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에모2] 결혼하지 않을 자유
2023/06/28
그해 2월은 엄마의 전화 한 통으로 시작되었다. 그리고 잔뜩 낀 먹구름만큼 암울했다.
“얼마 전에 신년이라고 친구를 만났는데 결혼업체에서 그렇게 좋은 사람을 소개해 줘서 딸아이가 곧 결혼한다고 하네. 너도 거기 등록하고 남자 소개해달라는 거 어때?“
해는 바뀌었지만, 음력설이 지나지 않아 해가 바뀌었다고 하기도 애매했던 그때 엄마는 선을 보라는 것도 아니고 급기야 결혼정보업체에 나를 등록시키려 했다.
엄마 눈에 나는 썩 괜찮아 보이지만 남자는 없고, 결혼 할 나이지만 결혼에는 관심이 없고, 밥벌이는 해서 다행이지만 일만 하다 늙어 죽을 것 같은 딸이었다.
신년이지만 음력설을 지나지 않아 새해라고 하기에 애매한 때와 나의 상태가 비슷했다.
그때 내 나이 서른둘, 적진 않지만 많다고도 할 수 없는 나이에 동생네 신혼부부 집에 얹혀사는 큰딸을 보면 체한 것처럼 답답할 수도 있겠지만 누가 중매를 서는 것도 아니고 결혼정보업체에 가라니, 이건 너무한다 싶었다.
”엄마, 그런 데는 학력 좋고 집에 돈 많고 다니는 회사 이름이 있는 사람들이 가는 거야. 나같은 사람은 그런데 가도 제대로 된 사람 못 만나. 그리고 엄마 21세기에 결혼에 환장한 사람도 아니고 거기까지 가서 결혼해야 해? 결혼을 꼭 해야 하나? 나 지금 되게 행복하게 잘 살고 있는데.“
아, 대답을 너무 길게 했다. 결혼해야하는 이유에 대한 일장 연설이 시작되었다. 그냥 바빠서 남자 만날 시간이 없다고 했어야 했었는데 결혼의 무용함을 언급했으니 이건 나의 실수였다.
엄마의 마지막 한 마디가 내 마음을 흔들었다. 지구의 핵에서 들끓던 마그마가 분출해 지각변동을 일으킨 것처럼.
”엄마 좀 살려도.“
결혼을 하고 하지 않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저 누가 소개해 주는 남자를 한 번씩 만나러라도 나가라는 게 엄마의 ...
“얼마 전에 신년이라고 친구를 만났는데 결혼업체에서 그렇게 좋은 사람을 소개해 줘서 딸아이가 곧 결혼한다고 하네. 너도 거기 등록하고 남자 소개해달라는 거 어때?“
해는 바뀌었지만, 음력설이 지나지 않아 해가 바뀌었다고 하기도 애매했던 그때 엄마는 선을 보라는 것도 아니고 급기야 결혼정보업체에 나를 등록시키려 했다.
엄마 눈에 나는 썩 괜찮아 보이지만 남자는 없고, 결혼 할 나이지만 결혼에는 관심이 없고, 밥벌이는 해서 다행이지만 일만 하다 늙어 죽을 것 같은 딸이었다.
신년이지만 음력설을 지나지 않아 새해라고 하기에 애매한 때와 나의 상태가 비슷했다.
그때 내 나이 서른둘, 적진 않지만 많다고도 할 수 없는 나이에 동생네 신혼부부 집에 얹혀사는 큰딸을 보면 체한 것처럼 답답할 수도 있겠지만 누가 중매를 서는 것도 아니고 결혼정보업체에 가라니, 이건 너무한다 싶었다.
”엄마, 그런 데는 학력 좋고 집에 돈 많고 다니는 회사 이름이 있는 사람들이 가는 거야. 나같은 사람은 그런데 가도 제대로 된 사람 못 만나. 그리고 엄마 21세기에 결혼에 환장한 사람도 아니고 거기까지 가서 결혼해야 해? 결혼을 꼭 해야 하나? 나 지금 되게 행복하게 잘 살고 있는데.“
아, 대답을 너무 길게 했다. 결혼해야하는 이유에 대한 일장 연설이 시작되었다. 그냥 바빠서 남자 만날 시간이 없다고 했어야 했었는데 결혼의 무용함을 언급했으니 이건 나의 실수였다.
엄마의 마지막 한 마디가 내 마음을 흔들었다. 지구의 핵에서 들끓던 마그마가 분출해 지각변동을 일으킨 것처럼.
