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에모2] 이제, 얼굴 하나 남았다

아멜리
아멜리 · 하루에 하나씩 배우는 사람
2023/05/17

이 글은 [얼룩소 에세이 쓰기 모임 2]에 참여하며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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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부장님’이라 불리던 시절이 있었다. 띠동갑 나이 차이가 나는 신입 사원이 나에게 ‘부장님’ 하며 다가올 때, 나이가 지긋한 고객사 임원이 ‘ 김 부장’ 하며 부를 때, 촬영 현장에서 스태프들이 ‘부장님’ 하며 손짓할 때 슈퍼맨이 된 기분이었다. 내가 ‘부장님’일 때 이 세상에 내가 할 수 없는 일은 없고, 어떤 문제든 내 손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충만했다. 

미국으로 이사를 오면서 직함과 함께 이름도 잃어버렸다. 여기서 만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아이들의 학교 친구 양육자들이다. 그들은 나의 이름보다 아이들 이름에 ‘엄마’를 더해서 나를 기억한다. 심지어 한글 이름은 발음하기도, 기억하기도 어려워 굳이 내 이름을 누군가 불러주리라 기대하지도 않게 되었다. 길을 걷다 익숙한 얼굴이 보이면 다가가 ‘하이’ 하고 인사하면 그만인 셈이다. 그런데도 애써 발음하기 어려운 내 이름을 기억하고 불러주는 고마운 사람들은 꼭 있다. 

직함도 없고 이름도 잃어버린 나는 나의 존재를 뭐로 증명하며 살아야 하나. 무심히 카페에 앉아 커피를 홀짝이던 날 이 고민이 날아들었다. 굳이 존재를 증명하며 살 필요는 없다. 하지만 불리던 이름들이 사라지고 난 후 불어 닥친 공허함은 내가 입으로 불 수 있는 풍선보다 컸다. 

일찌감치 김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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