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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받습니다] 이태원 참사 ‘생존자’ 김초롱입니다
2023/10/26
10월 29일은 이태원 참사 1주기입니다. 26일 이태원 참사 생존자 김초롱 작가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유가족, 국회의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와 이야기를 주고 받는 자리를 만들었습니다. 이태원 참사라는 사회적 재난을 뉴스로 겪으며 고통을 느낀 분이라면 관심을 갖고 들어주세요. '참사 당사자'가 지난 1년을 어떻게 살아냈는지, 우리는 어떻게 애도해야 하는지 묻고 답하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딱 1년이 되었습니다.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 참사가 벌어진 날로부터.
저는 <제가 참사 생존자인가요>를 쓴 김초롱입니다.
엊그제 책이 출간되고 기자간담회가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자꾸 저를 보고 용감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주는데, 사실은 아닌 것 같습니다. ‘필연적인 일로 인해서 간담회가 안 열리면 안 될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간담회가 열리는 곳으로 갔습니다. 책을 쓰고 얼굴을 드러내고 공식적인 자리에 나가게 되면서, 자꾸만 질문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정말 용기 있는 사람인가?’ 사실 지난 1년간 일상이 많이 무너지고 스스로를 돌보지 못해서 얼굴과 몸이 많이 망가졌습니다. 책에 실린 프로필 사진은 참사가 벌어지기 전에 찍었던 사진입니다. 지금은 그때의 모습과는 조금 다릅니다. 얼굴과 몸이 많이 부었고요. 간담회 기사에 실린 제 사진을 보니 또 다시 괴롭고 힘들었습니다. 숨고 싶었던 마음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볍게 ‘퉁’ 치기로 했습니다. 원래 저라는 사람은 끝까지 괴로워하고 고민하고 힘들어하다가 막판에 갑자기 해탈한 사람처럼 정말 1초 만에 갑자기 퉁쳐버리거든요. 나의 객관적인 상태를 점검했으니 다시 예전처럼 운동도 하고 식단 관리도 하면서 건강을 챙겨보자고 생각했습니다. 며칠간 운동을 엄청 열심히 하고 있는데 눈물이 나더라고요. 마음이 너무 아팠을 때는 운동 자체가 어려웠는데 정신을 바짝 차리고 보니 또 힘이 나는 거죠. 간담회 자리도 마찬가지였어요. 가기 전까지는 너무나 힘들었지만 결국 이 자리도 내 선택이니까, 옳은 방향으로 내 인생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기자간담회 자리에서는 날카롭게 맥을 짚는 질문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여전히 사람들이 그때 그 날 일에 관심이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나의 편견이고 오해였다는 걸 깨달았어요. 세상에는 그래도 남겨진 사람들에 대해 가슴 아파하는 사람들이 있구나, 여전히 재난을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그런데 좀 더 적극적이고 공격적으로 질문해 주셨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습니다. 그런 질문을 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편이기도 하고, 적극적이고 공격성을 띄는 물음을 갖는 순간, 창의적이고 여러 면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시각들이 나온다고 생각하거든요. 우리나라 사람들의 특성일 수도 있는데요. 기자분들이 더 직접적이고 직설적으로 물으셔도 좋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얼룩소>에서는 다양한 질문을 기대합니다.
그런데 좀 더 적극적이고 공격적으로 질문해 주셨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습니다. 그런 질문을 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편이기도 하고, 적극적이고 공격성을 띄는 물음을 갖는 순간, 창의적이고 여러 면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시각들이 나온다고 생각하거든요. 우리나라 사람들의 특성일 수도 있는데요. 기자분들이 더 직접적이고 직설적으로 물으셔도 좋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얼룩소>에서는 다양한 질문을 기대합니다.
김초롱
1990년생. 방송 일을 하면서 운 좋게 쓴 책 한 권으로 마이크를 잡고 글을 쓰며 밥벌이를 했다. 답답한 한국 사회에서 개인이 행복해지는 방법을 스스로 터득하며 살아왔다.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놀았으며 ‘자유’와 ‘이해’가 인생 최고의 가치라고 생각한다. 2016년부터 핼러윈 파티를 즐겼으며, 2022년 10월 29일 참사의 현장에 있었다.
마음이 이렇게 힘들고 아픈데 삶이 이어지고 인생을 살아내는 것이 신기했다. 자주 슬퍼했고 넘어졌지만 넘어진 김에 무언가라도 주워서 다시 일어나려 애쓴 317일간의 기록을 이 책에 담았다. 언젠가 다시 책을 써야지 생각했지만 이런 주제일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책을 통해 마음이 단단해지고 싶다.