”엄마 좀 살려도.“
결혼을 하고 하지 않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저 누가 소개해 주는 남자를 한 번씩 만나러라도 나가라는 게 엄마의 ...
* 건강상의 이유로 합평이 너무 늦어져 버렸습니다ㅠㅠ죄송해요!!
<너무 늦은 합평....>
30대에 접어든 자녀들이 한 번쯤은 겪는다는 부모님의 '결혼 독촉', '나'는 결혼에 대한 별다른 생각이 없지만 그럼에도 부모님의 등살에 떠밀리는 경험이 서두에 제시되었습니다.
"엄마 좀 살려도"
사실상 결혼 문제는 '나'의 문제이지만, 부모에게 있어서는 단순히 자녀에게만 맡겨두지 못하는. 이러다가 영영 혼자 살면 어떻게 하나, 싶은 부모의 걱정이 가득 담겨있는 문장이었습니다. 그저 그런 잔소리라면 한 귀로 듣고 흘려보낼 수 있었지만, 이 문장은 그저 흘려보낼 수 없죠. 그리고 이어진 '결혼 정보 회사'에서의 상담. 이 상담에서는 오늘날의 결혼이 어떤 의미인가를 여실히 보여줍니다. 그저 숫자로 사람의 등급을 매기고, '사람'이 아닌 '숫자'와 '숫자'의 만남이 되어버린 결혼.
하지만 '나'는 상담 이후 첫 만남이 이루어지기 이전에 나의 인연을 만나게 됩니다. 조금은 역설적인 '자유'에 대한 정의가 나타납니다.
"아무나와 결혼하지 않을 자유를 얻으면 흠모하는 자와 결혼할 자유가 온다"
"결과보다는 눈길이 향하는 방향과 에너지가 더 중요하다는 것! 잊지 않아야 한다."
조금 역설적인 문장을 읽어내려가며, 어떻게 해석을 해야하나 조금 고민이 되기는 하였습니다. 결국 나의 자유가 제한되었을 때, 나의 눈길과 에너지가 '결혼'을 향하였을 때 비로소 나의 인연을 만나게 되었다는 결론이 이루어집니다.
가볍게 읽어내려가며 독자의 공감대를 이끌어나간 글이었습니다. 특히 결혼에 대한 압박을 받는 나이대가 되니 더더욱 공감이 커진 듯합니다.
좋은 글 감사히 읽고 갑니다.
하지 않을 자유가 할 자유가 되기도 하는군요! 뭔가 하기 싫으면 더 적극적으로 안할 자유를 누려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글입니다ㅎㅎ
[합평]이라 쓰고 이바구를 합니다.
‘엄마 눈에 나는’ 저렇게 약해빠져서 결혼이란 걸 할 수 있을까, 괜찮아 보이지 않았고, 늦은 나이에 학교를 다니긴 하는데 졸업하면 바로 직장에 다니는 그런 공부는 아닌 것 같고, 뭐 하나 맘에 차지는 않지만, 데리고 온 남자는 너무나 흐뭇한데, 사람만 좋았지 돈벌이 하는 사람이 아니라 공부를 한다니, 게다가 ‘시골’엔 집이라도 제 집일까 걱정하던 엄마 생각이 나네요.어차피 할 결혼이라면 서른이 되기 전에 해를 넘기지 말자고 해서 12월 성탄절 일주일을 남기고 날을 잡았습니다.
서른 둘에 동생네 신혼부부집에 기거하는 딸이라니, 밥벌이를 한다지만, 엄마입장에서는 살려달라는 비명이 터지는 급박감이 느껴져요. 상담과정이 생각보다 적나라합니다. 선술집에 들어가 앉은 아멜리님 상황이 단골로 나오는 드라마 장면 같아서 나름 낭만적이기까지 해요. 이 과정이 없었다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맘에 들어 3개월을 쫒아 다닐 만큼의 매력남을 만날 수 있었을까요.
<아무나와 결혼하지 않을 자유를 얻으면 흠모하는 자와 결혼할 자유가 온다. 기필코 온다! 아니, 와야 한다!>처음부터는 아니었지만 저 역시 ‘흠모’하는 자를 만나 ‘기필코’ 결혼했어요. 그리고 함께 겪어야할 지난한 시간을 많이 건너왔다 싶어요.
아멜리님의 마지막 문장은 마치 필사라도 해서 붙여놔야 할 것 같아요. 멋짐폭발이에요. 그리고 상담을 통한 결혼이 아니어서 맘 졸이던 숨을 편하게 쉬었어요. ㅋ
경쾌 발랄,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
결혼시장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직접적으로 가까운 이들의 경험담은 들어본 적이 없어요. 친구에게 전해 듣는 이야기처럼 친근하고 재미있게 읽어내려갔습니다.
