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우리 아버지!

하야니
하야니 · 글쓰기를 좋아하는 顾客(고객)입니다.
2022/08/12
오늘은 그 동안 저의 마음 한 켠에 묻어두고 살았었는데, 불현듯 아버지가 생각이 많이 납니다.
저의 아버지께서는 독자로 태어나셔서 부모님이 지극 정성으로 키워낸 아주 훌륭하고 대단한 아들이었습니다. 시골에서 태어났지만 서울의 이름난 대학에 다니게 되었고, 졸업 후에는 학교 선생님이 되셨습니다. 집안 어른들이 동네의 참한 여인과 결혼을 시켜서 아들을 한 명 낳게 됩니다. 결혼 후에도 도시에 있는 직장인 학교에 근무를 했기 때문에 거의 고향에는 방학을 제외하고는 왕래를 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 무렵 우리 집의 장손 큰 오빠가 태어나고, 오빠 역시 애지 중지 잘 키워냅니다. 
   
아버지는 부모님과 같이 살지 않았고, 도시의 어느 한 초등학교에 근무를 하게 됩니다. 거기에서 정말 찐 연애를 하게 되지요. 20대 중반인 그 여인은 서울의 유명 여대를 졸업하고 역시 선생님이 되어서 같은 학교에 같이 근무를 하고 계시던 아버지와 결혼을 합니다. 그 당시에는 6.25 전쟁의 끄트머리의 시기여서 사회가 아주 혼란스럽고 피난을 온 사람들로 구성이 되어 있어서 정말 경제적으로 많이 어려울 때라고 했습니다. 
   
지금처럼 주민 센터가 없어서 그 사람이 혼인을 했는지 확인이 되지 않았고, 아버지는 총각이라고 속이고 엄마와 결혼을 했는데 수 년이 지나서 갑자기 고향에 다녀오더니 그 당시 5살 된 큰 오빠의 손을 잡고 집에 오셨다고 합니다. 새로 결혼을 했기 때문에 아내는 그렇다 치고 아들은 보고 싶었을 터인데 그것을 참고 있다가 이런 일을 만듭니다.
   
엄마는 충격에 휩싸여 매일을 눈물로 지샜지만 어린 자식들이 있으니 모든 것을 포기하고 아이들을 키우는데 힘을 썼다고 하셨습니다. 고향에 있던 아내는 또 그 사람대로 시부모를 모시고 살고 있었는데 이렇게 장손을 하루아침에 뺏기고 나니 살고 싶었겠습니까? 두 아내를 거느리기에는 너무 부족한 남자였고, 그렇다고 양 쪽을 다 먹여 살리기에는 역부족이었고, 아버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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