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에 바랍니다.

자기 정치 견해를 밝히는 일은 참 두렵습니다. 딴에는 말 잘했답시고 생각했던 경우도 돌이켜보면 헛소리가 더 많았거든요. 무지가 드러나는 순간의 창피함과 무안함. 거기에 걷어차일 이불에게 드는 미안함까지 미리 감내할 각오로 정치 얘기 좀 해보겠습니다. 이번 대선을 보며 가장 눈에 띈 현상은 ‘갈림길 앞에서 헤매는 20대 남성’과 ‘길이 아예 사라져버린 20대 여성’입니다. 성별로 인한 표심이 이렇게 차이난 적이 있나 싶을 정도네요. 다만 공통분모가 있긴 합니다. 여당이 20대의 신뢰를 몽땅 잃었다는 점이죠. 이유야 여럿 있겠지만 저는 공정이란 단어를 먼저 해부하며 시작해보려 합니다. 저는 민주당 정부에서 공정 이슈가 계속 언급된다는 즉. 마땅히 해야 했을 양극화 해소에 실패했다는 신호라 생각합니다. 
 
20대 초중반은 일상처럼 명문대와 비명문대의 신분 격차를 경험합니다. 명문대 프리미엄은 단지 취업시장에서만 존재하지 않아요. 대학 좋다는 이유만으로 주위 사람들의 시선과 대우가 달라집니다. 명문대는 아무 말을 해도 신뢰를 얻고 능력을 과대평가 받는 반면. 비명문대는 지잡대란 멸칭을 떠안고 온갖 편견과 냉소의 대상이 됩니다. 좀 더 나이 먹고 취업시장에 뛰어들면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어마어마한 격차를 발견합니다. 임금은 물론이고 복지, 경력, 고용, 비전을 몽땅 승자가 독식해버리죠. 이 양극단을 좁히지 못하니 엉뚱한 곳으로 논란이 옮겨갑니다. 공정담론이 전면에 등장한 겁니다. 여기서의 공정은 명문대와 대기업의 좁은 문을 두고 다투는 경쟁을 긍정하면서 출발합니다. 경쟁은 필연이니 차라리 모두들에게 똑같은 룰을 적용시키자는 게 공정론의 핵심입니다. 여기서 사용된 공정이란 단어에 따르면 균형을 맞추고자 하는 모든 시도가 불공정행위가 됩니다. 농어촌전형, 여성할당제, 장애인채용, 국가장학금, 지역전형, 비정규직 정규직화, 이러한 제도들이 모두 반칙과 특혜입니다.
 
왜 이런 지경이 되었을까요. 몇몇 사람들 말대로 20대들이 무지해서? 아닙니다. 20대들은 빈부격차가 계급 되물림으로 이어지는 사실을 너무 잘 압니다. 경쟁하면서 뼈에 사무치게 경험하니까요. 10분위 9분위가 스카이 절반을 싹쓸이 한다는 통계. 대기업 7할이 명문대 출신이라는 자료. 공정하다는 착각, 세습 중산층 사회 같은 책들. 다 봤고 다 압니다. 알면서 왜 이러냐구요? 대안을 못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청년의 삶에 여러 선택지가 존재했더라면, 경쟁에서 졌거나 거부한 이들도 제대로 된 삶을 누릴 수 있었다면, 이런 협소한 공정담론은 주류가 될 수 없었을 겁니다. 지금의 공정담론이 현 정부에 던지는 메시지는 명확합니다. 20대부터 승자와 패자로 갈리는 사회 체질을 못 고칠 거면 차라리 경쟁의 룰이라도 내버려 둬라. 즉 우리는 해결 불가능한 불공평은 받아들일 테니 당신들은 공연히 끼어서 상황 악화시키지 마시라, 이거죠.
 
문재인 정권과 민주당은 집권기 동안 대한민국의 국격을 높였습니다. 이젠 대한민국이 선진국이란 말에 그 누구도 의문부호를 붙이지 않습니다. 자랑스러운 업적입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체질을 바꾸진 못했습니다. 정확히는 바꿀 힘이 있었는데도 바꾸지 않았습니다. 지방, 행정, 입법 권력을 그저 쥐고만 있는 사이. 불평등의 골은 더욱 깊게 패였습니다. 도덕우위를 앞세워 기득권을 타파하겠다고 나섰지만, 결국 ‘저 사람들보단 덜 하다’라며 차악론 뒤에 숨기 바빴습니다. 20대들이 문재인 정부에서 돌아선 이유는 그 불평등을 최전방에서 체감했고, 그 체감을 인터넷으로 빠르게 공유하며 구체화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번 대선의 핵심 키워드를 불평등으로 봅니다. 야당은 현 정권이 방기한 불평등의 실체를 증명하는데 사력을 다 할 겁니다. 나아가 정권이 펼친 평등 정책에 내로남불 프레임을 씌워 공격하겠지요. 여성친화 정책 펼친다더니 지방 정부 수장들이 연이어 성비위에 휘말렸다. 부동산 안정화 시키겠다더니 LH직원들이 앞서서 투기판을 벌이더라. 이런 방식으로요. 
 