조건과 조건으로 맺어지는 인연, 상담사의 태도가 다른 세계처럼 느껴졌어요. 마치 그들이 사는 세상?!! ㅎㅎ
결혼 시장의 민낯들이 조금은 씁쓸하게 다가오기도 했어요.
다음에 펼쳐질 청춘 액션 로맨틱 SF를 기대해도 될까요?!^_^ ㅎㅎ 유쾌하게 잘 읽었습니다!!
@아멜리
엄마의 말에 한결같이 응하지 않던 청개구리 같던 딸에게도 "엄마 좀 살려도"의 위력은 대단했다. '재화'로써의 글쓴이의 스펙을 상담자에게 말하던 모습과, 이에 걸맞은(?) 남자를 소개해주는 장면을 보면서 내세울 것 없는 지방 출신의 30대 여성이 결혼시장에서 받는 처우가 뼈아프게 그려진다. 글은 결혼정보회사의 소개가 아닌 새로운 남자를 만나는 것으로 갑작스럽게 끝난다. 글을 읽고 합평한 모든 사람들은 다음 이야기를 읽을 자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합평]
아멜리 님의 글은 살아있어요. 그래서 좋은 것 같아요. 두 개의 자아로 살아가시는 게 아닐까 싶을 만큼 어떤 글은 무척 담담하면서도 정적이고, 어떤 글은 통통 튀어오르듯 재기발랄해요. 이번 글은 후자에 해당하는 글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서른둘의 아멜리 님을 만나고 오니 더 친근해진 느낌이에요!
아쉬운 점을 이야기하자면, 아무래도 아실 듯한데... 끝 부분이었어요. 질문과 대답으로 마무리를 지으셨는데 이게 좀 아쉽더라고요. 왜냐하면 첫 번째 맞선을 보기도 전에 지금의 남편분을 만나셨다고 언급돼 있으니까요! 게다가 아멜리 님이 쫓아다니셨다고!! 이런 매력적인 여성 분 같으니라고!! ㅋㅋ
질의응답으로 끝내는 것도 이 글에서는 재밌는 시도지만, 온갖 장르가 섞여있어 짧게 언급할 수 없는 이야기겠지만, 그럼에도 줄여서 이 글에 맞게 마무리 해보는 시도를 권해봅니다. 글은 고무줄 같아서, 같은 사연이라도 어떨 때는 장편소설처럼 죽 늘리기도 하고, 어떨 때는 한두 문장으로 줄이기도 해야 하는 것 같아요. 그런 과정을 통해 우리의 글은 분명 더 단단해지겠죠.
이제 마지막 하나의 글감만 남겨놓고 있어요. 얼에모 기다려주신 만큼 성실하게 함께 글 써주셔서 감사한 마음이 한가득입니다!! 프랑스 여행 잘 마치시고 돌아오셔서 은퇴 글로 멋지게 얼에모 은퇴를 함께 하기를.. 또 기다릴게요! 이번 글도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어머나~뒷 이야기 너무 궁금합니다.
결혼을 하셨으니 어머니를 살리시기는 하셨네요.
사람의 인연은 참 신비 합니다.
여행 잘 다녀오세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다 마음에 드는 상대방을 만나서 연인까지 된 이야기가 벌써부터 궁금해집니다 !! 나중에 한번 자세하게 풀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나의 마음이 향하는 방향과 에너지가 중요하다는 말에 크게 와 닿아서 힘이되네요. 주변에서 결혼하는 사람들이 생겨나면서 마음 한구석에 불안감이 자리잡기도 하였는데, 이 글을 통해서 스스로의 자유 의지를 높이고 시야를 넓히도록 해야겠어요. 멋진 글을 읽을 수 있어서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 ^
하지 않을 자유가 할 자유가 되기도 하는군요! 뭔가 하기 싫으면 더 적극적으로 안할 자유를 누려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글입니다ㅎㅎ
[합평]이라 쓰고 이바구를 합니다.
‘엄마 눈에 나는’ 저렇게 약해빠져서 결혼이란 걸 할 수 있을까, 괜찮아 보이지 않았고, 늦은 나이에 학교를 다니긴 하는데 졸업하면 바로 직장에 다니는 그런 공부는 아닌 것 같고, 뭐 하나 맘에 차지는 않지만, 데리고 온 남자는 너무나 흐뭇한데, 사람만 좋았지 돈벌이 하는 사람이 아니라 공부를 한다니, 게다가 ‘시골’엔 집이라도 제 집일까 걱정하던 엄마 생각이 나네요.어차피 할 결혼이라면 서른이 되기 전에 해를 넘기지 말자고 해서 12월 성탄절 일주일을 남기고 날을 잡았습니다.
