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에모2] 이제, 얼굴 하나 남았다
2023/05/17
이 글은 [얼룩소 에세이 쓰기 모임 2]에 참여하며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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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부장님’이라 불리던 시절이 있었다. 띠동갑 나이 차이가 나는 신입 사원이 나에게 ‘부장님’ 하며 다가올 때, 나이가 지긋한 고객사 임원이 ‘ 김 부장’ 하며 부를 때, 촬영 현장에서 스태프들이 ‘부장님’ 하며 손짓할 때 슈퍼맨이 된 기분이었다. 내가 ‘부장님’일 때 이 세상에 내가 할 수 없는 일은 없고, 어떤 문제든 내 손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충만했다.
미국으로 이사를 오면서 직함과 함께 이름도 잃어버렸다. 여기서 만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아이들의 학교 친구 양육자들이다. 그들은 나의 이름보다 아이들 이름에 ‘엄마’를 더해서 나를 기억한다. 심지어 한글 이름은 발음하기도, 기억하기도 어려워 굳이 내 이름을 누군가 불러주리라 기대하지도 않게 되었다. 길을 걷다 익숙한 얼굴이 보이면 다가가 ‘하이’ 하고 인사하면 그만인 셈이다. 그런데도 애써 발음하기 어려운 내 이름을 기억하고 불러주는 고마운 사람들은 꼭 있다.
직함도 없고 이름도 잃어버린 나는 나의 존재를 뭐로 증명하며 살아야 하나. 무심히 카페에 앉아 커피를 홀짝이던 날 이 고민이 날아들었다. 굳이 존재를 증명하며 살 필요는 없다. 하지만 불리던 이름들이 사라지고 난 후 불어 닥친 공허함은 내가 입으로 불 수 있는 풍선보다 컸다.
일찌감치 김춘...
[합평]
"이제 나에게 내 얼굴 하나 남았구나." 라는 역설적인 표현은 오히려 자신있는 얼굴이 되었음으로 여겨집니다.
단락마다 군더더기없이 정리된 듯하면서도 자연스럽게 이어나갑니다.
"누군가 ‘부장님’하고 나를 부르면 슈퍼맨처럼 한달음에 달려간 열정과/ 누군가 ‘보민아’ 하고 나를 부르면 호기심이 가득한 동그란 눈으로 바라본 내 얼굴,/ 직함과 이름으로 불리기 전부터 내가 가진 그 얼굴,/ 직함과 이름에 모두 담을 수 없는 나의 마음과 생각을 담고 있는 얼굴이 있었다./"
이 기억은 '준비 된 자에게 기회는 온다'는 말처럼
지난달 보스턴에서 있었던 한국 정부 관련 행사에 현장 스태프로 이틀 동안 일할 때로 적절하게 이어졌습니다.
긴 문장인데 단문보다 더 간결하게 느껴지면서, 아멜리님만의 개성있는 문체로 각인 됩니다.
독자를 붙잡아두는 묘한 매력까지 있습니다.
멀리 미국에 있는데 내 옆에서 이야기하는 것 같아요.
"세상을 마주하는 내 얼굴이다." 는 시작으로 올 법한 글의 마무리에서 긴 여운을 남깁니다.
끝이 아님을 시사합니다.
마지막 단락
"혼자 있을 때 글자 ‘은’ 소리를 만들어 길게 내뱉어 본다."
알쏭달쏭한 '은'은 뭘까요?
그저 입꼬리가 올라가는 웃는 얼굴을 위함인가요...^&^
= 합평이라는 이름아래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도 모르고 어설픈 임무수행 했습니다~!
ps ; 27일 댓글의 엉뚱한 호기심에 답글도 감사합니다..^&^
[합평]
첫 문단을 읽으며 한때 직장에서 혹은 자신의 일로 직함을 갖고 사회적지위를 드러냈던 많은 여성들이 떠올랐어요. 주변에서 보면 어쩔수없는 이동으로 이거나 자신의 이름이 유지될 수 없는 상황에서 저를 비롯해 어느 순간 맞딱뜨리는 공허함은 '(내가) 불 수 있는 풍선보다' 더 컸고 그들도 생각보다 큰 공허함을 느끼지 않았을까 싶어요.
김춘수의 꽃이라는 시에서 나오는 이름은 의미부여와 나의 정체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내 이름의 주인은 정말 나일까요.
