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1/04
아바타 2에 대한 스포일러가 없을 수는 없겠지만, 대단한 스포일러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큰 반전이 있다거나 한 영화는 아니라서요.
저는 아바타1을 좋게 기억하고 있지 않았고, 이번 아바타에 대한 평도 엇갈려서 큰 기대를 하고 보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꽤 좋은 느낌으로 영화를 볼 수 있었습니다.
아바타가 달라진 것일까요, 아니면 제가 달라졌을까요?
제 생각엔 제가 달라진 부분이 큰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한 번 아바타 1보다 아바타 2에 대해 긍정적이 된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 보는 것도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 생각엔 제가 달라진 부분이 큰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한 번 아바타 1보다 아바타 2에 대해 긍정적이 된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 보는 것도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선, 한 가지 원인으로 뽑을 수 있는 것은 제가 그 사이에 '총균쇠'의 저자인 재러드 다이아몬드의 '어제까지의 세계'를 읽었다는 점을 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나이를 먹으면서 책 한 권에 인생관이 바뀌고 그러진 않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인류의 원시 사회가 어땠을까에 대한 나름대로의 감이 생긴 것 같습니다. 그 감이 얼마나 정확한지는 알 수 없지만, 제 나름대로 조금 더 구체적이고 일관된 방식의 상상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죠.
원시나 야만에는 두 가지 이미지가 함께 있습니다.
하나는 공포의 이미지입니다. 온몸에 문신을 한 아마존의 부족들, 포로의 가슴을 갈라 신에게 인신공양을 바치는 이들처럼 이방인에게 적대적이고 이해하기 어려운 주술적 사고방식과 잔인함과 공격성을 가진 이들의 이미지입니다.
다른 하나는 평화적이고 이방인에게 관대하며 현대인이 잊고 있는 순수함과 지혜를 갖고 있는 '고상한 야만인'의 이미지입니다. 부를 쌓는 일에 관심이 없고, 가족과 부족에 대한 일체감을 느끼고, 주변의 다른 사물과 생명체들과 교감하고, 환경을 해치지 않으며 지속가능한 방식의 삶을 영위하는.
그런데 아마도 이런 것들은 우리가 잘 모르는 대상에 대해 갖게 되는 편리한 고정관념들이기 쉽습니다.
그들은 이해할 수 없는 잔인함으로 가득한 존재도 아니고, 평화를 사랑하는 현자들도 아닐 것입니다.
그들은 무척 다양한 문화를 갖고 있어 한 가지로 ...
궁금하고 의미있다고 생각하는 주제에 대해 배우고자 노력하고, 깨달아지는 것이 있으면 공유하고 공감을 구하는 평범한 사람입니다.
홈은 님, 신이 내리신 말투신데요 ^^
평화는 인류는 환상일지도
메타버스의 시대는 도래한당..
게임이 세상을 지배할꺼양…
디파이와 고전적인 파이낸셜의 경계사 모호해지면서 인간의 정체성이 캐릭터의 정체성과 섞이는 세상이 올꺼양…
휴먼 게놈 프로젝트 이후에 다들 1998년의 가타카를 떠올리며 ’오앙~역시 예술이 점쟁이!‘ 했듯이! 2050년의 사람들은 아바타를 보면서 ‘오앙~ 역시 예술이 작두탔어!’할꺼양…
ㅋㅋㅋㅋ 그럴지도몰라요
김도훈 님, 자세한 댓글 감사드립니다.
같은 영화를 봐도 영화평론가들의 별점이 하나에서 다섯까지 달라지는 것처럼 이런 논의에 정답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김도훈 님께서 계몽적이라고 보신 걸 제가 그렇게 보지 않은 것에는 경험도 다르고 같은 걸 봐도 연상하는 것들이 다를테니 당연한 일일 것 같습니다.
