모를 하면서 구성원분들마다 5편씩의 에세이를 접하다보니 다양한 생각과 고민들이 무엇이고 공감과 이해의 층이 넓고 깊어진 것 같아요. 혼자는 엄두도 못낼 2주에 한번 글쓰기, 함께라서 쓸 수 있었고 함께하는 힘의 저력을 느꼈습니다.
글 쓰시느라 애쓰셨습니다.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합평]
정답이 없는 글은 어떻게 쓸 수 있을까로 고민해본 적이 꽤 있습니다. 민다님의 이번 글을 읽으면서 아! 이렇게 쓸 수도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네요.
한 시대적 환경적 배경에서의 정답이 다른 조건에서는 정답이 아니게 되는, 심지어는 정답이라는 가치 그 자체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지는 글의 흐름 속에서, 지금 시대의 성공방정식의 복잡성과, 우리가 중요시 여기는 가치에 대한 질문이 계속해서 떠오릅니다.
3000자 가량의 글을 6000자 정도로 소비한 느낌이 들어요.
중간중간 [ ]로 등장하는 이중 자아(?)가 무척 흥미로웠습니다. 보통의 글은 직렬적인 성질이 강한 반면, 이번 글은 [ ]로 인해 대화 내지는 참견의 형태로 글에 가지를 덧대어, 신선한 느낌을 받았어요. 더 솔직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무미건조하게 넘어갈뻔한 내용도, [ ] 덕분에 흥미롭고 한 번 더 생각해 보게 되었네요. 비슷하게는 나무위키의 취소선 화법을 본 적이 있는데, 이렇게 에세이에서도 충분히 활용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전에 민다님께서 재미있는 글을 쓰고 싶다고 한 적이 있던 것 같은데 [아니면 죄송합니다], 민다님의 글은 재미있습니다. 재미있는 내용이 아닐 수 있음에도 그 속에서 재미있는 소재와 화법을 구사하시는 것 같아요. 뻔하지 않은 질문을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전개하는 능력도 돋보여요. 이런 것들이 모여 민다님의 글의 색을 만들어내는 것 같습니다.
처음 글 부터 마지막 글 까지 민다님의 글은 참 자유롭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복잡한 문제를 맥을 잃지 않고 재미있게 풀어내는 타고난 이야기꾼이 아니실까 생각해 봅니다.
그동안 얼에모 함께해서 무척 즐거웠습니다. 글이 참 좋아서 많이 배워보려고 노력했던 분이기도 해요. 감사하고 고생하셨습니다!
[합평]
제목에서 부터 어렴풋이 내용이 짐작이 되었습니다.
실속없이 겉만 번지르한 엘리트 보단 현실을 빨리 자각하고 받아들이는 사람이 더 알차다는 생각을 가지신 부모님 밑에서 성장했지만 어쩌면 그 생각에 동참할 수 없는 마음이 이 글을 쓰게 하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타고난 공부머리가 있어 죽어라 나를 갈아 넣어 공부하진 않았어도 충분히 좋은 결과가 있었고
또 지금은 공부를 좋아했다는 걸 깨닫고 뒤늦게 만학도의 가고 계신 민다님.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많은 사람들의 부러움의 대상이 될 수도 있을텐데 아직도 부모님의 양육방식이나 사고 방식에서 자유롭지 못한 듯한 느낌이 듭니다.
부모보다 훨씬 더 혜택을 받고 더 많이 배우고 지극히 정상적인 루트를 밟았음에도 눈덩이가 커지지 않는 것을 분석하고 파들어 가며 고민 하는 끝에는 부모님이 계신다는 건, 너무 생각에 깊이 함몰된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비록 실속을 중히 여기는 부모라해도 굳이 헝거리하게 키우는 부모가 세상에 어디 있겠습니까.
가능하면 편하게 많이 누리게 해 주고 싶은게 부모 마음이지만 현실적인 것도 무시는 못하신거겠지요.
이미 민다님이 가지고 있고 누리고 이루어 가는 모든게 제 눈에는 커다란 눈덩이처럼 보입니다. 눈가루 아니구요.
글 중간에 []()를 여러번 사용하셨는데굳이 괄호 속에 넣지 않고 글 속에 녹여 넣든가 어떤 건 생략했으면 어떨까 생각해 봤습니다. 저는 괄호가 글 몰입에 약간 방해가 되는 느낌이었습니다.
