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카미유 클로델> : 생의 고독을 새긴 조각가

신승아
신승아 · 삐딱하고 멜랑콜리한 지구별 시민
2023/11/10

1864년 12월 8일, 갓난 아기의 우렁찬 울음소리가 잠든 숲을 깨웠다. 산고를 치른 여자는 비몽사몽한 정신으로 서둘러 아기를 품에 안았다. 이불보에 쌓인 아기의 몸 이곳저곳을 살피던 여자는 곧 낮게 탄식했다. “오, 이럴 순 없어. 계집애라니!” 낯빛은 창백했고, 분노의 불길이 온몸을 휘감았으며, 날선 목소리에는 불쾌한 기색이 역력했다. 사실 여자는 장남 샤를 앙리 클로델을 잊지 못한 상태였다. 딸이 태어나기 15개월 전 세상에 태어났지만, 지상에 머무른 지 보름 만에 생명의 빛이 꺼져버린 핏덩이였다. 여자는 내심 죽은 아들이 자신의 배를 빌려 환생하길 바랐다. 그토록 간절히 기도했는데, 딸이라니! 신이 원망스러웠다. 꿈틀대며 울어대는 저 생명체가 마치 장남을 통째로 집어삼킨 악마 같았다.

부모로부터 축복받지 못한 아기는 기쁨 보다 고독을 먼저 배웠다. 어머니는 딸을 향한 미움과 저주를 토해냈지만 아버지는 재빨리 실망감을 감추고 마음을 추슬렀다. 그는 푸른 눈동자를 깜빡거리는 딸에게 ‘카미유 클로델’이라는 중성적인 이름을 지어주었다. (장남에 대한 그리움과 딸이라는 아쉬움을 달래기 위한 작명이었으리라.) 어머니는 아들 ‘폴 클로델’을 낳은 후에도 좀체 카미유에게 정을 주지 않았다. 홀로 덩그러니 방치된 여자아이는 제 존재를 경멸하는 어머니의 눈을 피해 외부로 시선을 옮겼다. 카미유가 유년기를 보낸 빌뇌브쉬르페르는 고즈넉한 시골 마을이었다. 비옥하고 기름진 땅, 몽환적인 숲과 자욱한 안개. 자연이 가만히 마음을 다독여주는 곳에서 카미유는 흙을 만지며 내면의 욕망을 끄집어냈다.

흙 한 덩이만 있으면 족했다. 진흙을 주무르는 동안에는 먹고 마시는 일도 새까맣게 잊어버렸다. 어머니의 서슬 퍼런 폭언도, 냉기가 흐르는 집안 분위기도 아무렴 상관없었다. 흙이 곧 카미유 자신이었다. 진흙으로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하고, 가장 내밀한 감정을 토로했다. 카미유 클로델은 흙으로 가족과 이웃의 형상을 빚었고, 질풍노도의 시기에 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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