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冊상실의 시대(원제: 노르웨이의 숲)] 미국인도 모르는 희망의 길

강현수
강현수 · 영화와 冊.
2024/05/31
1987. 무라카미 하루키. <상실의 시대>

슬슬 모기가 기승을 부리기 시작하면 마음이 들뜨게 된다. 불안인지 기대감인지 모를, 느슨한 파형에 충격을 가하는 심리적 요소가 모기에 달라붙어 있다. 실제로 1년의 절반은 6월 말 7월 초이겠지만, 나로서는 모기의 등장은 반년의 상징처럼 보이는데, 그 탓일까? 그 정도의 시간이 흘렀는데도 여전히 소설을 어떻게 써야 할지 헤매는 바보. 폴 오스터나 조지 오웰 혹은 천명관처럼 쓰고 싶은데 내 글은 오히려 웹소설을 닮아 있다. 정확한 기억은 아닌데, 스티븐 킹 특유의 문체를 두고 어떤 기자가 “왜 그렇게만 쓰느냐?” 묻자, “나에게 다른 선택지가 있어 보입니까?” 되물었단다. 겸손한 명언이다. 대부분 소설가의 마음을 대변한달까? 이상과 현실의 심대한 간극을 채우기 위해서 나는 오늘도 책을 읽는다.

하루키는 예전에 좋아한 작가다. 어떤 작가와 어느 작품을 좋아한다는 건 독자의 그 시절과 맞닿아 있다. 그때는 그랬고, 지금은 이럴 텐데, 소설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몰라 <상실의 시대>를 다시 든 지금의 감정을 한 단어로 표현하면, 유감스럽게도 ‘실망’이다.

최고는 아니더라도 꽤 감명 깊게 읽은 책인데 뒤떨어진 감각이 줄줄이 눈에 들어왔다. 꽤 심오한 이야기를 다룬 것으로 기억했는데 그렇지도 않더라. 성장통이라는 일반적인 요소와 죽음의 미학이라는 일본적인 요소 그리고 첫사랑과 상실이라는 하루키적 요소가 얽힌 초보 작가 냄새가 물씬 풍기는 매우 대중적인 작품으로 이번엔 읽혔다. 이런 소설이 대한민국에서 한바탕 돌풍을 일으킬 수 있었던 건 시대성과 함께 일본 문화 개방이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던 까닭이 클 거로 본다. 대중성이라는 건 정말 무시 못할 요소다. 접근성과 시대성(~트렌드)은 충분조건인데 여기에 더해 하루키에겐 독자에게 여운을 남기는 무언가를 지니고 있다. 묘하게 삼박자가 들어맞았달까. 운이 좋은 작가라고 본다. 박한 평인가? 두둔하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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