마지막에, 일신여상을 나와 집을 빨리 샀다고 다 행복할까.
집 사는 걸로 인생이 끝나는 건 아니니까. 라는 문장이 이 글 전체. 그리고 민디님의 마음을 대변해 주는 걸로 보입니다.
일신여상 나와 일찌감치 집을 산 그녀는 분명 만학도의 길을 걸으며 자기 인생을 멋지게 수놓고 있는 민다님을 부러워 할 것입니다. 절절히...
그 동안 함께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합평]
하버드 vs 일신여상
"하바드 나온 년보다 일신여상 나온 년이 더 빨리 집산다."
제목과 첫 문장에서 ‘무슨 글일까?’ 호기심을 자극하는 듯합니다. 하바드는 전 세계 사람 모두가 아는 학교이지만 ‘일신 여상’은 너무 생소해서 어떤 것을 대표하는 학교일까?생각하며 글을 읽어 나갔습니다. 대비되는 단어와 ‘년’에 눈이 반짝이는 제 자신을 만났네요.
부모님 세대들의 가치관이 천차만별인 듯합니다. 대부분 궁핍하고 힘들었던 시절을 버티고 이겨낸 분들이다 보니 삶에서 ‘돈’의 가치를 매우 중요하게 여깁니다. 더불어 ‘내 집 장만’이 인생의 목표로 두고 살아온 세대이기도 하고요. 반면에 학벌을 우선순위로 두는 분들도 많습니다.
부모님의 의중을 이해하기 위해 자신의 과거로 돌아가 되짚어보는 방식이 인상적이었고 글을 읽는 내내 자신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하고 답을 찾아가려 노력한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지기 싫어하는 성격이 아니라, 오히려 남에게 지는 것에 연연하지 않는 성격이라 스트레스가 적었다고 생각한다.>
그동안의 글을 읽으면서도 민다님이 굉장히 자유분방하고 독립적인 분이라는 것을 느꼈는데 이번 글에서 왜 그런 느낌이 들었는지 조금 퍼즐이 맞춰지는 듯했습니다. 딸이 만학도로 하고 싶은 공부를 하게 되었을 때 누구보다 기뻐했을 아버지가 오른 환율에 "재수도 드럽게 없는 년"이라 말씀하시는 걸 보고 현실 부모의 케미가 느껴져 웃음이 나왔습니다.
[얼에모]를 통해 글을 쓰고 나누는 의미 있는 시간들을 함께 할 수 있어 영광이었습니다. 앞으로도 거침없고 솔직한 민다님의 글을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고생 많으셨어요^^
@민다
[합평]
마지막 글감인 '나'에 대한 합평(이라고 하기 참으로 부끄럽지만)을 하면서 발견하게 된 것중 하나는 '생각' 에 대한 내용이 많았다는 점입니다. 내가 누구인지에 대한 생각, 힘든 환경에서 버티고 견디기 위해 마법을 거는 생각 등. 무난한 삶이지만 불어나지 않는 눈덩이를 보면서
부모의 양육방식에 대한 의문을 갖고 왜 나의 삶에 브레이크가 걸린 것인지를 자문하는 민다님 또한 자신에 대해 끊임 없는 '생각'을 하는 사람인 것 같아요.
