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에모] 향수와 거름종이

조각집
조각집 · 밝고 긍정적이지 않아도 괜찮은 삶.
2023/03/06
1. 우리는 살면서 사람이 걸러지는 순간이 한 번쯤은 꼭 있다고 말하곤 한다. 대표적인 게 결혼식이 될 수 있으려나? 나의, 혹은 상대의 결혼식에 단지 참석했다는 것보다는 축의금 액수에 따라  마치 앞으로 남은 내 인생에서 계속 만나야 할 사람인지 아닌지를 걸렀다고 생각하는 이가 많은 것 같다. 적어도 내 주변 사람들만큼은 말이다.

  나는 아직 결혼하지 않았지만, 주변에 수많은 지인의 결혼식에 꾸역꾸역 참석해 가면서 "최선을 다해 축하" 해 주었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나는 그들이 정해 둔 거름종이에 걸맞은 금액을 내지 않았다는 이유로 원치 않는 '인간관계 숙청'을 당하곤 했다. 그 숙청방식은 꽤 적나라 한 편이었다. "우리 관계가 고작 이 정도 금액밖에 되지 않는지 몰랐다"라는 메시지는 나를 적지 않게 당황 시켰다. 내가 낸 축의금은 합리적이었고, 잘못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데 제법 시간이 걸린 편이었다. 

 서른 그즈음의 대한민국 여성이라는 위치에서 아무도 정하거나 약속하지 않았지만, 결혼을 이미 해야 했거나 결혼을 앞둔 때라고 상당히 심각하게 고민하곤 했고, 안타깝게도 나 또한 그런 고민을 하는 여성 중 한 명이었다. 그래서 사실, 지인의 결혼식에 꾸역꾸역 참석했던 이유도 언젠가 있을 내 결혼식에 하객석을 가득 채워주길 바라는 마음을 마치 "최선을 다해 축하" 했다고 생각했던 건 아닐까 싶다. 그렇다. 내가 먼저 그들의 결혼식에 '축하'라는 글이 쓰인 '돈'으로 점수를 매겨왔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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