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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왕가의 여성들...(10) 프로이센의 조피 : 콘스탄티노스 1세의 왕비(첫번째)
그리스 왕가의 여성들...(10) 프로이센의 조피 : 콘스탄티노스 1세의 왕비(첫번째)
그리스에서 소피아라는 이름으로 알려지게 되는 프로이센의 조피는 독일의 황제 프리드리히 3세와 그의 아내인 프린세스 로열 빅토리아의 셋째딸로 태어났습니다.
조피의 아버지인 프리드리히 3세는 독일의 황제 빌헬름 1세와 그의 아내인 작센-바이마르-아이제나흐의 아우구스타의 아들이었습니다. 프리드리히3세의 부모는 성격적으로도 안 맞았고 정치적으로도 안 맞았는데 둘은 심지어 헤어지려고까지 했었지만 아들인 프리드리히의 만류로 그냥 헤어지지는 않았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프리드리히 3세는 자유주의를 더 선호했는데 아마도 어머니인 아우구스타의 영향을 받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버지인 빌헬름 1세는 보수주의자였고 이것은 프리드리히가 아버지 생전에 정치적인 활동을 크게 못하는 원인이 되었을 것입니다. 게다가 프리드리히 3세 역시 즉위전에 이미 암에 걸렸고 즉위한뒤 일년을 넘기지 못했기에 정치적으로 두드러지지 못했었습니다.
조피의 어머니인 프린세스 로열 빅토리아는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과...
그리스 왕가의 여성들...(9) 그리스와 덴마크의 마리아 : 게오르기오스 1세의 딸(두번째)
그리스 왕가의 여성들...(9) 그리스와 덴마크의 마리아 : 게오르기오스 1세의 딸(두번째)
러시아에서 마리아 게오르기예브나 대공비로 불린 마리아는 결혼후 큰 어려움 없이 지내게 됩니다. 마리아의 어머니는 러시아 여대공이었으며, 외가 친척들은 러시아에서 마리아를 잘 지낼수 있도록 도와줬습니다. 게다가 황제 니콜라이 2세는 마리아의 사촌이었으며 또 마리아와 가장 친했던 크세니아는 게오르기 대공의 동생인 알렉산드르 대공과 결혼했었기까지 했었습니다. 마리아는 결혼후 두 딸인 니나와 크세니아를 낳았으며 게오르기 대공은 아내와 딸들에게 최선을 다하는 남편이자 아버지였습니다. 게다가 러시아 대공들은 매우 부유했기에 마리아 역시 경제적으로도 부족함이 전혀없었습니다.
이렇게 러시아에서 평온한 삶을 살았지만 마리아는 원치 않던 결혼을 했기에 남편에게 냉랭하게 대했으며 러시아에 머무는 것도 그렇게 좋아하지 않으며 화려한 상트페레트부르크의 궁정 생활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아내에게 늘 충실했던 게오르기 대공은 마리아를 위해서 크림반도쪽에 아내를 위한 집을 마련해주고 평온한 생활을 할...
그리스 왕가의 여성들...(8) 그리스와 덴마크의 마리아 : 게오르기오스 1세의 딸(첫번째)
그리스 왕가의 여성들...(8) 그리스와 덴마크의 마리아 : 게오르기오스 1세의 딸(첫번째)
그리스와 덴마크의 마리아 공주는 그리스의 국왕 게오르기오스 1세와 그의 아내인 올가 왕비의 둘째딸이자 다섯 번째 아이로 태어났습니다. 마리아는 그리스의 미니라는 애칭으로 가족들에게 불렸는데, 아마도 고모이자 러시아의 알렉산드르 3세의 황후였던 마리야 표도로브나의 애칭이 미니였기에 고모와 구별하기 위해서 그렇게 불렀다고 합니다. 마리아는 위로는 오빠 셋과 언니 한명이 있었고 밑으로는 남동생 둘이 더 태어났습니다. 어려서 오빠인 니콜라오스와 언니인 알렉산드라와 함께 자라났으며 셋은 친한 사이가 됩니다. 또한 마리아는 자주 덴마크의 가족모임에 참석했고 어머니를 따라 러시아로 자주 갔었기에 이 때문에 많은 친척들을 만났습니다. 마리아는 이때 만난 고종사촌이었던 영국의 빅토리아 알렉산드라 공주(에드워드 7세의 둘째딸)이나 러시아의 크세니아 여대공(알렉산드르 3세의 첫째딸)와 평생 가까운 사이로 남았다고 합니다.