그런 전제 하에 조금 덧붙이자면, 툴쿤 사냥은 제가 아는 고래사냥 과정과 상당히 비슷하다고 느껴졌습니다. 고래 사냥 과정을 자세히 아는 건 아닌데 제가 여기저기 본 얘기들로 갖고 있던 고래사냥의 이미지와 잘 맞았습니다. 고래들이 가끔 작살잡이들의 배를 뒤엎긴 했고 툴쿤처럼 평화주의를 스스로 결심했거나 인간과 언어적 소통을 할 수는 없다는 등의 차이가 있죠. 그런 차이가 크다고 느끼셨기 때문에 김도훈 님은 작가가 관객몰이를 하신다고 느끼신 것 같습니다. 저는 그런 차이들이 없었더라도 툴쿤 사냥 장면의 묘사들이 좁게는 포경, 더 넓게는 인류가 자연을 대하는 모습을 상징적으로 잘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했고 큰 위화감이 없었습니다. 약효가 있다는 뿔만 베어낸 채 버려진 코뿔소들의 시체를 찍은 내셔널 지오그래픽 사진들에서 받은 느낌들과도 비슷했구요. (코뿔소 사진 이야기는 본문에도 추가를 했습니다.)
아바타2에도 지구가 살 수 없는 곳이 되었다는 언급이 나오고, 좋은 사람들을 죽게 한 배신자에게 복수를 한다거나, 한 마리에 팔천만달러 가치가 있는 젊음을 가져다주는 향유가 나온다거나, 인간들의 동기는 상당히 설득력 있게 표현되었다고 봅니다. 제가 좋게 본 건 인간들이 불필요하게 잔인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은 것 같다는 것입니다. 저는 영화가 악역들에게 공정했다고 느끼는데, 이 역시 주관적인 판단이겠죠.
그런데 아바타2는 기본적으로 주제를 전달하고 관객의 의식을 바꾸려는 영화라기보다, 보고 즐기는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감독의 일차적 의도도 거기 있다고 생각해요. 주제란 인물의 성격이나 세계관의 설정들과 마찬가지로 이야기를 더 현실감있게 몰입할 수 있는 이야기로 느껴지게 하는 도구의 역할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그 도구의 역할을 얼마나 잘했는지는 관객들의 주관적 감상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에 따라 결정될 것 같습니다.
좋은 감상평 잘 읽었습니다. 추가로 덧 붙이고 싶은 개인적인 생각이 있어 적어봅니다.
일리아스와 같은 두 세력의 충돌로 이해하신다면 객관적으로 영화를 보신 것 이라 생각합니다. 문제는 영화를 보는 내내 감독이 '나비족'을 평화의 대변인으로 '인간'을 악의 편으로 생각하기 쉽도록 여러가지 장치를 해두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 차라리 아바타 1이 나은 편이라 생각합니다. 아바타 1에는 인간이 판도라에 진출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나오거든요. 아바타 1에서의 인간의 폭력은 나름의 이유가 있게 그려집니다. 판도라의 '언옵티늄'이라는 물질을 얻어야 인간이라는 종이 생존할 수 있기 때문이었죠.
2편의 인간들은 '탐욕과 이기심'이라는 점만 강조됩니다. 1편을 잘 기억하시는 분들이라면
'아 저들도 나름의 이유가 있구나'
라 생각할 것 입니다. 1편의 내용을 까먹었다면 인간의 이기심에 분노할지도 모르죠.
고래 사냥은 실제로 인간의 역사에 있던 부분입니다. 전 이게 '종과 종의 충돌'이라 생각합니다. 그 시절의 인간은 생태계라는 개념을 완벽히 이해해 균형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지도 못했죠. 또한 모비딕에서도 나오듯이 고래들도 저항을 했습니다. 얌전히 작살에 꽃혀 죽기만을 기다리지는 않았죠. 톨쿤과는 다른 경우입니다.
감독은 '오랜 내전 끝에 얻은 깨달음으로 스스로 폭력성을 지운 종족'을 그립니다. 죽어가면서도 공격성을 택하지 않는 숭고한 툴쿤과 웃으며 학살을 벌이는 인간을 대비시킵니다. 여기서 만약 톨쿤이 저항했다면 관객들을 그저 그런 종 간의 충돌로 받아들였을 것 입니다. 문제는 그들이 전혀 저항하지 않았다는 것 입니다. 결말 부분의 파야칸의 반격을 본다면 사냥꾼의 배정도는 이길 수 있을텐데요. 이제 그들은 신성화되게 됩니다.
