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숙(聖淑)한 꽃이 핀다

살구꽃
살구꽃 · 장면의 말들에 귀를 모아봅니다.
2024/09/21
성숙은 엄마가 생전에 키우던 반려견 ‘두부’를 안고 손님처럼 오는 미숙을 맞았다. 미숙은 사 갖고 간 피자를 들고 모텔 안 식당으로 들어갔다. 
      
두부는 미숙을 보자마자 왕왕 짖어대며 주변을 빙빙 돌았다. 반갑다는 표시다. 자기머리를 쓰다듬고 인사를 해주기 전까지 절대 멈추는 법이 없다. 엄마가 봤다면 그랬을 거다. 세상에, 우리 두부 좀 봐라. 어쩌면 제식구들을 기가 막히게 알아보는구나. 
   
올해로 열다섯 살 된 말티즈 수컷 두부는 다리 한 군데에 밴드가 감겼다. 쟤 왜 저래, 어디 아파? 얘도 나이가 드니 이제 병원 갈 일이 자주 생긴다야. 얼마 전엔 이가 빠지더라. 미숙에게 달라붙던 두부가 언제 그랬냐는 듯 성숙이 앉은 의자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엄마 없으니까 믿을 건 나 밖에 없지 뭐. 얜 나한테 입질도 했는데 이제 그런 거 없어. 얘, 우리 점심 먹자. 난 피자 같은 걸루 밥 안 돼. 물 말아서 오이지 하나 놓구 먹어도 밥 먹어야 돼. 성숙이 일어나 식당주방으로 가더니 냉장고를 뒤적거린다. 미숙이 사온 피자는 냉동실로 들어갔다. 
   
   
모텔 주차장 옆에 핀 원추리꽃 -by살구꽃
4층 건물 꼭대기에 ‘모텔’이란 간판 글이 무색하게 이곳은 공단아저씨들의 숙식을 제공하는 하숙집이다. 성숙은 그들의 아침저녁을 준비하고 아저씨들이 방을 비우는 주말에 겨우 숨을 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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