@김초롱 우선, 2차 가해로 마음을 아프게 하여 사죄드립니다. 제 이해가 많이 부족했습니다. 제 무지와 무례에서 비롯한 질문들이 참 부끄럽고 죄송스럽니다만, 첫 댓글에 제가 쓴 2차 가해의 질문은 저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반면교사가 될까 하여 일단 남겨두었습니다. 작가님과 다른 생존자, 유가족 분들 뿐만 아니라 어느누구든 삭제를 원하시면 언제든 지우겠습니다.
제 첫 질문은 오해를 불러일으켰던 것 같습니다. 저는 사실 팔이들을 좋아합니다. 저 또한, 상업적인 것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작가님께서 철저히 상업적이길 기대했기 때문에 그렇게 질문드렸습니다. 방금 책 주문하였습니다. 이번 신간이 잘 팔리면 좋겠습니다. 직업 작가로서 유명해지고, 흥하시길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본인의 고통을 희생해서 사회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행동에 존경을 표합니다. 말씀하신 내용에 동감하고, 책을 읽고 저부터 변화하고자 노력하겠습니다.
바쁘신 와중에 시간과 마음을 내어 답변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김태환 1.우선 저는, 상업적으로 무언가를 하는 것을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무언가 사람들의 마음에 가 닿으려면 상업적으로 성공적이어야만, 가 닿을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대중화이자 상업화 입니다.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은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메세지를 읽습니다. 사람들의 시간과 사람들의 노력은 모두 그 사람들의 자본입니다. 제가 작가가 되기로 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사람들이 참사를 오래 기억하려면, 사람들의 집중을 이끌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람들에게 가닿을 수 있는 이야기, 사람들이 자신의 시간과 돈을 써서라도 집중할 수 있는 이야기여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무도 듣지 않는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오히려 이야기 하는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들 뿐이라는것을, 참사 이후 6개월간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입니다. 더욱 많은 사람들이 읽어주고, 이 참사의 실상을 널리 알리수만 있다면, 게다가 우울증과 마음이 아픈 사람들을 위로하고 사회적인 역할을 하는 것에 쓰일 수 있다면 바랄 것이 없습니다. 역설적이게도, 그렇게 많은 사람에게 가 닿기 위해서는, 명예나 인지도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좋습니다, 상업적이면 상업적일 수록 좋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 이야기를 팔아, 장사하는 사람. 즉 직업 작가가 되기로 했습니다.
누군가가 이것을 '고통팔이' 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상업적인 것 자체를 부정적으로만 생각하는 단편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이기에 그렇게 생각하는 것 일 겁니다.
제 책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나의 고통이 변화의 땔깜으로 쓰인다면, 더 바랄 것이없다.
고통팔이라고 생각하기보다는, 변화의 땔깜이라고 생각합니다. 상업적이라고 부정적인것이라고 생각한다기보다는, 많은 사람에게 가 닿기위한 필수적인 방향이라고 바라봅니다.
희생자의 죽음을 파는 행위라고 생각하냐는 질문에는, 저의 책을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제 책에는 저의 고통에 대해 쓰여있고 참사 당시 현장에 대한 이해도가 없는 이 사회에게 그날의 현장에 대한 이해와, 참사로 인해 한 개인이 어떻게 무너져 내려가는지 저의 고통에 대한 이야기가 쓰여있습니다. 그리고, 타인의 죽음에 대해 애도하는 것에 대한 내용이 쓰여있습니다. 책에 대한 이해가 없이 쓰셨기에 가능한 질문이라 사려됩니다. 희생자의 죽음을 파는게 아니라, 저의 고통을 파는 이야기입니다. 저의 고통 이야기를 팔아, 많은 사람들이 이 참사에 대해 더 자세히 알게 된다면 이러나 저러나 상관이 없습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기만 한다면 말입니다.
2. 두번째 질문은 사실 많이 마음이 아픕니다. 질문자체가 우리사회의 단면을 그대로 보여주는 질문이고, 2차 가해의 성격을 띄고 있는 문장이기 때문입니다. 의도가 있든 없든, 우리 사회가 아무렇지 않게 묻는 형태의 상처가 바로 이런 곳에 있기 때문에, 정확히 짚고 넘어갈 부분이라고 생각하기에 대답합니다.