내 이름을 가장 많이 불러준 이는 부모였을텐데 행복한 인생으로 살길 바라며 지어주었을 나의 이름의 의미를 묻게 됩니다. 세월이 흘러도 바뀌지 않았던 나의 이름, 물론 어떤 사람은 자기 이름을 개명하기도 하지만. 이제 내 이름을 불러주던 부모는 없고 누군가 내 이름을 불러주는 기회도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사그라져 가는데 이름은 그대로 있고 내 모습은 지금 이름에 걸맞는 것일까 생각해보게 합니다.
이제 남아 있는 '얼굴'하나가 내 이름을 앞서고 있습니다. '새로운 것과 다른 것에 한없이 열려 있는 내 마음이 표정'으로 드러날 때 '언어의 벽'은 문제도 아니며 누군가는 인사를 건네기도 하는 군요. 얼굴하나 남았지만 그 '얼굴을 가꾸는 것이 내 마음을 둘러보고 살아가는 방향을 정돈하는 일이 되었다.'고 하니 이미 이름이 불러지지 않았을 때의 공허함은 충분히 극복했다는 반증인 것 같습니다. 이제는 채워진 마음으로 '파란 하늘에 고요히 떠가는 구름'을 바라보고 있으니까요. 아멜리님의 평안하게 웃음띤 얼굴이 그려지는 것 같습니다. 잘 정돈된 글,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빅맥쎄트 동기화 넘나 멋진 단어인거 같아요! 아멜리 지금은 동기화중!
@멋준오빠의 행복공작소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가지고 있던 직함과 이름이 간단 명료해지는 시점이 다가오는 것 같아요. 이 시기도 잘 넘기면 새로운 영역이 펼져치겠지요! 제 글 좋은 마음으로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콩사탕나무 제 글을 꼼꼼하게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하나 있는 얼굴에서 유칼립투스 양 같이 은은한 향이 풍긴다면 그것도 참 괜찮은 것 같아요. 글에서도 그런 향이 나면 더 좋고요!!
@나철여 오 맞아요. 그 행사였어요. 자제분이 특파원으로 와 계시나봐요. 그때 보스턴에 기자들이 많이 왔다고 들었어요.
@아멜리
[합평]
대기업에서 부장 타이틀을 얻기 위해서는 최소 15년~20년의 연차가 필요하다. 미국으로 이사를 가며 이름과 함께 직함을 잃었다는 것은 단순히 거주지가 바뀌는 것이 아닌 나라는 존재와 생활 방식 전체가 새롭게 바뀌는 것을 의미한다. 오랜 시간을 겪을 수록 관성의 법칙은 강해진다. 오랫동안 분주하고 열정적인 삶에서 직함과 이름을 잃어버린 채 느끼는 공허함이 무척 묵직하게 느껴진다.
충분히 힘들만한 상황에서 그녀는 부정적인 감정에 매몰되지 않고 스스로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거울 속의 내 모습을 끊임 없이 마주하는 것은 내 삶을 상상하고, 계획하고, 만들어 나가는 다짐이자, 의지의 시간이다. 마음을 잡는 시간들은 생각에서 머무르지 않고 삶으로 이어진다. 보스턴 현장 스태프로 일할 때, 아이의 학교 행사에서 동네 사람들을 만날 때.
글을 읽으면서 '동기화'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얼굴을 마주하고 가꾸며 마음을 둘러보는 그녀의 삶은 곧 그녀의 삶 전체와 맞닿아있다.
https://alook.so/posts/70tmJa5
부장이라는 직함을 떼어버렸을 때 비로소 나의 얼굴이 드러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직함, 수식어 등이 사라진 민낯을 마주하는 건 정말 힘들지만, 그래도 종종 걷어낼 걸 걷어내야 앞으로 한걸음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네요.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좋은 주말을 좋은 글과 함께 보냅니다!
[합평]
안녕하세요. 아멜리님^^
[육아 삼쩜영]을 통해 육아를 하는 지혜로운 엄마의 모습을 봤다면 [얼에모]의 에세이에서는 엄마가 아닌 ‘나’ 자신의 모습을 만나게되어 반가웠습니다.
초반에 마치 슈퍼맨처럼 느껴졌던 ‘부장님’ 시절을 지나 직함과 이름을 잃어버린 채 ‘엄마’로 살아가는 현재에 느끼는 허탈함과 공허한 감정들에 공감이 많이 되었습니다. 아이가 주는 행복과 엄마가 되었다는 벅찬 감정과는 달리 저 또한 출산과 육아를 통해 소속도, 이름도 없이 ‘00이 엄마’라고 불릴 때 한동안 혼란에 휩싸였고 받아들이기까지 힘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굳이 존재를 증명하며 살 필요는 없다. 하지만 불리던 이름들이 사라지고 난 후 불어 닥친 공허함은 내가 입으로 불 수 있는 풍선보다 컸다.
