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정실

진영
진영 · 해발 700미터에 삽니다
2024/10/27
성당에 갈 시간이 되어 장롱 문을열었다. 뭘 입고 가지. 아침엔 제법 쌀쌀해도 낮엔 따뜻할거야. 어제도 그랬잖아.
내 옷 중에 극히 드문 색인 인디언 핑크 계열의 얇은 코트를 꺼냈다. 오늘은 너로 정했어.
입으려고 소매에 팔을 넣는 순간 손가락에 뭐가 턱 걸렸다. 소매와 몸통을 연결하는 부분의 안감에 실밥이 터져  손이 걸린 것이다. 그냥 입고 갔다와서 수선해? 지금 잠깐 손을 볼까?
시계를 보니 5분 정도 여유가 있었다. 5분이면 충분하지.
반짓고리를 열고 바늘을 살펴보니 실이 꿰어져 있는 건 검정색 밖에 없었다. 다시 옅은 색 실을 꿰기엔 왠지쫒기는 기분이라 에라 모르겠다. 그냥 검정색 실로 몇 땀 깁기로 했다.
그러면서 어김없이 선생님 얼굴이 떠올랐다.

"흰 천을 검정실로 바느질하고 검은 천을 흰색 실로 꿰매는 건 미친년이다."
중학교 때 예법 선생님은 차분하지만단호하게 말씀하셨다. 몇 번이나 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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