물론, 참사 초반에 참사에 대한 인지가 잘 되지 않았을때는, 그곳에 간 저를 탓하며 내탓을 하던 시기가 있었고 그때는 내가 죽였다 라고 생각하던 시기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곳에 있던 나는, 잘못한게 없다는 것을 명확하고 건강하게 인지 했기 때문입니다.
참사의 본질적인 원인은 '군중밀집 관리의 실패' 라는 것을 정확히 인지 했다면, '압사의 상황에서 내가 누군가에게 가해를 했다'라는 사실에 죄책을 느끼거나 자책을 느끼는 것에서 해방 되어야 하는 것이 맞습니다. 군중밀집 관리의 실패를 한 사회의 잘못이지, 일상을 보내고 있던 개인의 잘못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말씀하신 것 처럼, 군중 밀집 관리의 실패에 전적으로 동의하신다면, 압사의 상황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가해자라고 느꼈을 수 있었겠다 라는 생각을 떠올리실 수 없습니다. 아무렇지 않게, 압사의 상황에서 피해자이자 가해자다 라고 하는 것은 명백한 2차 가해의 언어라고 볼수 있습니다.
최근 올라온 한겨레 신문의 인터뷰에 따르면, 질문 주신분의 말의 문장 그대로를 듣고 2차 가해로 충격받은 유가족의 인터뷰가 실렸습니다.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113672.html
아무렇지 않게 '피해자들은 모두 가해자 인거야' 라고 하는 그 문장 자체가 바로 사회적 참사를 개인의 문제로 돌리는 사고방식에 기인한 것으로 볼수 있습니다. 그날 그 현장에 있었던 개인들은 아무것도 잘못 한 것이 없으며, 압사의 상황에 처해 있던 사람 모두, 그 상황에서 무엇을 더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은 없었습니다. 제 책에는 이태원 참사를 한국 사회의 사회문화적 배경에서 해석하고 돌아봐야 한다고 서술되어있습니다. 우리는 너무 오래동안 사회적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돌리고, 개인의 탓을 하는 방식으로만 자라왔습니다. 그 잘못된 습관이, 지금에 와서야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다치게 하네요.
@노영식 차분하게 남겨주신 댓글을 읽어보았습니다. 고맙습니다, 오랜만에 저도 댓글에 머무를수 있었습니다.
@JoR 1. 상담치료는 모든 개인부담이 들어간 것이 없습니다. 한국심리학회의 지원과, 거주지의 정신건강복지센터, 연계된 정신의학과 병원 등이었습니다. 좀더 궁금하시다면 책을 읽어주시면 궁금증이 해결되실거에요 :)
2. 책을 써내려가면서는 우울증의 절정기를 맞이했습니다. 생각보다 힘들었고,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굉장히 힘들었습니다. 원형탈모가 왔고, 알콜 의존증과 폭식증까지 시작되어 어떻게 버텼는가 지금 생각해도 가늠이 되지 않을 정도입니다. 그냥 엄청나게 힘들어했습니다. 그리고 고통을 정면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고통을 극복했다고는 표현하지 못하겠습니다. 엄청 힘들어했더니, 이제 고통이 지나갔습니다. 그래서 그 모든 과정을 배출하듯이 한 참사가 개인을 어떻게 망가뜨릴수 있는가에 대하여 책으로 써내려갔습니다. 저에게는 책 집필 과정이 도움이 되기도 했습니다.
3. 제 책의 결론, <우울하지만 명랑한 년이에요> 입니다. 글쓴이 님의 허망함에 도움이 될거라 생각합니다. 저의 우울에 도움이 되었던 방법들이 소개되었습니다. 한번쯤 읽어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많은 시간을 힘들게 보내오신 것이 짧은 댓글이지만, 느껴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은 아름답구나, 깨닫는 경험을 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얌얌 핼러윈을 이전처럼 즐기는 것은 단순히 '기념' 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일상을 그래도 즐기는 것 자체가 애도의 하나라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고통이 찾아오고 재난이 찾아와도, 반드시 우리의 일상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대로 무너져서 다시는 못일어설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누군가의 일상이었던 곳으로, 누군가의 일상이었던 생활로 돌아가야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전처럼 이태원 핼러윈을 지내야한다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유가족 분들께서 이태원 할러윈이 침체되고 무너져가는 것을 바라지 않으실 겁니다. 본인들이 직접 가는 것은 어려워하실지라도, 젊은 청년들은 원래대로 많이들 가서 즐겼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실 거에요. 실제로, 100일 추모제때 힘들게 발언하는 저를 끌어안으며,< 그냥 다 잊고 밝게 요즘 애들처럼 그렇게 살아줘, 응? 젊은 애들은 그냥 그러고 살았으면 좋겠어. 더 나가 놀아, 더 아무렇지 않게 살어, 진상규명도 이런거 다 우리 어른들이 할게. 우리가 할게> 라고 말해주셨으니까요. 저는 이것이 정답이라고 생각합니다. 잘못한 사람들의 잘못한 것이 밝혀지면 됩니다. 유가족이자 생존자 병우씨의 인터뷰가 저의 책에 실렸습니다. '이전처럼 사람들이 많이 이태원에 핼러윈에 갔으면 좋겠어요, 많이들 즐겼으면 좋겠어요' 라고요.