마리아는 언니인 알렉산드라보다는 덜 아름답지만 더 명랑하고 쾌할한 성...
그리스 왕가의 여성들...(7) 그리스와 덴마크의 알렉산드라 : 게오르기오스 1세의 딸
그리스 왕가의 여성들...(7) 그리스와 덴마크의 알렉산드라 : 게오르기오스 1세의 딸
그리스와 덴마크의 알렉산드라 공주는 그리스의 국왕 게오르기오스 1세와 그의 아내인 러시아의 올가 콘스탄티노브나의 첫째딸이자 셋째아이로 태어났습니다. 알렉산드라라는 이름은 아마 고모이자 대모로 영국의 에드워드 7세와 결혼한 덴마크의 알렉산드라와 외할머니인 알렉산드라 이오시포브나 대공비의 이름을 딴 것 일듯합니다. 그래서 원래 알렉산드라의 애칭은 “알릭스”가 되어야했지만, 이미 고모인 웨일스 공비의 애칭이 알릭스였기에, 알렉산드라는 가족들에게 그리스의 알릭스라는 애칭으로도 알려지게 됩니다.
알렉산드라의 아버지인 게오르기오스 1세는 덴마크의 크리스티안 9세의 아들이긴했지만, 어린시절에는 국왕이나 왕위계승자의 아들이 아니었습니다. 크리스티안 9세는 젊은 시절 덴마크의 왕위계승자가 되기전 덴마크 방계 왕가 출신의 군인으로 살았으며 부유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크리스티안 9세의 자녀들은 주로 고용인들과 생활하던 다른 왕가의 자녀들과 달리 부모와 함께 지냈으며 형제자매들과 함께 놀았었...
그리스 왕가의 여성들...(4) 러시아의 올가 콘스탄티노브나 : 게오르기오스 1세의 왕비 (첫번째)
그리스 왕가의 여성들...(4) 러시아의 올가 콘스탄티노브나 : 게오르기오스 1세의 왕비 (첫번째)
러시아의 올가 콘스탄티노브나 여대공은 러시아의 니콜라이 1세의 손녀로 콘스탄틴 니콜라예비치 대공과 그의 아내인 알렉산드라 이오시포브나 대공비의 장녀로 태어났습니다.
러시아의 황실인 로마노프 가문은 미하일 표도로비치 로마노프가 1613년 17살의 나이로 러시아의 차르로 선출되면서 러시아를 통치한 가문이었습니다. 특히 18세기 미하일 표도로비치의 손자였던 표트르 대제가 러시아를 개혁했고 주변의 스웨덴과의 투쟁에서 승리를 거두면서 러시아가 유럽의 강자가 될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하지만 표트르 대제는 후계자를 결정하지 못하고 사망했으며 이후 러시아는 후계자 문제로 혼란해지게 됩니다. 특히 표트르 3세 이후 로마노프 가문의 남성 직계가 단절되면서 정치적으로 좀 더 복잡한 상황이 됩니다.
표트르 대제의 딸인 옐리자베타 표트로브나는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조카가 모두 러시아의 황제가 되었지만, 사촌인 안나 여제가 즉위 한뒤 정치에서 밀려났었습니다. 옐리자베타는 안나 여제가 죽은뒤 ...
19세기 그리스의 군주 선출 문제 : (1) 독립한 그리스와 군주제
"그애도 우리처럼 행복할꺼예요" : 바텐베르크의 앨리스와 그리스의 안드레아스 왕자
"그애도 우리처럼 행복할꺼예요" : 바텐베르크의 앨리스와 그리스의 안드레아스 왕자
바텐베르크의 앨리스는 바텐베르크의 루드비히와 그의 아내인 헤센의 빅토리아의 첫번째 아이로 태어났습니다. 헤센의 빅토리아의 외할머니였던 빅토리아 여왕은 외손녀인 빅토리아가 자신이 있는 윈저성에서 아이를 낳길 원했고 빅토리아는 자신의 어머니인 앨리스 공주가 자신을 낳았던 곳에서 딸인 앨리스를 낳았습니다. 그리고 여왕은 새로태어난 이 어린 아이의 이름을 죽은 자신의 딸이자 아이의 외할머니였던 앨리스 공주의 이름을 따서 앨리스라고 불렀습니다.