감독은 이리 말하고 싶었던 것 입니다.
"야 저 인간들 봐바라. 지들보다 똑똑해서 안 공격하는 평화적인 존재를 사냥하면서 저렇게 좋아하고있네? 와....거기다가 사냥의 목적도 고기, 가죽 이런게 아니라 지들 영생을 위한 뇌수네. 봤지? 인간들은 더럽게 이기적이고 폭력적이라니까? "
이제 고래 사냥의 이야기를 입힙니다. 사실은 이 장면이 고래 사냥을 비판하려고 만든거라고. 그럼 이제 현실의 고래는 숭고한 자연을 대표하고 그것을 사냥하는 포경선의 인간들은 이기적이고 잔인한 이들이라는 심상이 덮혀지죠.
전 이렇게 은유를 활용해서 알게모르게 생각에 영향을 미치려는 행위들을 매우 싫어합니다. 그래서 본문에서 '너무 계몽적 메시지가 강하다'라고 표현했죠.
인간의 폭력성과 이기심은 극단화되었고, 툴쿤의 평화와 공존은 지나치게 이상화되었습니다. 뭐, 이 부분은 영화 자체가 자연을 이상화시키니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있습니다. 단순히 제가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 일지도 모르죠.
이런 툴쿤과 교감하고, 그들의 죽음에 분노하는 나비족은 자칫 '평화와 공존을 대표'한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적어도 제가 느끼기에는 감독은 그걸 의도했습니다. 거기다가 가족애, 자연의 위대함, 인간의 이기심과 폭력성, 물의 아름다움 등 감독은 너무 많은 것을 섞으려고 했습니다. 그렇기에 러닝타임이 3시간이 넘지만 무슨 말을 하고픈 것인지 복잡했죠.
각종 상징과 은유들(일식이나 첫재아들 네테이얌의 호칭변화가 대장->아버지로 변한다는 사실 등)을 통해서 감독이 말하고픈 것을 엮을 수 있습니다. 가령
네티이얌은 설리가 아버지로써 가진 과도하고 잘못된 책임감을 대변하는 인물로 그가 죽고나서야 설리는 성장하죠.
일식은 태양이 눈을 가리는 행위로 신의 분노, 신의 눈이 가려짐 등을 상징합니다. 이는 나비족의 폭력이 정당화된다는 상징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와 같이 엮어서 생각할 수 있지만 3시간이라는 러닝타임 내내 이어지는 그래픽을 감상하면서 이걸 동시에 하기란 쉽지않죠. 그걸 잡지 못한 것은 감독의 역량이 부족했다고 생각합니다.
***
결론은 좋은 감상의 공유에 감사드린다는 말씀을 하고 싶습니다 제 나름의 논리대로 쌓은 감상평이지만 그 논리가 닿지 못할 수도 있죠. 서툰댄서님의 삶에서 겪은 경험들과 논리들로 감상평을 쌓아올리셨을 테니까요. 글에서 말씀하신 인류의 과거 부족사회와 비교하신 감상평은 새로웠습니다. 전 그것과 연관지어 생각하지 못했거든요. 또한 공감할 수 있는 부분들도 많았습니다.
홈은 님, 신이 내리신 말투신데요 ^^
평화는 인류는 환상일지도
메타버스의 시대는 도래한당..
게임이 세상을 지배할꺼양…
디파이와 고전적인 파이낸셜의 경계사 모호해지면서 인간의 정체성이 캐릭터의 정체성과 섞이는 세상이 올꺼양…
휴먼 게놈 프로젝트 이후에 다들 1998년의 가타카를 떠올리며 ’오앙~역시 예술이 점쟁이!‘ 했듯이! 2050년의 사람들은 아바타를 보면서 ‘오앙~ 역시 예술이 작두탔어!’할꺼양…
ㅋㅋㅋㅋ 그럴지도몰라요
김도훈 님, 자세한 댓글 감사드립니다.