올해 이태원 핼러윈에는 유가족이 주최로 하는 대규모 추모식이 이태원에서 열립니다. 유가족들이 직접 핼러윈을 맞이해 찾아주는 시민들의 얼굴에 스티커를 붙여주는 행사를 하신다고 해요. 충분한 답변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black_coff 덕분에 따뜻한 위로를 받습니다. 사랑하는 친구들과 식사를 하고, 좋아하는 브런치 집에 오랜만에 가서 따뜻한 샌드위치를 먹었습니다. 웃긴 유튜브 동영상을 친구가 추천해주어서 눈물이 나게 웃기도 했습니다. 잠도 요즘은 잘 자고 있습니다. 문득 힘들어질때는 이런 댓글이 달린 글을 찾아 들어와 셀프 위안을 얻습니다. 누군가 나를 지지해주고 위로해주는 사람이 반드시 존재하기는 한다 라는 생각을 확인하기 위해서요. 고맙습니다. 덕분에 다시 힘을 얻습니다.
@정도원 1. 참사 이전과 이후로 저는 인간에 대한 이해가 더 깊어 졌습니다. 이해 할 수 있는 슬픔이 더욱 많아졌고, 이해 할수 있는 깊이가 깊어졌습니다. 사람들은 너무 슬프면 악다구니를 쓰며 우는 사람도 있지만 너무 슬퍼서 웃어버리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알아버렸다고 하면 이해하실까요, 그와 동시에 너무 슬픈데 왜 웃느냐고 비난 하는 세상도 알아버려서, 슬프면 웃는 사람에게 저는 다가가서 끌어안아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슬픔의 형태가 이리도 다양하다는 것을 그 전에는 몰랐습니다. 세상을 그전에는 굉장히 납작하게 바라봤던 제가 창피했습니다. 뭘 안다고 그렇게 떠들어댔을까요. 이제는 많은 말보다 나란히 곁에 있어 줄 수 있는, 이해가 깊은 사람으로 사랑이 많은 인간으로 숨이 다하는 날까지 살아있어야겠다- 싶습니다.
2. 우리나라의 행정/치안 시스템에 대해서 환멸을 느낀적은 없습니다. 오히려 저는 우리나라의 행정과 치안 시스템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 여기며 상당히 만족하며 살아가던 사람이었습니다. 한국을 사랑했습니다. 가진 기질이나 성격이 자유분방해서 보수적이고 유교적인 문화의 한국보다 외국에 나가면 더 잘 살것이라는 이야기를 수도 없이 들어왔지만, 한국을 떠날 생각을 하지 않고 살았던 것은 24시간 치안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나라, 문자 한통이면 112에 신고 접수가 되는 나라, 5분이면 경찰이 어디서든 출동하는 나라, cctv가 세계 최고로 많이 설치 되어있어 치안으로는 어디에 내놓아도 빠지지 않는 나라 등이 안전한 국가임을 증명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행정적으로 빠른 일처리나 기타 시스템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참사가 터졌을 경우, 왜 행정 시스템이 잘 작동하지 않았을까.
결국, 사람이 문제입니다. 어떤 사람이 우두머리에 있는가, 어떤 사람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그 조직을 운영을 하는가 어떤 명령을 내리는가에 따라서 최고의 시스템은 잘 활용 될수도 있고, 쓰레기 보다 더 못한 활용도 취급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군중밀집을 관리를 해야한다 라는 판단을 할줄 아는 제대로 된 국가 책임자들이었다면, 행정 시스템이 제대로 안돌아갔을리가 없었을 겁니다. 우리나라는 그렇게 후지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재난 컨트롤 타워가 없지도 않았고, 시스템이 문제도 아니었습니다.