몇몇 분들은 야당이 반 문재인 빼고 아무런 철학도 없다고들 하셨는데 전 동의하지 않습니다. 야당이 던지는 메세지는 너무나 선명합니다. 우린 저쪽처럼 불평등 해소하겠다고 가식 떨지 않는다. 차라리 불평등을 받아들이고 무한경쟁 체제로 다시 돌려놓겠다. 당연히 특권층이 더 이익 보겠지만 하층도 만족스러울 만큼의 파이를 제공하겠다. 현재 여당은 이에 맞설 명분이 딱히 보이질 않습니다. 위선자 기득권 프레임이 너무 강력하고 차악론에 기대자니 지난 지선과 대선 정국처럼 지지층이 압도적이지 않죠. 여러모로 예상이 힘든 대선입니다. 
 
주제넘게 세대와 대선에 대해 짧게 떠들어 보았습니다. 이제 제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늘어놓아보려 합니다. 거창하게 제언이라기엔 제 자신이 지식도 짧고 논증도 부족하므로 그저 넋두리 정도로 들어주세요. 전 이번 대선정국을 통해 정치인들 모두가 청년층이 맞이하는 불평등을 돌아봤으면 합니다. 문재인 정권에서 20대 후반을 맞이하고 30대 초반에 들어선 청년이 느낀 여러 불평등 중. 심각한 것 단 하나만 꼽아보자면 단연 일자리입니다. 대한민국은 IMF 이후 청년들에게 대기업, 공기업, 공무원이 대표하는 15%의 직업 세계를 마치 표준처럼 강요했어요. 공정담론이 과도하게 불탄 이유도 강요당한 표준에 속하지 못한 박탈감에 기인했다 봅니다.
 
 모든 청년이 대다수가 들어가지 못할 직업세계를 바라보게 해선 안 됩니다. 단지 그 직업세계에 속하지 못했다하여 무능력자로 낙인찍히는 사회를 바꿔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표준을 끌어 올려야 해요. 하다못해 먼저 임금이라도 현실화해야 합니다. 현재 대기업 임금 대비 평균 임금값은 고작 55%밖에 되지 않습니다. 대기업 못 들어가면 최저임금의 굴레에서 헤어 나올 수가 없습니다. 이런 임금격차부터 좁혀야 합니다. 안정적으로 경력 쌓을 수 있는 일자리 창출은 그 다음 문제입니다. 제가 떠드는 말 듣기보단 직접 최하층 노동을 하는 청년들을 많이 만나보시길 권합니다. 예컨대 중소 제조업 남성, 서비스직 여성들 말이죠. 이들은 온갖 냉소에 존엄을 짓밟히고, 때로는 각자의 이유로 목숨까지 위협받으며, 미래가 불투명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는 이들이 짊어진 필수노동에 하루하루 빚지고 살아갑니다. 모두가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만큼 응당한 대우를 해주어야 합니다. 

이야기 한 김에 불평등과는 다소 다른 주제입니다만. 제 개인이 정치에 바라는 점 하나만 말하겠습니다. 여야 할 것 없이 솔선수범하여 갈등에 맞서는 모습을 보여주세요. 그 어느 때보다 세대와 성별 갈등이 심각한 시기입니다. 틀딱, 똥86, 메갈, 한남 따위 비하 언어가 판을 치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을 정치 유불리로 계산해서 방기하거나 부추기지 않았으면 합니다. 저는 최근 두 명의 여야 인물에서 최고의 모범사례와 최악의 모범사례를 봅니다. 민주당 하헌기 청년대변인은 최근 하루하루 식사자리에서 평범한 이들과 만납니다. 식사 중 이야기를 나누며 느낀 점을 SNS로 공유하고 있습니다. 이를 쭉 지켜보다 보면 꼭 극단주의까지 가지 않아도 다른 세대, 성별끼리 서로 이해할 수 있는 합의점이 여럿 보입니다. 반면 최근 국민의힘 노재승 공동 선대위원장의 SNS는 온갖 혐오발언으로 범벅되어 있습니다. 더욱이 그 혐오의 대상 대다수가 약자입니다. 가난한 이, 검정고시 수료자, 518 민주화 유공자, 재난지원금 수령인, 실업급여 받는 비정규직 노동자들. 이 모든 사람들이 노재승 씨에겐 그저 조소의 대상일 뿐입니다. 저는 정치철학을 배운 바는 없으나, 다수결 원칙의 정치가 추구할 방향은 최대다수가 합의 가능한 길을 찾는 일이라 믿습니다. 극단주의에 찌든 목소리에 힘 실어주지 않는 정치를 바라며 이만 글을 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