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에 박제된 천재' 이보 포고렐리치

허명현
허명현 인증된 계정 · 공연장에 있는 사람
2023/04/13
'20세기에 박제된 천재' 이보 포고렐리치

천재라는 수식어가 지금은 너무 흔해졌지만, 천재라는 타이틀만이 그 대상을 제대로 설명해 줄 수 있는 피아니스트가 있었다. 바로 20세기의 이보 포고렐리치가 그랬다. 전성기의 포고렐리치는 가공할만한 흡인력을 가진 연주자였다. 리듬을 조립하는 방식은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것이었고, 극한까지 조절 가능한 아고긱스는 선택받은 천재만 할 수 있는 영역이었다. 퍼즐을 던져 놓고, 제 멋대로 다시 조립하는데, 완성된 퍼즐은 그 어떤 퍼즐보다 아름다웠다. 정말 이런건 20세기에는 더이상 나오지 않을 것만 같은 피아니즘이었다.
피아노 앞의 이보 포고렐리치 '이보 포고렐리치 공식 홈페이지'
이보 포고렐리치, 쇼팽 콩쿠르의 진짜 수혜자
   
1980년 쇼팽 콩쿠르에선 재밌는 사건이 일어난다.  심사위원 중 하나였던 마르타 아르헤리치가 심사위원직을 중도 사퇴한 것이다. 콩쿠르 참가자였던 이보 포고렐리치가 3라운드에서 탈락했기 때문이다. 포고렐리치야말로 진정한 천재라고 믿었던 아르헤리치는 항의의 뜻으로 심사를 포기하고, 경연장을 뛰쳐나갔다. 심지어 그날 새벽 비행기로 바르샤바를 서둘러 떠난다(그것도 자신의 어린 딸을 바르샤바 호텔에 두고). 그녀는 그녀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항의 액션을 취한 것이다. 그런 이유로 콩쿠르가 끝나기도 전에 포고렐리치는 화제의 인물이 되었다. 쇼팽 콩쿠르에서 탈락한 포고렐리치가 아이러니하게도 막 자신의 커리어를 시작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콩쿠르의 뜨거운 열기를 뒤로하고, 냉정한 시각으로 당시 콩쿠르 영상을 지켜보면 아르헤리치의 항의도 납득할 만 하다. 포고렐리치는 정말로 천재였다. 모든 아티큘레이션이 저세상 레벨로 규정되었고, 그의 손끝에서만 가능한 것이 태반이었다. 가히 메피스토라고 붙일 법한 그런 피아니즘이었다. 음악이 맥박을 하고 있었으며, 생명력을 획득한 음악은 무한한 에너지를 추진력 삼아 어디로 튈지 몰랐다.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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