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프터선> - 사라진 아빠에게
2023/02/09
이 글은 영화 <애프터썬>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아빠는 기록하고 딸은 기억한다
아빠, 잘 지내?
수요일에 영화 한 편을 보고 왔어.
31살 아버지와 11살 딸의 휴가 이야기야. 터키로 단 둘이 여행을 가서 무료한 여름 시간을 보내지. 이 내용이 전부야. 별다른 사건도 없어. 영화가 끝난 후 '별 스토리는 없네', 라고 생각했어. 영화는 좋았지만.
아빠는 영화를 좋아했어?
아빠가 영화를 좋아하는지 생각하다 기억 하나가 떠올랐어. 아빠와 함께, 우리 대가족이 극장 한 줄을 차지하고 성룡 영화를 보았던 저녁이야. 그 영화를 보고 난 후 아빠가 무술 흉내를 내며 장난을 쳤던 것 같아. 아빠도 영화를 좋아했나 봐. 아빠 기억이 떠오르니 좋네. 그때 영화는 내 어린 눈에도 유치했지만 우리 가족 다 같이 영화 관람을 한다는 사실에 난 벅찼어.
이 영화는 성룡 영화와 달리 조용하고 느려. 관객이 보는 건 31살의 젊은 아버지가 계속 11살 딸을 촬영하려는 몸짓이야. 아버진 옛날 캠코더로 딸을 촬영해. 딸이 자고 있는 밤이면 그 영상을 다시 보고 있어. 기록해서 기억하려는 것처럼, 마치 딸을 볼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인 것처럼.
약 20년 후, 그 기록을 성인이 된 딸이 보게 돼. 아버진 기록하고, 딸은 기억하지. 그래서 영화는 한 번씩 초점이 바뀌곤 해. 아버지 관점, 딸의 관점 번갈아서. 딸은 그 기록을 통해 이해하려 하는 것 같아. 31살의 젊은 아버지를. 그가 겪었을 혼돈을.
영화는 도입부에서 화면이 찢어지는 이미지를 넣어. 관객에게 '이것은 누군가의 흩어진 기억이자 혼란한 한 때다', 라고 선언하는 것처럼. 또한 '이것은 영화의 한계이자 가능성이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이 영화는 '기억'에 관한 영화이며, 동시에 '영화'에 관한 영화야. 영화가 설명을 하지 않고 이미지와 음악으로 나아가거든. 딸과 아버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가 없어. 관객이...
2019년 김재아란 필명으로 SF장편 <꿈을 꾸듯 춤을 추듯>을 썼다. 과학과 예술, 철학과 과학 등 서로 다른 분야를 잇는 걸 즐기는 편이다. 2023년 <이진경 장병탁 선을 넘는 인공지능>을 냈다. ESC(변화를꿈꾸는과학기술인네트워크) 과학문화위원장으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