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바라보는 달팽이는 사실...

박순우(박현안)
박순우(박현안) · 쓰는 사람
2022/09/20
내가 사는 섬에는 달팽이가 참 많다. 집이 없는 민달팽이부터 납작한 집에 사는 녀석, 봉긋한 집에 사는 녀석, 뾰족한 집에 사는 녀석까지. 아이들은 비만 오면 밖으로 나가 달팽이 사냥을 한다. 집 근처에는 달팽이나무가 있다. 원래 무화과나무인데 신기하게 비만 내리면 이 나무에는 가지마다 달팽이가 열매처럼 대롱대롱 매달린다.

바닥을 기어다니는 녀석, 벽을 기어오르는 녀석, 나무에 열매처럼 매달린 녀석까지. 비만 오면 아이들은 눈에 띄는 모든 달팽이를 잡아온다. 한번에 서른 마리도 넘는 달팽이를 잡아 오기도 한다. 마당에 있는 대야에 달팽이를 잔뜩 담아놓고 먹이로 각종 이파리를 넣어두는 아이들. 이렇게 잡으면 뚜껑을 덮어 탈출하지 못하게 한 뒤 한동안 놔두고 관찰을 한다.

서너 시간쯤 지나 뚜껑을 열어보면 말문이 막힌다. 달팽이는 그야말로 똥쟁이다. 그 짧은 시간동안 얼마나 많은 똥을 싸는지. 여기저기 검푸른 길쭉한 똥이 붙어있다. 그 똥을 치우는 건 고스란히 내 몫이다. 아이들이 아직 어려 손이 야무지지 못하다 보니 나는 아이들을 대신해 그 똥을 모두 치워야 한다. 치우면서 아이들에게 연신 궁시렁댄다. 왜 이렇게 많이 잡아온 거야. 똥 치우기 너무 힘들어. 이제 그만 놔주면 안 될까? 너네가 똥 좀 치워볼래?

아이들은 마지못해 이제 놓아주겠다고 말한다. 자신들은 똥을 치울 수 없다며. 아쉬워하며 뚜껑을 열어놓으면 달팽이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하나둘 탈출을 시도한다. 달팽이라고 얕보면 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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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저것 씁니다. 『아직도 글쓰기를 망설이는 당신에게』를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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