같은 영화를 봐도 영화평론가들의 별점이 하나에서 다섯까지 달라지는 것처럼 이런 논의에 정답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김도훈 님께서 계몽적이라고 보신 걸 제가 그렇게 보지 않은 것에는 경험도 다르고 같은 걸 봐도 연상하는 것들이 다를테니 당연한 일일 것 같습니다.
그런 전제 하에 조금 덧붙이자면, 툴쿤 사냥은 제가 아는 고래사냥 과정과 상당히 비슷하다고 느껴졌습니다. 고래 사냥 과정을 자세히 아는 건 아닌데 제가 여기저기 본 얘기들로 갖고 있던 고래사냥의 이미지와 잘 맞았습니다. 고래들이 가끔 작살잡이들의 배를 뒤엎긴 했고 툴쿤처럼 평화주의를 스스로 결심했거나 인간과 언어적 소통을 할 수는 없다는 등의 차이가 있죠. 그런 차이가 크다고 느끼셨기 때문에 김도훈 님은 작가가 관객몰이를 하신다고 느끼신 것 같습니다. 저는 그런 차이들이 없었더라도 툴쿤 사냥 장면의 묘사들이 좁게는 포경, 더 넓게는 인류가 자연을 대하는 모습을 상징적으로 잘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했고 큰 위화감이 없었습니다. 약효가 있다는 뿔만 베어낸 채 버려진 코뿔소들의 시체를 찍은 내셔널 지오그래픽 사진들에서 받은 느낌들과도 비슷했구요. (코뿔소 사진 이야기는 본문에도 추가를 했습니다.)
아바타2에도 지구가 살 수 없는 곳이 되었다는 언급이 나오고, 좋은 사람들을 죽게 한 배신자에게 복수를 한다거나, 한 마리에 팔천만달러 가치가 있는 젊음을 가져다주는 향유가 나온다거나, 인간들의 동기는 상당히 설득력 있게 표현되었다고 봅니다. 제가 좋게 본 건 인간들이 불필요하게 잔인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은 것 같다는 것입니다. 저는 영화가 악역들에게 공정했다고 느끼는데, 이 역시 주관적인 판단이겠죠.
그런데 아바타2는 기본적으로 주제를 전달하고 관객의 의식을 바꾸려는 영화라기보다, 보고 즐기는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감독의 일차적 의도도 거기 있다고 생각해요. 주제란 인물의 성격이나 세계관의 설정들과 마찬가지로 이야기를 더 현실감있게 몰입할 수 있는 이야기로 느껴지게 하는 도구의 역할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그 도구의 역할을 얼마나 잘했는지는 관객들의 주관적 감상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에 따라 결정될 것 같습니다.
좋은 감상평 잘 읽었습니다. 추가로 덧 붙이고 싶은 개인적인 생각이 있어 적어봅니다.
일리아스와 같은 두 세력의 충돌로 이해하신다면 객관적으로 영화를 보신 것 이라 생각합니다. 문제는 영화를 보는 내내 감독이 '나비족'을 평화의 대변인으로 '인간'을 악의 편으로 생각하기 쉽도록 여러가지 장치를 해두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 차라리 아바타 1이 나은 편이라 생각합니다. 아바타 1에는 인간이 판도라에 진출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나오거든요. 아바타 1에서의 인간의 폭력은 나름의 이유가 있게 그려집니다. 판도라의 '언옵티늄'이라는 물질을 얻어야 인간이라는 종이 생존할 수 있기 때문이었죠.
2편의 인간들은 '탐욕과 이기심'이라는 점만 강조됩니다. 1편을 잘 기억하시는 분들이라면
'아 저들도 나름의 이유가 있구나'
라 생각할 것 입니다. 1편의 내용을 까먹었다면 인간의 이기심에 분노할지도 모르죠.
