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가 재림하지 않는 기독교
2023/04/08
기독교 신학에 한 쪽 발목을 담그고 있을 뿐이지만, 예수의 부활을 믿어야만 기독교인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는 동의하기 힘듭니다. 기독교는 광범위한 종교입니다. 수 많은 교파가 있고, 해석이 있습니다. 그 중 무엇이 '정통'인지 가려내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정치학자들이 단 하나의 진정한 사회주의나 보수주의를 찾는 데에 실패한 것처럼, 정통 기독교를 찾는 일도 성공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게 쉬웠다면, 교회 일치 운동(에큐메니즘)은 진작에 성공해서 모든 주요 교파가 하나의 기독교로 통합되었을 것입니다.
기독교가 가장 깊이 뿌리내린 유럽에서는, 종교개혁 이전부터 초자연적 요소를 배제하는 신학이 발전했습니다. 흔히 말하는 '이성 안에 있는 신앙'을 추구한 사람들이 나타난 것입니다. 이런 기독교 신학을 자연신학, 자연종교라고 부릅니다. 데이비드 흄과 토마스 홉스, 토마스 제퍼슨이 자연종교를 다룬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당시에 자연종교는 바티칸으로부터 무신론이라며 비난받았지만, 자연종교에 대한 논의 자체는 꽤 오래 이어졌습니다.
"머릿속에서 상상하거나 공개적으로 인정된 이야기를 듣고 상상한, 보이지 않는 힘에 대한 '두려움'은 종교라고 부르고, 공개적으로 인정되지 않은 경우에는 미신이라 부른다."¹
물론, 이런 자연주의적 종교관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기독교 역사의 주류였습니다. 흔히 '신앙주의자'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신의 존재나 예수가 일으킨 기적이 비합리적이라는 사실을 직시합니다. 애초에 신앙은 합리성으로 평가받을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제가 즐겨 말하는 것처럼, 이성은 출발점이 필요합니다. 그 출발점은 이성으로 증명할 수 없는 것일 수 밖에 없습니다. 신앙주의자는 바로 이점에 주목합니다.² 신앙주의자에 따르면, 우리는 증명할 수 없는 것을 전제로 생각할 수 밖에 없고, 그 궁극적인 전제가 될 수 있는 것이 바로 신앙입니다. 신앙을 증명할 수 없다는 점은 문제될 것이 전혀 없습니다. 모든 것을 증명할 수 없기 때문에 신앙이 필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주...
기독교가 가장 깊이 뿌리내린 유럽에서는, 종교개혁 이전부터 초자연적 요소를 배제하는 신학이 발전했습니다. 흔히 말하는 '이성 안에 있는 신앙'을 추구한 사람들이 나타난 것입니다. 이런 기독교 신학을 자연신학, 자연종교라고 부릅니다. 데이비드 흄과 토마스 홉스, 토마스 제퍼슨이 자연종교를 다룬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당시에 자연종교는 바티칸으로부터 무신론이라며 비난받았지만, 자연종교에 대한 논의 자체는 꽤 오래 이어졌습니다.
"머릿속에서 상상하거나 공개적으로 인정된 이야기를 듣고 상상한, 보이지 않는 힘에 대한 '두려움'은 종교라고 부르고, 공개적으로 인정되지 않은 경우에는 미신이라 부른다."¹
물론, 이런 자연주의적 종교관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기독교 역사의 주류였습니다. 흔히 '신앙주의자'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신의 존재나 예수가 일으킨 기적이 비합리적이라는 사실을 직시합니다. 애초에 신앙은 합리성으로 평가받을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제가 즐겨 말하는 것처럼, 이성은 출발점이 필요합니다. 그 출발점은 이성으로 증명할 수 없는 것일 수 밖에 없습니다. 신앙주의자는 바로 이점에 주목합니다.² 신앙주의자에 따르면, 우리는 증명할 수 없는 것을 전제로 생각할 수 밖에 없고, 그 궁극적인 전제가 될 수 있는 것이 바로 신앙입니다. 신앙을 증명할 수 없다는 점은 문제될 것이 전혀 없습니다. 모든 것을 증명할 수 없기 때문에 신앙이 필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주...
무분별한 자기계발론과
자유방임주의에 맞섭니다.
법치국가와 사회연대를 결합하려는
자유주의적 사회주의자입니다.
더칼럼니스트 창간 1주년 기념 칼럼 공모전 당선
얼룩소 에어북 공모 1회차 선정 '함께 자유로운 나라' 출간
얼룩소 에어북 공모 6회차 선정 '좌업좌득' 출간
저는 개신교인이고, 부활 없는 개신교는 적어도 개신교로 보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쪽입니다. 그러나 뭇 사람들이 부활이라는 부분만 빼놓고 나머지 부분만 취사선택하여 삶의 지침으로 사용하는 것까지 막을 이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제 입장에서 볼 때, 본문의 요지에 대해서는 뭐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싶긴 한데, 행간에서 마치 "앞으로 과학과 세속주의가 보편화된 사회에 기독교가 적응하고 생존하려면 부활과 같은 비이성적 요소에 대한 집착을 버리는 쪽으로 변화해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고 말씀하시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페이스북에서 쓴 글입니다.
저는 개신교인이고, 부활 없는 개신교는 적어도 개신교로 보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쪽입니다. 그러나 뭇 사람들이 부활이라는 부분만 빼놓고 나머지 부분만 취사선택하여 삶의 지침으로 사용하는 것까지 막을 이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제 입장에서 볼 때, 본문의 요지에 대해서는 뭐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싶긴 한데, 행간에서 마치 "앞으로 과학과 세속주의가 보편화된 사회에 기독교가 적응하고 생존하려면 부활과 같은 비이성적 요소에 대한 집착을 버리는 쪽으로 변화해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고 말씀하시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페이스북에서 쓴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