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보다 감정이 더 중요한 시대: 더 글로리

Guybrush
Guybrush 인증된 계정 · 웹소설 씁니다.
2023/03/13
내가 학교를 다니던 90년대에는 이런 말이 흔했다.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

레트로, 낭만으로 추억되는 90년대는 돌이켜보면 그만큼 야만과 폭력이 함께하던 시대였다. 힘들게 민주화를 이뤘지만 여전히 군사정권의 잔재가 남아 자유와 폭력이 뒤섞인 혼돈의 시대였다.

학교에선 선생님들이 자기 기분에 따라 학생을 때렸다. 대학에는 운동권이 여전히 주류였고, 시위 현장에는 언제나 전경들이 나타나 대치했다. 96년 연세대 사태 때는 신촌 로터리에서 화염병이 날아다녔고, 5만 명이 넘는 전경이 연세대를 포위해 한총련 소속 대학생을 진압했다.

노태우 정부는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했고, 94년에는 지존파가 검거됐다. 그들은 담력을 키운다고 인육까지 먹었다고 해서 충격을 주었다. 그냥 길을 가는데 봉고차에 집어넣어 끌고 갔다는 인신매매도 횡행했다. 가정폭력은 공권력이 집안일에 개입해선 안 된다며 심각하게 여기지도 않았다.

2023년인 지금, 확실히 일상에서의 폭력은 예전보다 훨씬 줄어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만큼 많은 다툼이 법정으로 옮겨갔다. 소송이 빈번해지고, 심지어 정치권조차 무슨 일이 생기면 비판과 토론을 벌이는 게 아니라 고소장부터 접수한다.

그래서 이제 우리는 주먹은 멀어지고, 법은 가까워졌을까?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더니 소송이 흔해지고, 싸움이 주먹질에서 법정으로 옮겨갔다고 해서 정의가 승리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돈 있고, 권력 있는 사람들은 법을 알고 피해가거나, 이를 적극적으로 이용하기도 한다.

법은 자신을 변호할 만큼 똑똑하지 않거나, 똑똑한 사람을 살 만큼 부자가 아니라면 또 다른 주먹이 되기도 한다. 법정에서 유죄를 입증하지 못하면, 진실과 상관없이 가해자는 더 이상 가해자가 아니다. 오히려 법과 여론을 이용해 가해자들이 피해자를 압박하는 것이 현실이다.

학폭과 뜨거운 복수를 다룬 화제의 드라마 <더 글로리>는 이런 사회적 변화와 시대 분위기를 반영한다. 수십 년 전 학폭이란 말이 없던 시절의 학폭은 대부분 싸움 잘하고, 싸움 좋아하는 ...
Guybrush
Guybrush 님이 만드는
차별화된 콘텐츠, 지금 바로 만나보세요.
이미 회원이신가요? 로그인
웹소설 <1988 레트로 게임 재벌>, <필력에 눈 뜬 회사원>, <갓겜의 제국 1998>, <NBA 만렙 가드>, <드라켄> | 에세이 <대기업 때려치우고 웹소설>
42
팔로워 1.1K
팔로잉 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