@ocean0220 정부의 인식은 변하지 않았기때문에 안전 매뉴얼과 법 재정은 더딘 것이 맞습니다. 그러나 시민 사회의 의식은 변했다고 생각합니다. 정부의 인식과 시민사회의 인식은 다르니까요 :) 이 점을 명확히 해두고 싶습니다. 점차 발전해가는 시민의식을 정부 인식이 따라오지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면에서는 정부를 이끄는 이들이 살고 있는 세상과 사회를 살고 있는 대중들의 세상이 다른 것인가 생각이 들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정부를 이끄는 자들의 인식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시민의식이 중요합니다. 대중과 시민이 그 나라의 격을 판 가름 하니까요. 군사독재에서 민주주의로 이끈 것도 정부가 아니라 대중과 시민들이 만든 결과물이었습니다.
@pkjams79 1. 그들을 잊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추상적으로 들리시겠지만 정말로, 그렇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유가족 분들이 하고 있는 활동을 면밀히 살펴보시고 그것을 소비해주시거나, 참여해주시는 것등이 있는데요, 유가족 협의회나 시민 대책위가 하는 활동이나 행사들은 대게 시민사회가 일반 대중들이 어떻게 하면 부담스럽지 않게 우리는 기억해줄까, 참사를 기억해줄까 오래 고민하고 깊이 성찰한 결과물일 가능성이 높은 활률로 세상에 나옵니다. 그들이 만드는 다큐멘터리 영화, 그들이 펴내는 인터뷰집 등을 구매하고, 소비하고 바라봐주는 것등이 그들을 위한 적극적인 행동이자 함께 곁에 서주는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특별법 제정등을 위한 서명운동은 말할 것 없습니다.
2. 1주기에만 잠깐 주목하고 말까봐,, 이것은 마음 아프지만 틀리지 않는 사실일겁니다. 저는 이 추모의 분위기가 일년 내내 지속되지 않는 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추모하는 분위기가 집중되는 10월 한달, 무리해서라도 모든 인터뷰와 기사 원고를 소화해내고 있습니다. 어쩌면 일년 내내 무언가를 기억하고 추모하는 것은 처음부터 말이 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것을 받아들이고, 적어도 일년은 우리 다같이 모두 기억하자고 외치고, 나 개인만은 일년 내내 마음속에 살아 숨쉬는 참사로 간직해야지 라는 마음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 받아들이고 제가 서있는 곳에서 제가 할 수 있는일을 그저 묵묵히 하고 있습니다.
@김초롱 답변 감사합니다. 저도 사고 현장에 있었고, 사고를 간신히 피한 입장에서 작년의 기억을 올해 핼로윈으로 덮어씌우고싶다는 생각에 질문 드린 건데요. 가장 고민이 되는 부분은 핼러윈 파티로 하여금 유가족분들께 더 상처를 주고싶지 않은데 예년처럼 지내도 괜찮은 건지, 기념보다 상처를 주지 않는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의견을 여쭙고싶습니다.
@김태환 1.우선 저는, 상업적으로 무언가를 하는 것을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무언가 사람들의 마음에 가 닿으려면 상업적으로 성공적이어야만, 가 닿을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대중화이자 상업화 입니다.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은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메세지를 읽습니다. 사람들의 시간과 사람들의 노력은 모두 그 사람들의 자본입니다. 제가 작가가 되기로 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사람들이 참사를 오래 기억하려면, 사람들의 집중을 이끌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람들에게 가닿을 수 있는 이야기, 사람들이 자신의 시간과 돈을 써서라도 집중할 수 있는 이야기여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무도 듣지 않는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오히려 이야기 하는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들 뿐이라는것을, 참사 이후 6개월간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입니다. 더욱 많은 사람들이 읽어주고, 이 참사의 실상을 널리 알리수만 있다면, 게다가 우울증과 마음이 아픈 사람들을 위로하고 사회적인 역할을 하는 것에 쓰일 수 있다면 바랄 것이 없습니다. 역설적이게도, 그렇게 많은 사람에게 가 닿기 위해서는, 명예나 인지도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좋습니다, 상업적이면 상업적일 수록 좋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 이야기를 팔아, 장사하는 사람. 즉 직업 작가가 되기로 했습니다.
누군가가 이것을 '고통팔이' 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상업적인 것 자체를 부정적으로만 생각하는 단편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이기에 그렇게 생각하는 것 일 겁니다.
제 책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나의 고통이 변화의 땔깜으로 쓰인다면, 더 바랄 것이없다.
고통팔이라고 생각하기보다는, 변화의 땔깜이라고 생각합니다. 상업적이라고 부정적인것이라고 생각한다기보다는, 많은 사람에게 가 닿기위한 필수적인 방향이라고 바라봅니다.
