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재민이 되다. 2

진영
진영 · 해발 700미터에 삽니다
2023/07/19
밤새 생각했다. 이렇게는 못 지내겠다고.
몰래 집으로 올라 가 살짝 숨어서 지내야지.
가만히 집안에서만 머물면 누가 알기나 하겠어. 날이 밝으면 아주버님께 좀 데려달라 해야겠다.

아주버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기어이 집으로 향했다. 근데 이게 웬일인가. 산 입구에 마치 사건 현장 접근금지 처럼  노란 테이프를 칭칭 가로질러 출입을 못하게 막아논 게 아닌가.
그렇다고 내가 안 갈 사람인가. 테이프 틈새로 빠져나가 산길을 걸어올라갔다. 비가 조금씩 내린다.
천천히 올라 갔지만 점점 땀이 나고 숨이 찼다. 걸으면서 계속 머리를 굴렸다. 혹시 공무원을 만나면 뭐라고 말을 할까.
근데 정말 산 중간에서 공무원 두 사람과 딱 마주쳤다. 뭐야. 이렇게 이른 시간에 벌써 와서 순찰을 돌다니... 그리고 태연하게 준비한 거짓말을 뱉었다.
"워낙 급하게 나오다 보니 글쎄 지갑을 안 가져왔지 뭐예요. 돈도 카드도 없어 잠깐 가지러 가려구요."
"그럼 곧 차가 한 대 올라올테니 내려 갈 땐 그 차로 가셔요. 말해 놓을테니..."

옷 몇가지와 영양제를 챙기고 현금이 조금 든 지갑은 가져갈까 망설이다 침대밑에 숨겼다. 더 챙길 건 생각이 나질 않았다.
차가 와서 빨리 타라고 재촉을 한다. 에고. 집에 숨어서 지내려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 버렸네.
내려올 때 보니 오솔길에 흙이 무너지고 바위가 굴러내려 와 있었다. 산 입구 집 마당엔 흙이 쓸려내려와 한가득이다. 그래서 이 동네주민 모두를 피신시켰구나 짐작이 되었다.

공무원은 예약되어 있는 식당으로 안내를 해 삼시세끼를 그 식당에서 먹으라고 한다. 그리고 데려다 준 마을회관 경로당엔 널찍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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