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 포인트 레슨 04 : 클리셰

이기원
이기원 인증된 계정 · 드라마작가, 소설가, 스토리 컨설턴트
2023/10/05
드라마에서 이런 장면을 자주 보았을 거라 확신한다.

남자 주인공이 한 밤중에 여주인공을 찾아와 얼결에 여자의 방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된다. 여자는 남자를 재워주는 대신 방 중앙에 매직펜으로 선을 긋고는 그 선을 넘어와서는 안 된다는 다짐을 받는다. 그리고 나란히 눕는데...  

예전에는 정말 많이 나왔지만, 요즘엔 젊은이들의 변화된 성의식으로 인해 잘 쓰이지 않는 고색창연한 클리셰 중 하나이다. 하지만 요즘에도 분명 어느 드라마에서는 이 장면이 나오고, 미래에 제작될 드라마에도 반드시 나올 거라 확신한다. 왜냐, 남녀 주인공을 밤중에 한 방 안에 있게 하는 것은 언제나 굉장한 흥미와 긴장감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녀 사이에 선을 긋는 클리셰를 순간, 보는 이들은 짜증이 나서 채널을 바꿔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된다. 너무나 많이 봐 왔던 장면이기 때문이다.

클리셰가 무엇인가? 진부하기 짝이 없는 뻔하디 뻔한 설정이나 장면 아닌가.

그래서 작가들은 이 클리셰를 클리셰처럼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해서 다음과 같은 식으로 각색하거나 변화를 주기도 한다.

매직펜으로 선을 긋는 대신, 책꽂이에서 책을 꺼내 성을 쌓거나, 행거 옷걸이를 가져다가 놓거나, 심지어 베개를 가운데에 죽 이어놓고 베개 없이 누워있기도 한다. 때론 방 가운데 가상의 선을 설정한 뒤 넘어오지 말라고 하기도 한다.

이 책을 읽는 당신도 지금 둘 사이에 무엇을 놓으면 좋을지를 한 번 생각해 보라.

필통에서 필기도구를 꺼내 선 대신 이어놓을 수도 있을 것이다,  마침 방을 가로지르는 빨랫줄이 있어서 거기에 홑이불을 걸어놓을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재활용을 하기 위해 모아둔 병이 있다면 병을 일렬로 세워놓을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가? 클리셰 같지 않고 새로운 느낌이 드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새로운 오브제를 늘어놓아 봤자 여전히 클리셰일 뿐 인 것이다.

왜 그런 걸까?

이유는 간단하다. 모두 어설픈 물리적 장애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다. 즉, 방 가운데 그어 놓은 선과 같은 기능을 하는 동시에 의...
이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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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는 작법 연구. <하얀 거탑>, <제중원> 집필. 드라마를 베이스로 ‘세상의 모든 작법’ 을 쉽고 분명하게 알려 드립니다. ‘공모에 당선되는 극본 쓰기’, ‘원포인트레슨’, ‘작가가 읽어주는 작법책’ 등등이 연재됩니다 이메일 keewon7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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