희생자의 죽음을 파는 행위라고 생각하냐는 질문에는, 저의 책을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제 책에는 저의 고통에 대해 쓰여있고 참사 당시 현장에 대한 이해도가 없는 이 사회에게 그날의 현장에 대한 이해와, 참사로 인해 한 개인이 어떻게 무너져 내려가는지 저의 고통에 대한 이야기가 쓰여있습니다. 그리고, 타인의 죽음에 대해 애도하는 것에 대한 내용이 쓰여있습니다. 책에 대한 이해가 없이 쓰셨기에 가능한 질문이라 사려됩니다. 희생자의 죽음을 파는게 아니라, 저의 고통을 파는 이야기입니다. 저의 고통 이야기를 팔아, 많은 사람들이 이 참사에 대해 더 자세히 알게 된다면 이러나 저러나 상관이 없습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기만 한다면 말입니다.
2. 두번째 질문은 사실 많이 마음이 아픕니다. 질문자체가 우리사회의 단면을 그대로 보여주는 질문이고, 2차 가해의 성격을 띄고 있는 문장이기 때문입니다. 의도가 있든 없든, 우리 사회가 아무렇지 않게 묻는 형태의 상처가 바로 이런 곳에 있기 때문에, 정확히 짚고 넘어갈 부분이라고 생각하기에 대답합니다.
물론, 참사 초반에 참사에 대한 인지가 잘 되지 않았을때는, 그곳에 간 저를 탓하며 내탓을 하던 시기가 있었고 그때는 내가 죽였다 라고 생각하던 시기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곳에 있던 나는, 잘못한게 없다는 것을 명확하고 건강하게 인지 했기 때문입니다.
참사의 본질적인 원인은 '군중밀집 관리의 실패' 라는 것을 정확히 인지 했다면, '압사의 상황에서 내가 누군가에게 가해를 했다'라는 사실에 죄책을 느끼거나 자책을 느끼는 것에서 해방 되어야 하는 것이 맞습니다. 군중밀집 관리의 실패를 한 사회의 잘못이지, 일상을 보내고 있던 개인의 잘못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말씀하신 것 처럼, 군중 밀집 관리의 실패에 전적으로 동의하신다면, 압사의 상황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가해자라고 느꼈을 수 있었겠다 라는 생각을 떠올리실 수 없습니다. 아무렇지 않게, 압사의 상황에서 피해자이자 가해자다 라고 하는 것은 명백한 2차 가해의 언어라고 볼수 있습니다.
최근 올라온 한겨레 신문의 인터뷰에 따르면, 질문 주신분의 말의 문장 그대로를 듣고 2차 가해로 충격받은 유가족의 인터뷰가 실렸습니다.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113672.html
아무렇지 않게 '피해자들은 모두 가해자 인거야' 라고 하는 그 문장 자체가 바로 사회적 참사를 개인의 문제로 돌리는 사고방식에 기인한 것으로 볼수 있습니다. 그날 그 현장에 있었던 개인들은 아무것도 잘못 한 것이 없으며, 압사의 상황에 처해 있던 사람 모두, 그 상황에서 무엇을 더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은 없었습니다. 제 책에는 이태원 참사를 한국 사회의 사회문화적 배경에서 해석하고 돌아봐야 한다고 서술되어있습니다. 우리는 너무 오래동안 사회적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돌리고, 개인의 탓을 하는 방식으로만 자라왔습니다. 그 잘못된 습관이, 지금에 와서야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다치게 하네요.
@정도원 1. 참사 이전과 이후로 저는 인간에 대한 이해가 더 깊어 졌습니다. 이해 할 수 있는 슬픔이 더욱 많아졌고, 이해 할수 있는 깊이가 깊어졌습니다. 사람들은 너무 슬프면 악다구니를 쓰며 우는 사람도 있지만 너무 슬퍼서 웃어버리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알아버렸다고 하면 이해하실까요, 그와 동시에 너무 슬픈데 왜 웃느냐고 비난 하는 세상도 알아버려서, 슬프면 웃는 사람에게 저는 다가가서 끌어안아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슬픔의 형태가 이리도 다양하다는 것을 그 전에는 몰랐습니다. 세상을 그전에는 굉장히 납작하게 바라봤던 제가 창피했습니다. 뭘 안다고 그렇게 떠들어댔을까요. 이제는 많은 말보다 나란히 곁에 있어 줄 수 있는, 이해가 깊은 사람으로 사랑이 많은 인간으로 숨이 다하는 날까지 살아있어야겠다- 싶습니다.