글의 제목에 나와 있는 하바드와 일신여상은 경제적인 성공에 포커싱 된 것이라고 이해했습니다. 글을 읽으면서 자라온 환경이 크게 빡세지도 않고 공부 머리도 뛰어난, 큰 굴곡 없는 삶을 살아온 민다님인 것을 알게 되었는데, 평범해 보이는 일상이 더 이상 눈덩이가 불어나지 않는 다는 것이 정확히 무슨 의미인지는 캐치하지 못했어요. 아마도 글의 제목에 나와있는 것처럼 단순히 경제적인 문제에 국한되는 것이 아닌, 나라는 존재 자체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이지 않을까 생각해 봤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과 마주하는 때가 있는 것 같습니다. 사춘기를 일찍 겪는 아이들처럼 10대에 이런 질문과 마주하기도 하고, 20대, 30대, 혹은 더 늦게 40춘기나 50춘기 처럼 경험할 수도 있는 것 같아요. 나를 알아가고 눈덩이를 불려 나가는 과정에서 '공부' 를 선택한 것이 흥미로웠습니다. 뒤늦은 사춘기에 방황을 하거나 혼란스러울 수도 있지만, "재수도 드럽게 없는 년" 소리를 들어가며 공부에 집중하는 모습은 이 시기를 잘 극복하고 아마도 더 성장할 수 있는 동력을 갖춘 삶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글의 내용과는 상관 없지만 문득 영재 아들과 함께 세계 제일의 국가 미쿡에서 살아가는 민다님에게도 견디기 힘든 시련과 같은 게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저의 기준에서는 다른 세계의 사람 같아 보여요) 하바드대학도 일신여상도, 부(富)와 건강과 명예도 언제까지 우리를 지켜주지 않고 고난이라는 녀석은 언제가 예상치 못하는 타이밍에 훅 하고 오기 때문에, 굴곡 없는 무탈한 삶은 위기에 취약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세상 학문에 대한 학습을 하는 것과 동시에 자기 자신에 대한 학습도 잘 해나가시길 응원합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합평]
이번 글을 읽으면서 민다님의 문체에 적응이 된 스스로를 발견했습니다! 하하 처음엔 좀 낯설었어요. 자신만의 속도와 어투로 이야기를 끌어가셨는데 무척 새로웠거든요. 단순히 구어체라고 표현하기에는 좀 애매한 민다님만의 고유의 문체가 있어요. 그게 낯설어 이야기 속에 풍덩 빠지는 게 처음엔 좀 힘들었는데... 다섯 번째 글까지 함께 걸어오고나니 어느덧 그 문체에 익숙해지고, 그 문체를 좋아하게 된 저를 만납니다.
남다른 부모를 두셨더라고요. 하버드보다 일신여상.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부러웠을 부모의 모습이지만, 하버드 갈 자식이었다면 숨막히는 부모였을 수도 있죠. 명확한 건 늘 양날의 검이 되는 것 같아요. 모 아니면 도가 되는 길 위에 설 수밖에 없달까요. 제게는 좀 부러운 부모였지만, 남다른 부모님께도 한계가 있었던 것 같아요. '집을 먼저 산다'가 기준이 되는 세상. 엘리트 의식은 없지만, 삶을 성공과 실패로 나누는 집이라는 명료한 잣대가 들어가면서, 또다른 엘리트의 모습을 제시하신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봤어요.
글을 읽으면서 글쓴이가 이 부분에 대한 생각을 무척 오래 많이 해왔다는 걸 엿볼 수 있었어요. 아무래도 남들과는 전혀 다른 템포와 타이밍으로 굴러가는 스스로를 바라보면서, 원인을 찾으려 하셨던 것 같아요. 당연히 그 뿌리에는 부모가 있었을 테고요. 깊은 생각을 하신 만큼 글은 깊어질 수밖에 없기에, 독자인 저로서는 무척 기쁘게 읽었습니다.
부모님의 남다른 가치관이 글쓴이에게는 맞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그럼에도 큰 어려움 없이 자랐던 유년이 결국 글쓴이를 만학도의 길로 거침 없이 나아갈 수 있게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나'가 만들어질 수 있는 토양이었던 것이죠. 그렇기에 언제 어디서든 타인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나의 길'로 나아갈 수 있었던 동력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좀 아쉬웠던 건 '나'에 대한 명확한 설명이 많지 않다는 점이었어요. 부모와 친구의 시선에서 바라본 나는 있지만, 내가 아는 나는 언급을 많이 안 하셨더라고요. 분명 알고 계신 분인 것 같아서 이 부분에 대한 보충이 들어간다면 좋을 것 같습니다. 혹시 잘 모르신다면 좀 더 고민해보시면 어떨까 싶어요. 그게 명확해지면 글에 대해 이해하는 게 더 수월할 것 같습니다.
마지막에 일신여상과 하버드를 다시 언급하시면서 '행복할까'라는 물음을 던져주셨어요. 의미가 있는 질문이긴 하나 좀 모호한 질문이기도 합니다. 행복의 정의가 또 내려져야 하고, 글쓴이의 만학도가 되기 이전의 삶과 이후의 삶 중 어느 게 더 행복인지에 대한 이야기도 들어가야 하기에. 만일 이 부분을 살리실 거라면, 앞에 언급한 두 부분을 보충 서술하신다면 더 좋은 마무리가 될 것 같습니다. 너무 긴 얘기의 시작이라... 아예 빼고 가시는 것도 추천합니다.
