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 아닌 건 아니다

살구꽃
살구꽃 · 장면의 말들에 귀를 모아봅니다.
2024/03/17
영화 4.  <비밀의 언덕> 감독 이지은. 2023
   

친정식구들이 모였다. 돌아가신 아버지 1주기였다. 언니 옆에 한 남자가 머쓱하게 앉았다. 나는 그를 보자마자 형부라고 불렀다. 엄마가 흠칫했다. 

“너는 비윗살도 좋구나, 형부라는 말이 그리 쉽게 나오냐~.”
   
엄마의 언짢은 마음을 모르지 않았다. 처음부터 부르지 않으면 더 서먹해질까봐 내가 먼저 용기를 냈다. 아버지기일에 새 식구를 데려온 건 언니의 암묵적인 용인이다.


언니는 여러 ‘사업’을 전전했다. 한때 양재공부를 했던 솜씨가 무색하게 고깃집을 곁들인 한식당을 운영했다. 그러다 하던 일을 정리하고 지방 산업공단이 있는 4층 모텔을 인수했다. 모텔은 공단직원들 기숙사로 이용되면서 3년여의 호황이 이어졌다. 엄마는 ‘그놈’이 기회를 틈타 언니한테 밀고 들어와 아예 눌러 붙었다고 했다. 
   

형부는 모텔이용객으로 기숙하고 있었다. 건물 곳곳에 수선과 손질이 필요하다싶으면 언니 손이 가기도 전에 먼저 나타나 해결했다. 무거운 짐을 들어주고 장거리 운전을 할 땐 운전자를 자처했다. 


형부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뒀다. 정작 부부로 모텔운영을 같이 하면서부터는 언니에게서 건, 일에서 건 정성이 덜했다. 그는 나를 꼭 우리처제라고 불렀다. 친절한 목소리에 과하게 다정했다. 그래서 썩 미덥지 않았다. 언젠가 모텔주차장에 색 바랜 각종차들 가운데 유난히 반짝이는 회색그랜저 차가 있었다. 손님 차 인줄 알았는데 그 안에서 형부가 나왔다. 새 차를 뽑은 건 언니와 재밌게 드라이브도 하고 좋은 곳도 가려한단다. 우리처제도 같이 다니자며 왠지 변명처럼 말이 늘어졌다. 언니는 드라이브나 재미라는 것보다 또 다른 사업마인드가 있는 게 분명했다. 형부 말만 듣는다면 두 사람은 누구보다 낭만적이고 다정한 부부였다. 

 “죽 쒀서 개를 주네. 오십 넘도록 혼자 잘 살다 그게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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