엄마가 되며 잃어버린 사회적인 자리에 대한 공허함이 잘 드러나는 문장입니다. 공감을 느끼기 이전에 쓰신 문장 하나하나에 감탄을 하고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
마침내 직함이나 이름이 아닌 자신이 가진 얼굴에 대한 가치를 발견하고 나의 마음과 생각이 담긴 얼굴에 만족하는 탐구(?) 과정들에 덩달아 뿌듯함이 몰려왔습니다.
글에서 호기심 가득하고 매사에 눈을 반짝이며 다가가는 사랑스러운 아멜리님의 얼굴이 그려졌습니다. 덕분에 나의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얼굴, 세상과 마주하는 나의 얼굴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봅니다.
어설픈 합평아닌 합평을 마칩니다.^^
글 쓰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다음 글도 기대합니다.^^
@아멜리 님 '여담'이지만...
"지난달 보스턴에서 있었던 한국 정부 관련 행사에 현장 스태프로 이틀 동안 일할 때"...
혹 윤대통령 미국빈 방문 때 아닌가요?...
맞다면...
뉴저지에 사는 울 딸이랑 사위도 그때 인터뷰차 거기 갔었다던데~ㅎ
글을 읽다가...엉뚱한 호기심에...
제겐 어렵기만한 합평으로 대신 하면 현안님한테 혼나겠죠~~^&^
@몬스 글을 공들여 쓸 때마다 글과 삶이 비슷해지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날들이 있었어요. 그 마음을 읽어주신 것 같아 감사해요.
@박현안 마음으로 글 읽어주셔서 고마워요. 나름 짜임새에 공을 들이려 애썼는데 제가 생각했던 것만큼 누군가의 마음에 닿을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하기도 했고요. 인생을 두고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라고 하는데 쉽게 읽히지만 깊이 있는 글을 쓸 수 있으면 좋겠다고 바라봅니다.
@율무선생 일본 드라마에서 보셨다는 대사가 저에게도 의미가 있네요! 맞아요. 우리 별거 아닌 것 같은 일들, 소소해 보이는 순간들에 마음을 주고 작은 즐거움으로 가득한 나날들 보내요!
@천세곡 우리가 닿고자 하는 곳을 바라보고 그 여정을 상상하는 것만으로 때론 힘과 위로와 의지를 얻을 수 있으니까요. '말하는 대로' '바라보는 대로' '상상하는 대로' 만들어가는 나날들 기대해 봅니다! 따뜻한 공감 감사해요!
@피아오량 피아로량님 이름 그대로 아름다운 얼굴과 마음을 가지신 분이 아닐까 싶은! 제 글에 마음 포개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클레이 곽 민낯으로 살아가는 시간을 얻은 혹은 맞이한 시기가 아닌가 싶어요. 말씀하신 것처럼 꼭 나쁜 것 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불현듯 다가온 시간도 오롯이 잘 품어서 또 새로운 시간을 맞이할 디딤돌이 되면 좋겠다는 기대도 해보고요. 응원 고맙습니다!
[합평]
직함과 이름을 잃고 나니 얼굴이 남는군요. 직함이나 이름이나 사실 어떤 약속에 불과한데 더 많이 의존해 버리곤 하는 것 같습니다. 얼굴이라는 날 것의 통로가 있는데 말이죠.
저는 얼굴이 무표정하다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화났냐는 말도 많이 듣고, 생기가 없다는 말도 듣고..ㅎ 그래서 스스로 많이 생각해 보게 되는 글이었어요. 내 얼굴에 책임진다는 게 무엇일까. 나이가 들면 들수록 더 묻어난다는데, 지금이라도 이 글을 봐서 다행입니다. 혼자 '은~' 소리를 내며 난생 처음 웃는 표정을 연습해 봤네요.
감상을 남겨보자면 왠지 아멜리님의 얼굴이 느껴지는 글이었습니다. 말씀하신 생기넘치고 반짝이는 얼굴이 글에서도 느껴졌다고 할까요. 쉽게 쉽게 읽히고 그러면서도 통찰이 담긴, 기운을 얻는 글이었습니다. 다음 글도 기다려지네요!