고래 사냥은 실제로 인간의 역사에 있던 부분입니다. 전 이게 '종과 종의 충돌'이라 생각합니다. 그 시절의 인간은 생태계라는 개념을 완벽히 이해해 균형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지도 못했죠. 또한 모비딕에서도 나오듯이 고래들도 저항을 했습니다. 얌전히 작살에 꽃혀 죽기만을 기다리지는 않았죠. 톨쿤과는 다른 경우입니다.
감독은 '오랜 내전 끝에 얻은 깨달음으로 스스로 폭력성을 지운 종족'을 그립니다. 죽어가면서도 공격성을 택하지 않는 숭고한 툴쿤과 웃으며 학살을 벌이는 인간을 대비시킵니다. 여기서 만약 톨쿤이 저항했다면 관객들을 그저 그런 종 간의 충돌로 받아들였을 것 입니다. 문제는 그들이 전혀 저항하지 않았다는 것 입니다. 결말 부분의 파야칸의 반격을 본다면 사냥꾼의 배정도는 이길 수 있을텐데요. 이제 그들은 신성화되게 됩니다.
감독은 이리 말하고 싶었던 것 입니다.
"야 저 인간들 봐바라. 지들보다 똑똑해서 안 공격하는 평화적인 존재를 사냥하면서 저렇게 좋아하고있네? 와....거기다가 사냥의 목적도 고기, 가죽 이런게 아니라 지들 영생을 위한 뇌수네. 봤지? 인간들은 더럽게 이기적이고 폭력적이라니까? "
이제 고래 사냥의 이야기를 입힙니다. 사실은 이 장면이 고래 사냥을 비판하려고 만든거라고. 그럼 이제 현실의 고래는 숭고한 자연을 대표하고 그것을 사냥하는 포경선의 인간들은 이기적이고 잔인한 이들이라는 심상이 덮혀지죠.
전 이렇게 은유를 활용해서 알게모르게 생각에 영향을 미치려는 행위들을 매우 싫어합니다. 그래서 본문에서 '너무 계몽적 메시지가 강하다'라고 표현했죠.
인간의 폭력성과 이기심은 극단화되었고, 툴쿤의 평화와 공존은 지나치게 이상화되었습니다. 뭐, 이 부분은 영화 자체가 자연을 이상화시키니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있습니다. 단순히 제가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 일지도 모르죠.
이런 툴쿤과 교감하고, 그들의 죽음에 분노하는 나비족은 자칫 '평화와 공존을 대표'한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적어도 제가 느끼기에는 감독은 그걸 의도했습니다. 거기다가 가족애, 자연의 위대함, 인간의 이기심과 폭력성, 물의 아름다움 등 감독은 너무 많은 것을 섞으려고 했습니다. 그렇기에 러닝타임이 3시간이 넘지만 무슨 말을 하고픈 것인지 복잡했죠.
각종 상징과 은유들(일식이나 첫재아들 네테이얌의 호칭변화가 대장->아버지로 변한다는 사실 등)을 통해서 감독이 말하고픈 것을 엮을 수 있습니다. 가령
네티이얌은 설리가 아버지로써 가진 과도하고 잘못된 책임감을 대변하는 인물로 그가 죽고나서야 설리는 성장하죠.
일식은 태양이 눈을 가리는 행위로 신의 분노, 신의 눈이 가려짐 등을 상징합니다. 이는 나비족의 폭력이 정당화된다는 상징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와 같이 엮어서 생각할 수 있지만 3시간이라는 러닝타임 내내 이어지는 그래픽을 감상하면서 이걸 동시에 하기란 쉽지않죠. 그걸 잡지 못한 것은 감독의 역량이 부족했다고 생각합니다.
***
결론은 좋은 감상의 공유에 감사드린다는 말씀을 하고 싶습니다 제 나름의 논리대로 쌓은 감상평이지만 그 논리가 닿지 못할 수도 있죠. 서툰댄서님의 삶에서 겪은 경험들과 논리들로 감상평을 쌓아올리셨을 테니까요. 글에서 말씀하신 인류의 과거 부족사회와 비교하신 감상평은 새로웠습니다. 전 그것과 연관지어 생각하지 못했거든요. 또한 공감할 수 있는 부분들도 많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