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워, 도서관

박순우(박현안)
박순우(박현안) · 쓰는 사람
2023/09/14
공공도서관을 가기 시작한 건 중학교 때였다. 친구들과 토요일 수업이 끝나면 다 함께 도서관으로 향하곤 했다. 공부를 한다는 건 핑계였고, 수다를 떨고 밥을 먹고 서가를 들락거리며 책 제목만 들여다봤다. 그러던 어느 날 실컷 놀다 집에 갈 시간이 되어 자리로 돌아오니, 쪽지와 캔음료 하나가 놓여 있었다. 여중을 다니고 있었고, 당시만 해도 아직 이성에 눈을 뜨지 않은 순진한(?) 학생이었던지라 그 쪽지와 캔음료가 반가우면서도 두려웠다. 주위를 둘러보니 한 또래 남학생이 수줍게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쪽지의 정확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대충 마음에 든다는 이야기였다. 다음날 다시 도서관에서 만나자고 적혀 있었다. 생애 처음으로 받은 고백에 얼떨떨해하며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데, 친구들이 난리법석을 떨었다. 연애를 해본 적이라고는 없는, 평소 남자에 대한 이야기를 딱히 나누지도 않던 똑 단발 친구들이었는데도 그랬다. 다음날은 일요일이었고 친구들은 다 함께 또 도서관을 오자고 약속했다.  

당시만 해도 나는 옷차림에 크게 관심이 없었다. 스스로를 꾸미는 방법을 모르는, 교복이나 입고 다니는 그렇고 그런 학생이었다. 일요일이라 사복을 입고 가야 하는데, 뭘 어떻게 입어야 할지 몰랐다. 입을 만한 사복도 없었다. 고민을 하다 옷장 안에서 발견한 품이 넓은 청재킷을 꺼내 입었다. 예쁨과는 거리가 먼 옷이었다. 내게는 이상한 고집 같은 게 있는데, 이성이라고 못박고 만나는 자리일수록 멋을 덜 부린다는 점이다. 소개팅 자리에서 한 번도 치마를 입은 적이 없다.

아무튼 별로 예쁘지도 않은 그 재킷을 떡하니 입고 나가니 친구들이 한 마디씩 했다. 이게 뭐냐, 남자를 만나는데. 이쁘게 입고 좀 나오지. 나는 옷이 그리 중요한가라는 의문을 품었고, 쪽지를 건넨 남학생과 어색하게 마주 앉았다. 친구들은 어딘가에서 이 장면을 숨어서 지켜보았고. 무슨 이야기가 오갔는지는 잘 모르겠다. 집 전화번호라도 주고받았을까. 아마도 그랬겠지. 그 시절 유일한 연락 수단은 그것뿐이었으니까.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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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저것 씁니다. 『아직도 글쓰기를 망설이는 당신에게』를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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