에세이를 처음 쓴다던 분이 어느덧 다섯 편이나 내셨어요!! 뿌듯한 건 저뿐이 아니겠지요? 민다님은 글도 삶도 자신만의 속도와 방향으로 가시는 분인 것 같아요. 참 멋지고 배우고 싶은 점이에요. 다섯 편의 글을 읽으면서 그 멋진 삶과 생각을 더 깊이 들여다볼 수 있어 즐거웠습니다. 앞으로의 글도 응원합니다. 정말 감사했어요!!
[합평]
마침 오늘 일신여상에 대해 언급하는 라디오스타 유튜브를 봤는데, 제목에 떡하니 일신여상이 등장하기에. 일신여상은 도대체 무엇을 상징하는 학교인 것일까.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목만 보고도 뭔가 강렬함을 느꼈는데요.
이야기는 하바드 나온 년이 왜 못 되었는가로 시작됩니다. 학업하는 과정에 큰 실패는 없었지만, 화장실에서 몰래 공부할 정도는 아니었던 것 때문이었던 것일까요.
세상에서 말하는 모든 벤치마크를 다 어려움없이 찍었음에도 왜 방향을 잃었던 것일까. 꼬리에 꼬리를 물었던 질문은 부모의 양육방식까지 이어지게 된다. 이렇게 열심히 공부하는 것에만 집중시켜놓으면 좋은 아웃풋이 나올 거라는 막연한 이야기.
그런데 헝그리 정신으로 대체되는 성공에 대한 열망, 편안하게 살아가게 만들고 싶은 마음, 애당초 이 두 가지를 다 가지는 것은 어쩌면 모순이 아니었을까.
논리적으로 서술된 뼈대 위에 중간중간 민다 님 특유의 유머가 덧대어 흡입력 높은 이야기가 완성되었습니다. 써주신 이야기를 보다보면 흡입력이 대단해 쭉 빨려 들어가 읽게 되는데요. 이렇게 글을 쓸 수 있는 동력은 과연 무엇일지 궁금합니다. 그동안 얼에모에서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앞으로 다른 글에서 또 만나요.
너무 공감대많은 글이네요. 민다씨. 다독다독.
일신여상이라는 제목을 보고 깜놀했어요. 제가 일신여상과 같은 재단의 잠실여고 나왔거든요 ^^ 일신여상 1부와 2부 일신여중, 잠실여고 이렇게 네 학교가 함께 있었고 여학생이 많아서 학교 앞에 즉석떡볶이집이 많았어요. ^^
소름 돋는 게 오늘 친구 만나서 오래 이야기했는데 비슷한 주제가 겹쳤어요 !!!
소름 돋는 게 오늘 친구 만나서 오래 이야기했는데 비슷한 주제가 겹쳤어요 !!!
[합평]
이번 글을 읽으면서 민다님의 문체에 적응이 된 스스로를 발견했습니다! 하하 처음엔 좀 낯설었어요. 자신만의 속도와 어투로 이야기를 끌어가셨는데 무척 새로웠거든요. 단순히 구어체라고 표현하기에는 좀 애매한 민다님만의 고유의 문체가 있어요. 그게 낯설어 이야기 속에 풍덩 빠지는 게 처음엔 좀 힘들었는데... 다섯 번째 글까지 함께 걸어오고나니 어느덧 그 문체에 익숙해지고, 그 문체를 좋아하게 된 저를 만납니다.
남다른 부모를 두셨더라고요. 하버드보다 일신여상.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부러웠을 부모의 모습이지만, 하버드 갈 자식이었다면 숨막히는 부모였을 수도 있죠. 명확한 건 늘 양날의 검이 되는 것 같아요. 모 아니면 도가 되는 길 위에 설 수밖에 없달까요. 제게는 좀 부러운 부모였지만, 남다른 부모님께도 한계가 있었던 것 같아요. '집을 먼저 산다'가 기준이 되는 세상. 엘리트 의식은 없지만, 삶을 성공과 실패로 나누는 집이라는 명료한 잣대가 들어가면서, 또다른 엘리트의 모습을 제시하신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봤어요.
