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세곡
천세곡 · 남들과는 다르게 누구보다 느리게
2023/11/06
*사진출처: Photo by Scott Graham on Unsplash


직장을 다니면서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가장 많이 했던 말은 “이해가 안 돼.”였다. 무능하면서 일만 저지르는 중간 관리자와 그 사람을 두둔하며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는 상급 관리자를 보면서 “이해가 안 돼.”라는 말을 내뱉곤 했다. 뿐만 아니라, 직원들을 존중하기는 커녕 소모품으로 취급해 버리는 조직문화에 이를 갈면서 토해낸 말이기도 하다.

  11월 말일자로 최종 퇴사일이 결정되었다. 전자결재로 퇴사원을 올릴 예정이다. 나의 후임자를 뽑는 채용공고도 올라갔다. 내가 퇴사하는 표면적인 이유는 질병으로 인한 자진 퇴사다. 9년을 일하는 동안 심한 스트레스에 노출되었고 우울증이라는 마음의 감기를 얻었다. 그래도 스스로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아간 것을 보면 내 병증이 그리 심각한 수준은 아닌 듯하다. 약도 잘 복용하고 있고 의사에게 상담도 받고 있으니 퇴사하지 않고 계속 다닐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그럼에도 내가 굳이 퇴사를 결정한 이유가 있다. 어떻게든 억지로 부여잡고 버틴다면 몸과 마음은 어느 정도 추스를 수 있겠으나 깨져버린 관계는 회복할 수 없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일하고 있는 부서에서 나와 관련된 모든 관계가 깨어진 상태이다. 상사와의 관계는 물론, 동료들의 관계까지 모두 그렇다. 이것이 내 퇴사의 진짜 이유라면 이유이다. 내가 아무리 약빨로 혼자서 버틴다 해도 이미 벌어진 틈과 균열들을 메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오래 일하다보니 크고 작은 충돌과 마찰은 종종 있어 왔다. 그 정도 갈등은 어느 누구나 어디에서나 겪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나의 경우는 조금 달랐다. 올 봄에 있었던 하나의 사건 이후,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나를 향한 시선과 태도가 바뀌기 시작했다. 그 사건은 야유회였다. 2박 3일 경주로 가는 일정이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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