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결핵 씰의 기원이 된 조선 최초 여의사 - 김점동

강부원
강부원 인증된 계정 · 잡식성 인문학자
2023/08/23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의사, 김점동. 출처-에스더재단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의사, 김점동(金點童, 1877~1910)

“저를 난로에 집어넣지 마세요”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처음으로 스크랜튼 부인을 만났을 때, 어린 소녀는 겁을 잔뜩 집어먹고 있었다. 구한말인 1885년 아홉 살 된 조선인 소녀에게 생전 처음 본 외국인 선생은 너무나 낯선 존재였다. 조선사람과 다르게 생겨, 알아듣지도 못하는 말을 사용하는 서양 사람은 무섭고 기괴하게만 보였다. 

선교사이자 교육자였던 스크랜튼(Mary F. Scranton) 부인이 미소를 띠며 어린 소녀에게 난로 가까이 다가오라고 손짓을 했다. 하지만 소녀는 덩치 큰 서양 여자가 자신을 붙잡아 난로 속 뜨거운 불구덩이로 던져 넣을 것만 같았다. “저를 난로에 집어넣지 마세요.” 소녀는 아버지 손을 꼭 붙잡은 채로 뒤로 한 발짝 물러서며 몸서리쳤다. 소녀가 서양식 난로를 본 것도 그날이 처음이었다. 

이 장면은 훗날 조선 최초의 양의사가 된 김점동(金點童, 1877~1910)이 이화학당에 처음 입학할 때 겪었던 일을 재구성한 것이다. 당시 아이들 사이에선 서양 사람들이 조선의 어린 애들을 잡아먹는다는 괴담이 퍼져있었다. 말도 안 되는 헛소문이었지만, 그런 종류의 이야기는 원래 어린이들 사이에는 삽시간에 퍼져나가기 마련이었다. 어른들이 아무리 타이르고 다독여도, 아이들은 그런 무서운 생각이 한 번 머리에 박히면 떨쳐내기 어렵다. 

사실 어린 아이들 사이에서 떠도는 낭설이나 뜬소문은 서양 사람에 대한 당시 조선인들의 태도와 인식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는 것이기도 했다. 선교사의 직분과 근대교육의 사명을 지니고 조선에 들어온 서양인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었지만, 아직까지 조선에서는 그들을 받아들일 준비가 충분히 되어 있지 않았다. 어린 김점동에게 벽안(碧眼)의 이방인은 더욱 두렵고 낯선 존재일 수밖에 없었다. 

김점동은 일찍 개화한 아버지 김홍택 덕분에 ...
강부원
강부원 님이 만드는
차별화된 콘텐츠, 지금 바로 만나보세요.
이미 회원이신가요? 로그인
옛날 신문과 오래된 잡지 읽기를 즐기며, 책과 영상을 가리지 않는 잡식성 인문학자입니다.학교와 광장을 구분하지 않고 학생들과 시민들을 만나오고 있습니다. 머리와 몸이 같은 속도로 움직이는 연구자이자 활동가로 살고 싶습니다.
179
팔로워 2.2K
팔로잉 6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