글을 읽으면서 글쓴이가 이 부분에 대한 생각을 무척 오래 많이 해왔다는 걸 엿볼 수 있었어요. 아무래도 남들과는 전혀 다른 템포와 타이밍으로 굴러가는 스스로를 바라보면서, 원인을 찾으려 하셨던 것 같아요. 당연히 그 뿌리에는 부모가 있었을 테고요. 깊은 생각을 하신 만큼 글은 깊어질 수밖에 없기에, 독자인 저로서는 무척 기쁘게 읽었습니다.
부모님의 남다른 가치관이 글쓴이에게는 맞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그럼에도 큰 어려움 없이 자랐던 유년이 결국 글쓴이를 만학도의 길로 거침 없이 나아갈 수 있게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나'가 만들어질 수 있는 토양이었던 것이죠. 그렇기에 언제 어디서든 타인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나의 길'로 나아갈 수 있었던 동력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좀 아쉬웠던 건 '나'에 대한 명확한 설명이 많지 않다는 점이었어요. 부모와 친구의 시선에서 바라본 나는 있지만, 내가 아는 나는 언급을 많이 안 하셨더라고요. 분명 알고 계신 분인 것 같아서 이 부분에 대한 보충이 들어간다면 좋을 것 같습니다. 혹시 잘 모르신다면 좀 더 고민해보시면 어떨까 싶어요. 그게 명확해지면 글에 대해 이해하는 게 더 수월할 것 같습니다.
마지막에 일신여상과 하버드를 다시 언급하시면서 '행복할까'라는 물음을 던져주셨어요. 의미가 있는 질문이긴 하나 좀 모호한 질문이기도 합니다. 행복의 정의가 또 내려져야 하고, 글쓴이의 만학도가 되기 이전의 삶과 이후의 삶 중 어느 게 더 행복인지에 대한 이야기도 들어가야 하기에. 만일 이 부분을 살리실 거라면, 앞에 언급한 두 부분을 보충 서술하신다면 더 좋은 마무리가 될 것 같습니다. 너무 긴 얘기의 시작이라... 아예 빼고 가시는 것도 추천합니다.
에세이를 처음 쓴다던 분이 어느덧 다섯 편이나 내셨어요!! 뿌듯한 건 저뿐이 아니겠지요? 민다님은 글도 삶도 자신만의 속도와 방향으로 가시는 분인 것 같아요. 참 멋지고 배우고 싶은 점이에요. 다섯 편의 글을 읽으면서 그 멋진 삶과 생각을 더 깊이 들여다볼 수 있어 즐거웠습니다. 앞으로의 글도 응원합니다. 정말 감사했어요!!
[합평]
마침 오늘 일신여상에 대해 언급하는 라디오스타 유튜브를 봤는데, 제목에 떡하니 일신여상이 등장하기에. 일신여상은 도대체 무엇을 상징하는 학교인 것일까.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목만 보고도 뭔가 강렬함을 느꼈는데요.
이야기는 하바드 나온 년이 왜 못 되었는가로 시작됩니다. 학업하는 과정에 큰 실패는 없었지만, 화장실에서 몰래 공부할 정도는 아니었던 것 때문이었던 것일까요.
세상에서 말하는 모든 벤치마크를 다 어려움없이 찍었음에도 왜 방향을 잃었던 것일까. 꼬리에 꼬리를 물었던 질문은 부모의 양육방식까지 이어지게 된다. 이렇게 열심히 공부하는 것에만 집중시켜놓으면 좋은 아웃풋이 나올 거라는 막연한 이야기.
그런데 헝그리 정신으로 대체되는 성공에 대한 열망, 편안하게 살아가게 만들고 싶은 마음, 애당초 이 두 가지를 다 가지는 것은 어쩌면 모순이 아니었을까.
논리적으로 서술된 뼈대 위에 중간중간 민다 님 특유의 유머가 덧대어 흡입력 높은 이야기가 완성되었습니다. 써주신 이야기를 보다보면 흡입력이 대단해 쭉 빨려 들어가 읽게 되는데요. 이렇게 글을 쓸 수 있는 동력은 과연 무엇일지 궁금합니다. 그동안 얼에모에서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앞으로 다른 글에서 또 만나요.
너무 공감대많은 글이네요. 민다씨. 다독다독.