[합평]
드디어 얼에모를 함께 하게 되었네요. 첫 번째는 휘리릭 읽고, 두 번째 합평을 준비하며 꼼꼼히 읽어내려 갔어요. 붓 가는대로 쓴 글 같지만, 그럼에도 짜임새 있는 글을 읽으면서, 아멜리님은 누구보다 에세이에 최적화되어 있는 분이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슈퍼맨이 되곤 했던 부장님으로 불리던 시절에서, oo엄마로만 불리는 시기를 거쳐, 깊은 사유를 통해 결국 얼굴 하나가 남았다는 사실을 깨닫는 과정까지. 그리고 그 얼굴 하나만으로도 부장님의 마음을 드러낼 수 있다는 통찰까지.
쭉 이어지는 글을 따라가면서, 누구보다 일상의 상실을 관찰과 사유의 힘으로 극복하고 결국 자신만의 통찰을 이끌어내는데 무척 탁월하시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역시 아멜리님이었네요.
짧지만 결코 단순하지 않고, 쉽게 읽히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글, 정말 잘 봤습니다. 함께 해주셔서 감사해요!
@빅맥쎄트 동기화 넘나 멋진 단어인거 같아요! 아멜리 지금은 동기화중!
@멋준오빠의 행복공작소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가지고 있던 직함과 이름이 간단 명료해지는 시점이 다가오는 것 같아요. 이 시기도 잘 넘기면 새로운 영역이 펼져치겠지요! 제 글 좋은 마음으로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콩사탕나무 제 글을 꼼꼼하게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하나 있는 얼굴에서 유칼립투스 양 같이 은은한 향이 풍긴다면 그것도 참 괜찮은 것 같아요. 글에서도 그런 향이 나면 더 좋고요!!
@나철여 오 맞아요. 그 행사였어요. 자제분이 특파원으로 와 계시나봐요. 그때 보스턴에 기자들이 많이 왔다고 들었어요.
@몬스 글을 공들여 쓸 때마다 글과 삶이 비슷해지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날들이 있었어요. 그 마음을 읽어주신 것 같아 감사해요.
@박현안 마음으로 글 읽어주셔서 고마워요. 나름 짜임새에 공을 들이려 애썼는데 제가 생각했던 것만큼 누군가의 마음에 닿을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하기도 했고요. 인생을 두고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라고 하는데 쉽게 읽히지만 깊이 있는 글을 쓸 수 있으면 좋겠다고 바라봅니다.
@율무선생 일본 드라마에서 보셨다는 대사가 저에게도 의미가 있네요! 맞아요. 우리 별거 아닌 것 같은 일들, 소소해 보이는 순간들에 마음을 주고 작은 즐거움으로 가득한 나날들 보내요!
@천세곡 우리가 닿고자 하는 곳을 바라보고 그 여정을 상상하는 것만으로 때론 힘과 위로와 의지를 얻을 수 있으니까요. '말하는 대로' '바라보는 대로' '상상하는 대로' 만들어가는 나날들 기대해 봅니다! 따뜻한 공감 감사해요!
@피아오량 피아로량님 이름 그대로 아름다운 얼굴과 마음을 가지신 분이 아닐까 싶은! 제 글에 마음 포개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클레이 곽 민낯으로 살아가는 시간을 얻은 혹은 맞이한 시기가 아닌가 싶어요. 말씀하신 것처럼 꼭 나쁜 것 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불현듯 다가온 시간도 오롯이 잘 품어서 또 새로운 시간을 맞이할 디딤돌이 되면 좋겠다는 기대도 해보고요. 응원 고맙습니다!
@아멜리 님 '여담'이지만...
"지난달 보스턴에서 있었던 한국 정부 관련 행사에 현장 스태프로 이틀 동안 일할 때"...
혹 윤대통령 미국빈 방문 때 아닌가요?...
맞다면...
뉴저지에 사는 울 딸이랑 사위도 그때 인터뷰차 거기 갔었다던데~ㅎ
글을 읽다가...엉뚱한 호기심에...
제겐 어렵기만한 합평으로 대신 하면 현안님한테 혼나겠죠~~^&^
[합평]
직함과 이름을 잃고 나니 얼굴이 남는군요. 직함이나 이름이나 사실 어떤 약속에 불과한데 더 많이 의존해 버리곤 하는 것 같습니다. 얼굴이라는 날 것의 통로가 있는데 말이죠.