서른 둘에 동생네 신혼부부집에 기거하는 딸이라니, 밥벌이를 한다지만, 엄마입장에서는 살려달라는 비명이 터지는 급박감이 느껴져요. 상담과정이 생각보다 적나라합니다. 선술집에 들어가 앉은 아멜리님 상황이 단골로 나오는 드라마 장면 같아서 나름 낭만적이기까지 해요. 이 과정이 없었다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맘에 들어 3개월을 쫒아 다닐 만큼의 매력남을 만날 수 있었을까요.
<아무나와 결혼하지 않을 자유를 얻으면 흠모하는 자와 결혼할 자유가 온다. 기필코 온다! 아니, 와야 한다!>처음부터는 아니었지만 저 역시 ‘흠모’하는 자를 만나 ‘기필코’ 결혼했어요. 그리고 함께 겪어야할 지난한 시간을 많이 건너왔다 싶어요.
아멜리님의 마지막 문장은 마치 필사라도 해서 붙여놔야 할 것 같아요. 멋짐폭발이에요. 그리고 상담을 통한 결혼이 아니어서 맘 졸이던 숨을 편하게 쉬었어요. ㅋ
경쾌 발랄,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
결혼시장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직접적으로 가까운 이들의 경험담은 들어본 적이 없어요. 친구에게 전해 듣는 이야기처럼 친근하고 재미있게 읽어내려갔습니다.
조건과 조건으로 맺어지는 인연, 상담사의 태도가 다른 세계처럼 느껴졌어요. 마치 그들이 사는 세상?!! ㅎㅎ
결혼 시장의 민낯들이 조금은 씁쓸하게 다가오기도 했어요.
다음에 펼쳐질 청춘 액션 로맨틱 SF를 기대해도 될까요?!^_^ ㅎㅎ 유쾌하게 잘 읽었습니다!!
@아멜리
엄마의 말에 한결같이 응하지 않던 청개구리 같던 딸에게도 "엄마 좀 살려도"의 위력은 대단했다. '재화'로써의 글쓴이의 스펙을 상담자에게 말하던 모습과, 이에 걸맞은(?) 남자를 소개해주는 장면을 보면서 내세울 것 없는 지방 출신의 30대 여성이 결혼시장에서 받는 처우가 뼈아프게 그려진다. 글은 결혼정보회사의 소개가 아닌 새로운 남자를 만나는 것으로 갑작스럽게 끝난다. 글을 읽고 합평한 모든 사람들은 다음 이야기를 읽을 자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합평]
아멜리 님의 글은 살아있어요. 그래서 좋은 것 같아요. 두 개의 자아로 살아가시는 게 아닐까 싶을 만큼 어떤 글은 무척 담담하면서도 정적이고, 어떤 글은 통통 튀어오르듯 재기발랄해요. 이번 글은 후자에 해당하는 글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서른둘의 아멜리 님을 만나고 오니 더 친근해진 느낌이에요!
아쉬운 점을 이야기하자면, 아무래도 아실 듯한데... 끝 부분이었어요. 질문과 대답으로 마무리를 지으셨는데 이게 좀 아쉽더라고요. 왜냐하면 첫 번째 맞선을 보기도 전에 지금의 남편분을 만나셨다고 언급돼 있으니까요! 게다가 아멜리 님이 쫓아다니셨다고!! 이런 매력적인 여성 분 같으니라고!! ㅋㅋ
질의응답으로 끝내는 것도 이 글에서는 재밌는 시도지만, 온갖 장르가 섞여있어 짧게 언급할 수 없는 이야기겠지만, 그럼에도 줄여서 이 글에 맞게 마무리 해보는 시도를 권해봅니다. 글은 고무줄 같아서, 같은 사연이라도 어떨 때는 장편소설처럼 죽 늘리기도 하고, 어떨 때는 한두 문장으로 줄이기도 해야 하는 것 같아요. 그런 과정을 통해 우리의 글은 분명 더 단단해지겠죠.
이제 마지막 하나의 글감만 남겨놓고 있어요. 얼에모 기다려주신 만큼 성실하게 함께 글 써주셔서 감사한 마음이 한가득입니다!! 프랑스 여행 잘 마치시고 돌아오셔서 은퇴 글로 멋지게 얼에모 은퇴를 함께 하기를.. 또 기다릴게요! 이번 글도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