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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오직 바라는 것은 ‘비범’과 ‘창의’ - 김향안
독서운동의 시작, 작은 도서관 ‘마을문고’의 창시자 - 엄대섭
잡지 『사상계』와 한국 지성사의 맥락 - 진보비평의 출발과 저항운동의 기지
붕괴된 신화와 몰락한 사회(1) - 와우아파트 붕괴 사고(1970)
“용기 있는 자유주의자, 그러나 좀 고약한 예술가” - 천경자
마이너리티 한계를 딛고 꽃 피운 장인의 솜씨 - 바이올린 마스터 메이커 진창현
마이너리티 한계를 딛고 꽃 피운 장인의 솜씨 - 바이올린 마스터 메이커 진창현
바이올린 마스터 메이커, 진창현(陳昌鉉, 1929~2012) 일본 바이올린 제작자 간첩 사건 한일국교가 정상화 된 이후 1968년 고향 경북 김천을 방문한 일본 교포가 구속되는 사건이 있었다. 대공 혐의였다. 일본에서 바이올린을 제작하는 공방을 열어 자수성가한 뒤 25년 만에 실행한 고향 방문이었지만, 간첩으로 몰려 붙잡혀 가는 통에 부모님 산소도 그리운 옛집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중앙정보부로 끌려간 그는 으레 그렇듯 모진 고문부터 받았다. 자기는 일본에서 바이올린 만드는 사람일 뿐, 간첩이 아니라고 아무리 주장해도 믿어주지 않았다. 그가 고국에서 간첩 혐의로 구속됐다는 소식이 일본으로 전해지자 명망 있는 일본 음악인들이 발 벗고 나서 그의 무고를 청원했다. 결국 일본 경찰의 신원 보증을 받고서야 겨우 풀려날 수 있었다. 되돌려 생각하기 싫은 아찔한 경험이었다. 그를 간첩으로 신고한 사람은 어이없게도 오랜만에 고향을 찾은 그의 성공에 질투심을 느낀 이복형...
조선 최초 걸그룹 '저고리 시스터즈'의 센터 - 홍청자
벌거벗은 운명에 맞서 자유를 꿈꾸었던 문학소녀 - 전혜린
‘한국의 미켈란젤로’라 불린 민족화가 - 이쾌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