일신여상이라는 제목을 보고 깜놀했어요. 제가 일신여상과 같은 재단의 잠실여고 나왔거든요 ^^ 일신여상 1부와 2부 일신여중, 잠실여고 이렇게 네 학교가 함께 있었고 여학생이 많아서 학교 앞에 즉석떡볶이집이 많았어요. ^^
[합평]
민다님만의 필체가 선명하게 드러나는 글 잘 읽었습니다. 글 가운데 ‘원망이 아니라 정말 이해해보고자 궁금한 것’에서 지금 저의 30대 딸과 있었던 어느 날이 떠올랐어요. 아이가 그 ‘궁금함’들을 물어온다면 나는 어떤 말을 들려줄 수 있을까 잠시 멈춰봤어요.
살면서 수시로 거처를 옮기며 실제 곤궁하게 살았지만 딸애는 별 문제없이 무난하게 지내왔다고 생각했어요. 워낙 낙천적인 성격에 느긋하고 순했으니까. 단지 그 이유 때문이 아니라 그동안 우리(부모)와 부딪침이 있어도 잘 풀고 지내왔다고 여겼기에. 지난 추석명절에 가족들이 모인 화기애애한 자리에서 딸애는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이전의 우리(부모)가 어떠했는지 누군가에게 고자질 하는 것처럼 낱낱이 까발렸어요. 분위기는 급 애매모호[나는 니들이 내게 한 ‘짓’들을 모두 알고 있다?ㅋ]해졌습니다. 이번 생에 부모가 처음, 자식이 처음이라 두루뭉술 넘어가는 차원이 아니라 ‘양육방식’을 대하는 a부터z까지의 태도와 자세를 묻는 질문부터 자기가 원했었던 답까지 좍 펼쳐놓은 미니 웍숍같은. 전혀 예기치 못했던 돌발 상황이었고 그런 돌발내용을 웃으면서 차근하게 짚어주던 말이라 더 아프게 다가왔습니다. 처음엔 충격이었는데 시간이 지나자 그렇게 터뜨려준 게 오히려 고마웠어요. 우리는 아이와 지극히 ‘정상의 가족’이라 생각했는데 많이 착각하고 어떤 부분은 의도적으로 외면하고 있었던 겁니다.
하바드와 일신여상의 경계에는 ‘집’과 ‘공부’가 중심으로 자리 잡으며, 부모님의 가장 큰 가치에는 집이 있고 민다님은 공부에 가 있는 것으로 읽혀집니다. 집은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어떤 정신영역의 바깥으로 물적으로 꾸밀수록 화려해지는 데, 공부는 자기 전공이나 학위처럼 보이지 않지만 스노우볼의 눈덩이가 단단하게 쌓여가는 과정일 것 같습니다. 원하는 공부를 하면서 일도 하고 운이 좋아 평탄하게 살아온 ‘나’는 누군가에게는 로망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 민다님의 글 끝에는 ‘행복’이 있네요. 신데렐라의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고 그려보는 막연함이 아닌 지금 이 순간 나의 행복! 발달, 전개, 위기, 절정, 결말의 어느 쪽에 행복을 둘지는 민다님의 선택에 따라 결정될 것 같습니다. 위기의 순간에도 행복은 있으니까요.
민다님의 글을 끝으로 합평을 끝내게 되었습니다. 합평이라 쓰고 하고 싶은 이바구를 한 것 같군요. 얼에모를 하면서 구성원분들마다 5편씩의 에세이를 접하다보니 다양한 생각과 고민들이 무엇이고 공감과 이해의 층이 넓고 깊어진 것 같아요. 혼자는 엄두도 못낼 2주에 한번 글쓰기, 함께라서 쓸 수 있었고 함께하는 힘의 저력을 느꼈습니다.
글 쓰시느라 애쓰셨습니다.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합평]
정답이 없는 글은 어떻게 쓸 수 있을까로 고민해본 적이 꽤 있습니다. 민다님의 이번 글을 읽으면서 아! 이렇게 쓸 수도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네요.
한 시대적 환경적 배경에서의 정답이 다른 조건에서는 정답이 아니게 되는, 심지어는 정답이라는 가치 그 자체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지는 글의 흐름 속에서, 지금 시대의 성공방정식의 복잡성과, 우리가 중요시 여기는 가치에 대한 질문이 계속해서 떠오릅니다.
3000자 가량의 글을 6000자 정도로 소비한 느낌이 들어요.