2. 우리나라의 행정/치안 시스템에 대해서 환멸을 느낀적은 없습니다. 오히려 저는 우리나라의 행정과 치안 시스템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 여기며 상당히 만족하며 살아가던 사람이었습니다. 한국을 사랑했습니다. 가진 기질이나 성격이 자유분방해서 보수적이고 유교적인 문화의 한국보다 외국에 나가면 더 잘 살것이라는 이야기를 수도 없이 들어왔지만, 한국을 떠날 생각을 하지 않고 살았던 것은 24시간 치안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나라, 문자 한통이면 112에 신고 접수가 되는 나라, 5분이면 경찰이 어디서든 출동하는 나라, cctv가 세계 최고로 많이 설치 되어있어 치안으로는 어디에 내놓아도 빠지지 않는 나라 등이 안전한 국가임을 증명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행정적으로 빠른 일처리나 기타 시스템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참사가 터졌을 경우, 왜 행정 시스템이 잘 작동하지 않았을까.
결국, 사람이 문제입니다. 어떤 사람이 우두머리에 있는가, 어떤 사람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그 조직을 운영을 하는가 어떤 명령을 내리는가에 따라서 최고의 시스템은 잘 활용 될수도 있고, 쓰레기 보다 더 못한 활용도 취급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군중밀집을 관리를 해야한다 라는 판단을 할줄 아는 제대로 된 국가 책임자들이었다면, 행정 시스템이 제대로 안돌아갔을리가 없었을 겁니다. 우리나라는 그렇게 후지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재난 컨트롤 타워가 없지도 않았고, 시스템이 문제도 아니었습니다.
1. 생존자를 지인으로 둔, 후배가 있습니다. 생존자(후배의 지인)인데도 1년이 지난 지금 밝히지 않고 조용히 있다고 하더라고요. 지금 1주기가 되어서 많이 힘들어 한다고 들었습니다. 본문에서도 써주셨지만 생존자, 유가족들에게 위로가 아닌 현실적인 조언을 하나 부탁 드려요. 전달해 주고 싶습니다.
2. 이태원에서 장사를 하고 사는 분들께도 한 마디 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생계가 무너진 분들이 많은데요. 그분들에게 생존자로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실까요?
@pkjams79 1. 그들을 잊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추상적으로 들리시겠지만 정말로, 그렇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유가족 분들이 하고 있는 활동을 면밀히 살펴보시고 그것을 소비해주시거나, 참여해주시는 것등이 있는데요, 유가족 협의회나 시민 대책위가 하는 활동이나 행사들은 대게 시민사회가 일반 대중들이 어떻게 하면 부담스럽지 않게 우리는 기억해줄까, 참사를 기억해줄까 오래 고민하고 깊이 성찰한 결과물일 가능성이 높은 활률로 세상에 나옵니다. 그들이 만드는 다큐멘터리 영화, 그들이 펴내는 인터뷰집 등을 구매하고, 소비하고 바라봐주는 것등이 그들을 위한 적극적인 행동이자 함께 곁에 서주는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특별법 제정등을 위한 서명운동은 말할 것 없습니다.
2. 1주기에만 잠깐 주목하고 말까봐,, 이것은 마음 아프지만 틀리지 않는 사실일겁니다. 저는 이 추모의 분위기가 일년 내내 지속되지 않는 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추모하는 분위기가 집중되는 10월 한달, 무리해서라도 모든 인터뷰와 기사 원고를 소화해내고 있습니다. 어쩌면 일년 내내 무언가를 기억하고 추모하는 것은 처음부터 말이 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것을 받아들이고, 적어도 일년은 우리 다같이 모두 기억하자고 외치고, 나 개인만은 일년 내내 마음속에 살아 숨쉬는 참사로 간직해야지 라는 마음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 받아들이고 제가 서있는 곳에서 제가 할 수 있는일을 그저 묵묵히 하고 있습니다.
@ocean0220 정부의 인식은 변하지 않았기때문에 안전 매뉴얼과 법 재정은 더딘 것이 맞습니다. 그러나 시민 사회의 의식은 변했다고 생각합니다. 정부의 인식과 시민사회의 인식은 다르니까요 :) 이 점을 명확히 해두고 싶습니다. 점차 발전해가는 시민의식을 정부 인식이 따라오지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면에서는 정부를 이끄는 이들이 살고 있는 세상과 사회를 살고 있는 대중들의 세상이 다른 것인가 생각이 들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정부를 이끄는 자들의 인식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시민의식이 중요합니다. 대중과 시민이 그 나라의 격을 판 가름 하니까요. 군사독재에서 민주주의로 이끈 것도 정부가 아니라 대중과 시민들이 만든 결과물이었습니다.