저는 얼굴이 무표정하다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화났냐는 말도 많이 듣고, 생기가 없다는 말도 듣고..ㅎ 그래서 스스로 많이 생각해 보게 되는 글이었어요. 내 얼굴에 책임진다는 게 무엇일까. 나이가 들면 들수록 더 묻어난다는데, 지금이라도 이 글을 봐서 다행입니다. 혼자 '은~' 소리를 내며 난생 처음 웃는 표정을 연습해 봤네요.
감상을 남겨보자면 왠지 아멜리님의 얼굴이 느껴지는 글이었습니다. 말씀하신 생기넘치고 반짝이는 얼굴이 글에서도 느껴졌다고 할까요. 쉽게 쉽게 읽히고 그러면서도 통찰이 담긴, 기운을 얻는 글이었습니다. 다음 글도 기다려지네요!
아이들을 위하여 희생하고 계신 부모님이 아닌지 잠시 생각을 해봅니다. 아직도 젊으신 것 같습니다. 부장님까지만 불렸다면 말입니다. 직함이 아닌 얼굴로만 사는 세상을 5년정도 살아보고 있습니다. 잊혀진다는것도 나름 괜찮고, 관계가 없어져서 혼자가 된다는것도 꼭 나쁜것은 아니다라는 생각도듭니다. 세상에 살때는 인간과의 관계가 팔요햇지만, 세상을 버리고 살때는 인간관계는 필요없는 쓰레기가 되기도 하니까요.
[합평]
"이제 나에게 내 얼굴 하나 남았구나." 라는 역설적인 표현은 오히려 자신있는 얼굴이 되었음으로 여겨집니다.
단락마다 군더더기없이 정리된 듯하면서도 자연스럽게 이어나갑니다.
"누군가 ‘부장님’하고 나를 부르면 슈퍼맨처럼 한달음에 달려간 열정과/ 누군가 ‘보민아’ 하고 나를 부르면 호기심이 가득한 동그란 눈으로 바라본 내 얼굴,/ 직함과 이름으로 불리기 전부터 내가 가진 그 얼굴,/ 직함과 이름에 모두 담을 수 없는 나의 마음과 생각을 담고 있는 얼굴이 있었다./"
이 기억은 '준비 된 자에게 기회는 온다'는 말처럼
지난달 보스턴에서 있었던 한국 정부 관련 행사에 현장 스태프로 이틀 동안 일할 때로 적절하게 이어졌습니다.
긴 문장인데 단문보다 더 간결하게 느껴지면서, 아멜리님만의 개성있는 문체로 각인 됩니다.
독자를 붙잡아두는 묘한 매력까지 있습니다.
멀리 미국에 있는데 내 옆에서 이야기하는 것 같아요.
"세상을 마주하는 내 얼굴이다." 는 시작으로 올 법한 글의 마무리에서 긴 여운을 남깁니다.
끝이 아님을 시사합니다.
마지막 단락
"혼자 있을 때 글자 ‘은’ 소리를 만들어 길게 내뱉어 본다."
알쏭달쏭한 '은'은 뭘까요?
그저 입꼬리가 올라가는 웃는 얼굴을 위함인가요...^&^
= 합평이라는 이름아래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도 모르고 어설픈 임무수행 했습니다~!
ps ; 27일 댓글의 엉뚱한 호기심에 답글도 감사합니다..^&^
[합평]
첫 문단을 읽으며 한때 직장에서 혹은 자신의 일로 직함을 갖고 사회적지위를 드러냈던 많은 여성들이 떠올랐어요. 주변에서 보면 어쩔수없는 이동으로 이거나 자신의 이름이 유지될 수 없는 상황에서 저를 비롯해 어느 순간 맞딱뜨리는 공허함은 '(내가) 불 수 있는 풍선보다' 더 컸고 그들도 생각보다 큰 공허함을 느끼지 않았을까 싶어요.
김춘수의 꽃이라는 시에서 나오는 이름은 의미부여와 나의 정체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내 이름의 주인은 정말 나일까요.
내 이름을 가장 많이 불러준 이는 부모였을텐데 행복한 인생으로 살길 바라며 지어주었을 나의 이름의 의미를 묻게 됩니다. 세월이 흘러도 바뀌지 않았던 나의 이름, 물론 어떤 사람은 자기 이름을 개명하기도 하지만. 이제 내 이름을 불러주던 부모는 없고 누군가 내 이름을 불러주는 기회도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사그라져 가는데 이름은 그대로 있고 내 모습은 지금 이름에 걸맞는 것일까 생각해보게 합니다.
