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만들기의 시작은 듣는 것에서부터" - 김벌래

강부원
강부원 인증된 계정 · 잡식성 인문학자
2023/04/23
한국 음향 기술계의 레전드, 김벌래. 출처-김벌래 개인홈페이지
한국 음향 기술계의 소문난 괴짜, 김벌래(金伐來, 1941~2018)
   
즐거운 장난과 평생의 직업
   
아무리 즐거운 ‘취미’라도 ‘일’이 되면 고단한 법이다. 힘들게 직장을 구한 뒤 소명의식을 갖고 열심히 일 해보아도 ‘권태’와 ‘회의’는 어김없이 찾아온다. 소질과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이라면 겹겹이 쌓이는 스트레스가 영혼을 잠식할지도 모른다. 취미는 경쟁이 필요 없는 ‘유희’의 영역이고, 일은 이윤과 성취를 요구하는 ‘경쟁’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밤을 샐 정도로 게임을 좋아하고 많이 하던 아이가 프로게이머가 된 후, 게임이 너무 힘들고 지친다며 도망갔다는 사연이 '웃픈' 까닭이다.

장난도 일이 되면 재미가 없다는 말이 있는데, 그렇다면 거꾸로 일을 장난처럼 하면 어떨까. 평생 자신의 일과 작업을 “즐거운 장난”이라 부르며 살았던 인물이 있다. 한국 음향 기술계의 소문난 괴짜이자 선구적 업적을 남긴 김벌래(金伐來, 1941~2018)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그는 평생 신나게 사는 것이 목표이자 꿈이었던 사람이다. 

미치도록 즐기고, 일을 통해 행복을 얻는다면 부와 명예 따위는 아무래도 좋았다. ‘음향’이라는 한 분야에만 푹 빠져들어 평생을 골몰했다. 원하는 소리를 만들어낸 뒤 스스로가 마음에 들고, 사람들이 기뻐하고 즐기면 그것으로 족했다. 그러다보니 자연 한국 음향계 최고의 자리에 오르게 되고, ‘음향의 달인’, 한국 최고의 ‘소리 디자이너’란 칭호를 얻게 된다. 
작업실에서 찍은 김벌래 사진.출처-김벌래 개인홈페이지
   
극단 궂은 일 도맡았던 ‘벌레’, 김벌래가 되다
   
김벌래는 일본이 태평양전쟁을 일으켰던 1941년 경기도 광주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 시절 가난이야 식민지 시기 말 총력전을 경험했던 우리나라에서는 ‘디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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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신문과 오래된 잡지 읽기를 즐기며, 책과 영상을 가리지 않는 잡식성 인문학자입니다.학교와 광장을 구분하지 않고 학생들과 시민들을 만나오고 있습니다. 머리와 몸이 같은 속도로 움직이는 연구자이자 활동가로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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