@김초롱 답변 감사합니다. 저도 사고 현장에 있었고, 사고를 간신히 피한 입장에서 작년의 기억을 올해 핼로윈으로 덮어씌우고싶다는 생각에 질문 드린 건데요. 가장 고민이 되는 부분은 핼러윈 파티로 하여금 유가족분들께 더 상처를 주고싶지 않은데 예년처럼 지내도 괜찮은 건지, 기념보다 상처를 주지 않는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의견을 여쭙고싶습니다.
@김초롱 저자님이 올린 이야기를 새겨 읽었습니다. 다음 부분이 특히 그렇습니다.
하지만 천천히 돌아보니 변한 것도 있습니다. 바로 시민사회, 시민의식이 변했습니다. 안전이나 압사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다 보니, 질서와 안내를 잘 듣고 지키려는 문화가 생겼습니다.
사고가 일어나기까지 4시간 동안 80건 가까운 신고가 들어왔네요.
"18시 17분 해밀턴호텔 부근 이마트24 편의점 쪽에서 다수의 인파가 엉켜 압사 위험이 있다면서 인원통제 등 조치를 취해달라고 요청한 신고가 112에 최초로 접수되었다."(위키백과)
윤 대통령과 같은 파평 윤씨인 윤희근 경찰청장은 주말에 월악산 산행 후 경찰계 지인들과 음주를 하며 제천 캠핑장에 있었고 이태원 관할 박희영 용산구청장은 연고지인 고향 경남 의령 집안 행사 참석과 고향 군수를 만나고 왔습니다. 무정부 상태(박지원 전 청와대비서실장 표현)였습니다(https://www.youtube.com/watch?v=zr94BrpA704 06: 27)
어느 선두주자 사단장이 주말마다 연고지 고향 친지들과 골프를 치며 정치적 개인 입지를 다지는 동안 그의 부대에서 어느 주말에 총기 사고가 터졌습니다. 지인 군단장에게 사석에서 총기 사고 예방이 어려운지 묻자 지휘관이 주말에 부대 순시를 하면(서 장병들을 감독하고 격려하면) 긴장하여 사고가 안 난다고 했습니다. 중국 하우는 13년 동안 공인의 삶을 살면서 집앞을 지나면서도 집에 들어가지 않고(맹자 이루 하) 치수 과업을 완수했지요.
정부 책임자급 공무원들은 국민의 공복으로서 하급직 공무원들보다 더 무거운 책무를 갖고 처신을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라고 직책을 준 것이지요.
당시 경험 이후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에 어떤 변화가 어느 정도의 크기로 있었나요? '어디선가 발생하는 일'과 '내 주변에서 일어난 일'과 '내게 닥친 일'은 아무래도 달리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의 한계이기도 하니까요. 그 경계를 넘은 경험이 한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은 얼마나 큰지 궁금합니다. 이렇게 여쭙고 대답을 들어도 저는 알지 못하는 영역이겠지만, 그래도 조심스럽게 여쭙습니다.
이태원 참사 1주기는 곧 할로윈 기념일이라는 건데, 초롱님께선 이번 할로윈을 기념하려는 이들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또한 이들이 취해야하는 바람직한 행동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김초롱 우선, 2차 가해로 마음을 아프게 하여 사죄드립니다. 제 이해가 많이 부족했습니다. 제 무지와 무례에서 비롯한 질문들이 참 부끄럽고 죄송스럽니다만, 첫 댓글에 제가 쓴 2차 가해의 질문은 저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반면교사가 될까 하여 일단 남겨두었습니다. 작가님과 다른 생존자, 유가족 분들 뿐만 아니라 어느누구든 삭제를 원하시면 언제든 지우겠습니다.
제 첫 질문은 오해를 불러일으켰던 것 같습니다. 저는 사실 팔이들을 좋아합니다. 저 또한, 상업적인 것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작가님께서 철저히 상업적이길 기대했기 때문에 그렇게 질문드렸습니다. 방금 책 주문하였습니다. 이번 신간이 잘 팔리면 좋겠습니다. 직업 작가로서 유명해지고, 흥하시길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본인의 고통을 희생해서 사회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행동에 존경을 표합니다. 말씀하신 내용에 동감하고, 책을 읽고 저부터 변화하고자 노력하겠습니다.
바쁘신 와중에 시간과 마음을 내어 답변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