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훈
역사연구자
역사덕후
춤추는 여자는 위험하다 - '자유부인' 논란
리얼리티의 문제와 민중 결집의 가능성 - 임철우, <직선과 독가스>
영상 속에 용해된 감각의 서술 - 소설 「무진기행」과 영화 《안개》
시장과 법(2) - 조선인 공동체의 모색과 농민 연대의 이상
AI가 창작한 작품도 인간적인 문학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 ‘청교도’와 ‘포르노 그라피티’
전도된 인간학, ‘노동하는 동물’과 ‘소비하는 동물’ - 그람시의 '포드주의' 비판
전도된 인간학, ‘노동하는 동물’과 ‘소비하는 동물’ - 그람시의 '포드주의' 비판
전도된 인간학, ‘노동하는 동물’과 ‘소비하는 동물’ - 그람시의 '포드주의' 비판
두고두고 회자 · 인용되는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1936)의 한 장면을 떠올리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이 유용할 것 같다. 대공황의 충격 속에서 만들어진 이 영화의 주인공 찰리는 ‘컨베어 벨트’에서 일하는 노동자로 등장한다.(알다시피 컨베이어 벨트 시스템의 창시자는 포드였다.) 그는 하루 종일 나사를 조이는 일을 하는데, 직업병 때문인지 쉬는 시간에도 그는 조일 수 있는 모든 것을 조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런 행위를 계속하는 것이 그를 그 곳에서 가장 ‘인간적으로(!)’ 보이게 한다. 그것은 그만이 그러한 공장 시스템에 제대로 적응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증좌이기 때문이며, 이 ‘기계-인간’의 행위가 역설적인 형태로 ‘기계/인간’을 상상하게 하기 때문이다. 공장 안에서는 찰리와 사장만이 보통의 체격을 유지하고 있고, 나머지는 그야말로 ‘동물적’이다. 이런 ‘동물...
이런 사람이 국방부 장관 후보인 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