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를 못 하는 인간

박순우(박현안)
박순우(박현안) · 쓰는 사람
2023/02/21
  세상에는 네 가지 종류의 일이 있다고 한다. 중요하고 급한 일, 중요하지만 급하진 않은 일, 중요하지 않지만 급한 일, 그리고 중요하지 않은데 급하지도 않은 일. 수 년 전 배우 신애라가 토크쇼에서 한 이야기였는데, 일에 대한 신박한 구분법에 감탄했다. 이 네 가지 구분법을 머릿속에 넣고 내가 끌어안고 있는 일들이 각각 어느 카테고리에 들어갈까 고민한 적이 있다. 요즘도 할 일은 많은데 무엇부터 해야할지 몰라 허둥댈 때면 네 가지 종류의 일에 대해 생각한다. 그리곤 자신에게 묻는다. 그러니까 뭐부터 해야 하는 거지.

  정리를 잘 못한다. 물건부터 생각에 이르기까지. 물건은 늘 예상하지 못한 엉뚱한 곳에 놓여있고(립밤이 세탁기에 있다든가) 남편이 대신 찾아줄 때가 잦다. 정리를 천직처럼 똑부러지게 잘하며 잔소리도 극심한 엄마 밑에서 자라, 오랜 시간 정리를 잘하는 '척'하며 살아왔다. 너는 왜 그 모양이냐. 대체 내 뱃속에서 나온 애가 맞냐. 잔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서는 하는 척이라도 해야 했다. 정말 척이었는지, 내 살림을 하고 나니 나는 다시 천성을 버리지 못하고 엉망진창 살림 속에서 산다. 

  생각이라고 다를까. 조금만 일상이 뒤틀려도 생각을 정리하지 못하고 허둥댄다. 버벅대며 헤매다 일단 보이는 일부터 해치운다. 까먹기도 잘 하기 때문에 내가 선택한 방법은 메모하기와 보이는 즉시 처리하는 것이었다. 미루면 잊고 말기에. 뇌의 용량이 크지 않은 걸까, 할 일이 너무 많은 걸까. 사실 글도 결국 쓰지 못할 거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글은 곧 정리인데, 정리가 안 되는 사람이니. 남들은 개요를 짜서 글을 쓴다는데 일단 개요를 짜는 게 안 되는 인간이다 보니, 결국 나는 글을 제대로 쓰지 못할 거라며 낙심한 적도 있다. 모든 작가가 개요를 짜고 글을 쓰는 건 아니라는 걸 알고부터는 조금씩 내 방식을 찾아갔다. 보통 괜찮은 첫 문장이 생각나거나, 글의 방향이 잡히면 글을 쓰기 시작한다. 

  함께 여행을 가지 못한 남편에게 미안해, 어제와 오늘은 싱가포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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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저것 씁니다. 『아직도 글쓰기를 망설이는 당신에게』를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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