앨리스는 어린시절 청각장애를 가졌다는 것이 알려졌습니다만, 어머니인 빅토리아는 딸에게 독순술을 가르쳤으며 앨리스는 독순술로 사람들의 말을 거의 이해했기에 앨리스를 처음 보는 사람은 그녀가 장애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기 힘들정도였습니다. 그리고 가족들 역시 앨리스가 단지 천천히 반응하는 사람으로 보일뿐 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거의 못느낄 정도라고 이야기했었습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했는데 왕가에서 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큰 약점거리였고 ...
왕자님과 공주님은 행복하게 오래도록 살았습니다 : 스웨덴의 구스타브 6세 아돌프와 레이디 루이즈 마운트배튼의 결혼
왕자님과 공주님은 행복하게 오래도록 살았습니다 : 스웨덴의 구스타브 6세 아돌프와 레이디 루이즈 마운트배튼의 결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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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의 왕태자 구스타브 아돌프는 레이디 루이즈 마운트배튼과 1923년 결혼하기로 합니다. 하지만 둘이 결혼하기로 결정했다고 당장 결혼할수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수많은 문제가 놓여있었습니다. 둘의 결혼에 가장 큰 문제는 감정적으로는 구스타브 아돌프의 아이들이었을 것입니다만, 실제로 결혼을 방해하는 가장 큰 이유는 정치적 문제였습니다.
스웨덴 왕가는 그때까지도 "귀천상혼제도"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귀천상혼제도는 자신과 동등한 신분의 사람과 결혼하지 않는다면 자신과 그 후손들의 상속권리를 박탈당하는 제도였습니다. 이것은 주로 동등상속을 인정하던 독일-유럽대륙쪽 통치가문에서 내려오던 방식이었습니다. 동등상속은 자녀들 모두가 아버지의 지위와 재산에 대한 상속권리를 갖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기에 독일내 수많은 통치 가문들이 영지를 나눠야했고 이때문에 형제들간에 전쟁까지도 하기도...
왜 저에게 청혼을..... : 레이디 루이즈 마운트배튼과 스웨덴의 구스타브 6세 아돌프
왜 저에게 청혼을..... : 레이디 루이즈 마운트배튼과 스웨덴의 구스타브 6세 아돌프
레이디 루이즈 마운트배튼이라는 이름으로 더 잘알려진 바텐베르크의 루이즈는 바텐베르크의 루드비히와 그의 아내인 헤센의 빅토리아의 둘째딸로 태어났습니다. 영국 해군인 아버지와 빅토리아 여왕의 외손녀인 어머니를 둔 루이즈 뿐만 아니라 루이즈의 형제 자매들 모두는 영국 사람으로 성장했습니다. 훗날 루이즈의 언니인 앨리스의 동서가 된 마리 보나파르트는 앨리스를 처음 만났을때 "아름다운 영국 여성"이라고 표현했었습니다. 그렇기에 부모가 모두 독일 출신이었지만 루이즈 스스로도 영국인으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루이즈는 오래도록 미혼으로 지냈고 결국 30대가 지나도록 결혼하지 않고 지냈기에 당대 기준으로는 노처녀였을뿐만 아니라 가족은 물론 루이즈 스스로도 결혼에 대한 생각은 그다지 하지 않게 됩니다. 사실 루이즈에게는 결혼할 기회가 있었긴 했지만 복잡한 상황으로 인해서 결혼 시회를 놓쳤었습니다. 가장 먼저 혼담이 나온것은 포르투갈 왕가였습니다. 처음에 포르투갈의 마누엘 2세가 루이즈와 결...
왕자님과 공주님은 첫눈에 반해버렸어요 : 코넛의 마거릿과 스웨덴의 구스타브6세 아돌프
왕자님과 공주님은 첫눈에 반해버렸어요 : 코넛의 마거릿과 스웨덴의 구스타브6세 아돌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