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날들을 지킬 수 있기를

콩사탕나무
콩사탕나무 · 나답게 살고 싶은 사람
2024/12/13

 "내년부터는 안 한다."

엄마는 한결같이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하며 매년 '마지막'인 김장을 하고 있다.

대통령의 탄핵소추안 표결을 하루 앞둔 6일 저녁, 휴대전화 단톡방의 알림이 호들갑스럽게 울려댔다. 집회 참석 여부를 묻는 사람, 함께 할 수 없어 미안함을 표하는 사람, 믿기지 않는 상황에 분노 폭발 직전인 사람들이 있었다. 국민 모두 저마다의 방식으로 대혼돈의 시기를 마주하는 중이었다.

 나는 김장을 하기 위해 친정에 갈 계획이었다. 한 달 전, 사 남매의 일정을 어렵사리 맞추어 정한 날이었다. 먹을 것이 없고 반찬이 다양하지 않던 시절에는 김치를 한꺼번에 많이 담가 저장해두고 일 년 내내 먹었다. 그런데 지금처럼 먹을 것이 넘쳐 나는 풍요의 시대, 왜 굳이 힘들게 김장해야 하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아 여러 번 부모님과 부딪혔다. 어르고 달래고, 협박(?)도 했지만 소용없었다.

7년 전 엄마가 뇌경색으로 쓰러졌던 해, 편마비와 언어장애로 재활치료에 전념했던 이듬해를 제외하고는 해마다 인륜지대사인 김장을 하고 있다. 물론 직접 담근 김치의 맛을 모르는 바 아니다. 금방 담근 아삭하고 싱싱한 김장 김치, 맛있게 익어 온갖 요리에도 잘 어울리는 김치, 시간이 흐를수록 숙성되어 묵은지의 깊은 맛을 보여주는 김치는 천의 얼굴, 아니 천의 맛을 지녔다.

김치 예찬론자임에도 김장을 말리는 이유는 몸이 불편한 엄마 때문이다. 김장을 치르고 나면 어김없이 몸살이 나고 입술이 부르트는 엄마를 보면 속상하고 화가 났다.
그러나 엄마에겐 김장이 다른 의미 같았다. 살아있는 동안 당신이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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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지만 천천히 정성을 다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schizo121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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