중간중간 [ ]로 등장하는 이중 자아(?)가 무척 흥미로웠습니다. 보통의 글은 직렬적인 성질이 강한 반면, 이번 글은 [ ]로 인해 대화 내지는 참견의 형태로 글에 가지를 덧대어, 신선한 느낌을 받았어요. 더 솔직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무미건조하게 넘어갈뻔한 내용도, [ ] 덕분에 흥미롭고 한 번 더 생각해 보게 되었네요. 비슷하게는 나무위키의 취소선 화법을 본 적이 있는데, 이렇게 에세이에서도 충분히 활용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전에 민다님께서 재미있는 글을 쓰고 싶다고 한 적이 있던 것 같은데 [아니면 죄송합니다], 민다님의 글은 재미있습니다. 재미있는 내용이 아닐 수 있음에도 그 속에서 재미있는 소재와 화법을 구사하시는 것 같아요. 뻔하지 않은 질문을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전개하는 능력도 돋보여요. 이런 것들이 모여 민다님의 글의 색을 만들어내는 것 같습니다.
처음 글 부터 마지막 글 까지 민다님의 글은 참 자유롭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복잡한 문제를 맥을 잃지 않고 재미있게 풀어내는 타고난 이야기꾼이 아니실까 생각해 봅니다.
그동안 얼에모 함께해서 무척 즐거웠습니다. 글이 참 좋아서 많이 배워보려고 노력했던 분이기도 해요. 감사하고 고생하셨습니다!
[합평]
제목에서 부터 어렴풋이 내용이 짐작이 되었습니다.
실속없이 겉만 번지르한 엘리트 보단 현실을 빨리 자각하고 받아들이는 사람이 더 알차다는 생각을 가지신 부모님 밑에서 성장했지만 어쩌면 그 생각에 동참할 수 없는 마음이 이 글을 쓰게 하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타고난 공부머리가 있어 죽어라 나를 갈아 넣어 공부하진 않았어도 충분히 좋은 결과가 있었고
또 지금은 공부를 좋아했다는 걸 깨닫고 뒤늦게 만학도의 가고 계신 민다님.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많은 사람들의 부러움의 대상이 될 수도 있을텐데 아직도 부모님의 양육방식이나 사고 방식에서 자유롭지 못한 듯한 느낌이 듭니다.
부모보다 훨씬 더 혜택을 받고 더 많이 배우고 지극히 정상적인 루트를 밟았음에도 눈덩이가 커지지 않는 것을 분석하고 파들어 가며 고민 하는 끝에는 부모님이 계신다는 건, 너무 생각에 깊이 함몰된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비록 실속을 중히 여기는 부모라해도 굳이 헝거리하게 키우는 부모가 세상에 어디 있겠습니까.
가능하면 편하게 많이 누리게 해 주고 싶은게 부모 마음이지만 현실적인 것도 무시는 못하신거겠지요.
이미 민다님이 가지고 있고 누리고 이루어 가는 모든게 제 눈에는 커다란 눈덩이처럼 보입니다. 눈가루 아니구요.
글 중간에 []()를 여러번 사용하셨는데굳이 괄호 속에 넣지 않고 글 속에 녹여 넣든가 어떤 건 생략했으면 어떨까 생각해 봤습니다. 저는 괄호가 글 몰입에 약간 방해가 되는 느낌이었습니다.
마지막에, 일신여상을 나와 집을 빨리 샀다고 다 행복할까.
집 사는 걸로 인생이 끝나는 건 아니니까. 라는 문장이 이 글 전체. 그리고 민디님의 마음을 대변해 주는 걸로 보입니다.
일신여상 나와 일찌감치 집을 산 그녀는 분명 만학도의 길을 걸으며 자기 인생을 멋지게 수놓고 있는 민다님을 부러워 할 것입니다. 절절히...
그 동안 함께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합평]
하버드 vs 일신여상
"하바드 나온 년보다 일신여상 나온 년이 더 빨리 집산다."
제목과 첫 문장에서 ‘무슨 글일까?’ 호기심을 자극하는 듯합니다. 하바드는 전 세계 사람 모두가 아는 학교이지만 ‘일신 여상’은 너무 생소해서 어떤 것을 대표하는 학교일까?생각하며 글을 읽어 나갔습니다. 대비되는 단어와 ‘년’에 눈이 반짝이는 제 자신을 만났네요.