이제 남아 있는 '얼굴'하나가 내 이름을 앞서고 있습니다. '새로운 것과 다른 것에 한없이 열려 있는 내 마음이 표정'으로 드러날 때 '언어의 벽'은 문제도 아니며 누군가는 인사를 건네기도 하는 군요. 얼굴하나 남았지만 그 '얼굴을 가꾸는 것이 내 마음을 둘러보고 살아가는 방향을 정돈하는 일이 되었다.'고 하니 이미 이름이 불러지지 않았을 때의 공허함은 충분히 극복했다는 반증인 것 같습니다. 이제는 채워진 마음으로 '파란 하늘에 고요히 떠가는 구름'을 바라보고 있으니까요. 아멜리님의 평안하게 웃음띤 얼굴이 그려지는 것 같습니다. 잘 정돈된 글,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아멜리
[합평]
대기업에서 부장 타이틀을 얻기 위해서는 최소 15년~20년의 연차가 필요하다. 미국으로 이사를 가며 이름과 함께 직함을 잃었다는 것은 단순히 거주지가 바뀌는 것이 아닌 나라는 존재와 생활 방식 전체가 새롭게 바뀌는 것을 의미한다. 오랜 시간을 겪을 수록 관성의 법칙은 강해진다. 오랫동안 분주하고 열정적인 삶에서 직함과 이름을 잃어버린 채 느끼는 공허함이 무척 묵직하게 느껴진다.
충분히 힘들만한 상황에서 그녀는 부정적인 감정에 매몰되지 않고 스스로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거울 속의 내 모습을 끊임 없이 마주하는 것은 내 삶을 상상하고, 계획하고, 만들어 나가는 다짐이자, 의지의 시간이다. 마음을 잡는 시간들은 생각에서 머무르지 않고 삶으로 이어진다. 보스턴 현장 스태프로 일할 때, 아이의 학교 행사에서 동네 사람들을 만날 때.
글을 읽으면서 '동기화'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얼굴을 마주하고 가꾸며 마음을 둘러보는 그녀의 삶은 곧 그녀의 삶 전체와 맞닿아있다.
https://alook.so/posts/70tmJa5
부장이라는 직함을 떼어버렸을 때 비로소 나의 얼굴이 드러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직함, 수식어 등이 사라진 민낯을 마주하는 건 정말 힘들지만, 그래도 종종 걷어낼 걸 걷어내야 앞으로 한걸음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네요.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좋은 주말을 좋은 글과 함께 보냅니다!
[합평]
안녕하세요. 아멜리님^^
[육아 삼쩜영]을 통해 육아를 하는 지혜로운 엄마의 모습을 봤다면 [얼에모]의 에세이에서는 엄마가 아닌 ‘나’ 자신의 모습을 만나게되어 반가웠습니다.
초반에 마치 슈퍼맨처럼 느껴졌던 ‘부장님’ 시절을 지나 직함과 이름을 잃어버린 채 ‘엄마’로 살아가는 현재에 느끼는 허탈함과 공허한 감정들에 공감이 많이 되었습니다. 아이가 주는 행복과 엄마가 되었다는 벅찬 감정과는 달리 저 또한 출산과 육아를 통해 소속도, 이름도 없이 ‘00이 엄마’라고 불릴 때 한동안 혼란에 휩싸였고 받아들이기까지 힘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굳이 존재를 증명하며 살 필요는 없다. 하지만 불리던 이름들이 사라지고 난 후 불어 닥친 공허함은 내가 입으로 불 수 있는 풍선보다 컸다.
엄마가 되며 잃어버린 사회적인 자리에 대한 공허함이 잘 드러나는 문장입니다. 공감을 느끼기 이전에 쓰신 문장 하나하나에 감탄을 하고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
마침내 직함이나 이름이 아닌 자신이 가진 얼굴에 대한 가치를 발견하고 나의 마음과 생각이 담긴 얼굴에 만족하는 탐구(?) 과정들에 덩달아 뿌듯함이 몰려왔습니다.
글에서 호기심 가득하고 매사에 눈을 반짝이며 다가가는 사랑스러운 아멜리님의 얼굴이 그려졌습니다. 덕분에 나의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얼굴, 세상과 마주하는 나의 얼굴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봅니다.
어설픈 합평아닌 합평을 마칩니다.^^
글 쓰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다음 글도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