부모님 세대들의 가치관이 천차만별인 듯합니다. 대부분 궁핍하고 힘들었던 시절을 버티고 이겨낸 분들이다 보니 삶에서 ‘돈’의 가치를 매우 중요하게 여깁니다. 더불어 ‘내 집 장만’이 인생의 목표로 두고 살아온 세대이기도 하고요. 반면에 학벌을 우선순위로 두는 분들도 많습니다.
부모님의 의중을 이해하기 위해 자신의 과거로 돌아가 되짚어보는 방식이 인상적이었고 글을 읽는 내내 자신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하고 답을 찾아가려 노력한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지기 싫어하는 성격이 아니라, 오히려 남에게 지는 것에 연연하지 않는 성격이라 스트레스가 적었다고 생각한다.>
그동안의 글을 읽으면서도 민다님이 굉장히 자유분방하고 독립적인 분이라는 것을 느꼈는데 이번 글에서 왜 그런 느낌이 들었는지 조금 퍼즐이 맞춰지는 듯했습니다. 딸이 만학도로 하고 싶은 공부를 하게 되었을 때 누구보다 기뻐했을 아버지가 오른 환율에 "재수도 드럽게 없는 년"이라 말씀하시는 걸 보고 현실 부모의 케미가 느껴져 웃음이 나왔습니다.
[얼에모]를 통해 글을 쓰고 나누는 의미 있는 시간들을 함께 할 수 있어 영광이었습니다. 앞으로도 거침없고 솔직한 민다님의 글을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고생 많으셨어요^^
@민다
[합평]
마지막 글감인 '나'에 대한 합평(이라고 하기 참으로 부끄럽지만)을 하면서 발견하게 된 것중 하나는 '생각' 에 대한 내용이 많았다는 점입니다. 내가 누구인지에 대한 생각, 힘든 환경에서 버티고 견디기 위해 마법을 거는 생각 등. 무난한 삶이지만 불어나지 않는 눈덩이를 보면서
부모의 양육방식에 대한 의문을 갖고 왜 나의 삶에 브레이크가 걸린 것인지를 자문하는 민다님 또한 자신에 대해 끊임 없는 '생각'을 하는 사람인 것 같아요.
글의 제목에 나와 있는 하바드와 일신여상은 경제적인 성공에 포커싱 된 것이라고 이해했습니다. 글을 읽으면서 자라온 환경이 크게 빡세지도 않고 공부 머리도 뛰어난, 큰 굴곡 없는 삶을 살아온 민다님인 것을 알게 되었는데, 평범해 보이는 일상이 더 이상 눈덩이가 불어나지 않는 다는 것이 정확히 무슨 의미인지는 캐치하지 못했어요. 아마도 글의 제목에 나와있는 것처럼 단순히 경제적인 문제에 국한되는 것이 아닌, 나라는 존재 자체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이지 않을까 생각해 봤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과 마주하는 때가 있는 것 같습니다. 사춘기를 일찍 겪는 아이들처럼 10대에 이런 질문과 마주하기도 하고, 20대, 30대, 혹은 더 늦게 40춘기나 50춘기 처럼 경험할 수도 있는 것 같아요. 나를 알아가고 눈덩이를 불려 나가는 과정에서 '공부' 를 선택한 것이 흥미로웠습니다. 뒤늦은 사춘기에 방황을 하거나 혼란스러울 수도 있지만, "재수도 드럽게 없는 년" 소리를 들어가며 공부에 집중하는 모습은 이 시기를 잘 극복하고 아마도 더 성장할 수 있는 동력을 갖춘 삶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글의 내용과는 상관 없지만 문득 영재 아들과 함께 세계 제일의 국가 미쿡에서 살아가는 민다님에게도 견디기 힘든 시련과 같은 게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저의 기준에서는 다른 세계의 사람 같아 보여요) 하바드대학도 일신여상도, 부(富)와 건강과 명예도 언제까지 우리를 지켜주지 않고 고난이라는 녀석은 언제가 예상치 못하는 타이밍에 훅 하고 오기 때문에, 굴곡 없는 무탈한 삶은 위기에 취약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세상 학문에 대한 학습을 하는 것과 동시에 자기 자신에 대한 학습도 잘 해나가시길 응원합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